모두













“서예은? 질린 지가 언젠데.”
주현진은 비웃음이 담긴 눈빛으로 술잔을 흔들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말했다.
“지안이처럼 애교 많은 여자가 진짜 여자지. 서예은은...”
구석진 곳, 유리잔 하나가 남자의 손바닥 안에서 갑자기 산산조각이 났다.
서예은은 연애 3주년 기념 케이크를 꽉 움켜쥔 채, 그의 선명한 손가락 마디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은하 그룹 대표 박시우는 천천히 손가락의 피를 닦아내며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서예은 씨, 나랑 결혼할래요?”
...
경성이 발칵 뒤집혔다.
모두는 그저 하찮은 디자이너가 재벌에게 매달린 줄 알았지만, 사실 이 결혼은 그가 5년 전부터 꾸민 함정이었다.
박시우의 프라이빗 갤러리에는 그녀의 옆모습이 천여 점이 걸려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비 오는 골목에서 고양이를 돌보던 모습부터 패리 패션쇼 백스테이지에서 보석을 정리하던 순간까지.
깊은 밤, 그는 담배를 물고 폭우 속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주현진의 CCTV 영상을 응시하더니 갑자기 자기 아내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
훗날, 한 경제 기자는 냉혈한으로 소문난 박 대표가 아내 앞에 무릎 꿇고 떨리는 손으로 임신 진단서를 들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반면 서예은은 결혼반지를 흔들며 가볍게 웃었다.
“박시우 씨, 놀랍죠?”
순간, 냉혈한으로 소문났던 남자는 눈가가 붉게 달아오르더니 그녀의 약지에 난 오래된 반지 흔적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예은아, 네가 스물두 살이었던 그 해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무... 무슨 말이요?”
“케이크가 너무 달콤했어.”
박시우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경성 재계의 최고 권력 가문의 후계자인 고인성은 여자를 곁에 두지 않는 금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손목에는 검은 염주를 차고 다니며, 당장이라도 세속을 떠나 출가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친구들이 화려한 밤 문화를 즐기며 흥청망청할 때도 그는 늘 한결같았다.
“난 흥미 없어. 이해는 안 되지만, 존중할게.”
하지만 고인성도 결국 벼랑 끝에 몰리고 말았다. 할아버지 고성진의 결혼 압박에 질려버린 그는 마침내 폭탄선언을 했다.
“저 결혼 안 해요. 차라리 출가하겠습니다.”
그제야 고성진의 얼굴에 진짜 위기감이 스쳤다.
한편, 진짜 딸의 대타로 살아왔던 송유리는 송씨 가문이 진짜 딸을 찾으면서 집에서 쫓겨났다. 부모도, 기댈 곳도 없는 그녀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비웃음까지 샀다.
손에 쥔 것 하나 없는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서빙 아르바이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술집에서 서빙을 하던 송유리는 실수로 잘못 들어간 방에서 마침 고인성을 마주쳤다.
“너... 네 몸에서 나는 이 향기는 뭐야? 최면이라도 걸려고? 그런 거라면 성공했어.”
그날 이후, 고인성은 ‘송유리’라는 빠져나올 수 없는 독에 중독된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그가 그녀에게 보이는 극진한 다정함은 마치 영혼이라도 내어줄 것 같았고, 그녀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었다.
예전에는 모두가 퇴근해도 혼자 남아 밤늦게까지 일하던 고인성이었지만, 지금은 사무실에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끊이지 않는 시간에 퇴근 준비를 마치는 게 일상이었다.
“효율적으로 일하죠? 퇴근할 시간이 됐으면 다들 퇴근해야죠. 아내가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갑니다.”
'도대체 누가 누굴 기다리는 건지... 참...'
사무실에 남은 직원들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들은 여전히 일에 치여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정작 고인성은 사랑에 빠진 ‘순정남’이 되어 있었다. 




[재혼+카운트다운+부자의 후회+사이다 여주의 복수+가족 몰락+용서 없음]
결혼 6년 내내 정서연은 남편과 아들을 성심껏 보살폈지만, 돌아온 건 아들이 새엄마를 원한다는 잔인한 소원뿐이었다.
남편은 아이의 말을 대수로이 여기지 말라고 넘기면서도, 아들이 입에 올린 그 새엄마와 끈질기게 얽혔다.
결국 정서연은 부자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이혼을 통보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한 달도 못 버티고 부자에게 매달릴 거라며 비웃었다.
친부모까지도 양녀에게만 온 정성을 쏟고, 정서연의 등골만 빼먹은 뒤 모질게 내쳤다.
어릴 적 그녀가 목숨 걸고 살려 준 사촌오빠는 정수를 위해서는 그녀가 죽어도 좋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마음이 완전히 식은 정서연은 연구직을 떠나 유학에 나섰다.
배은망덕한 부자는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병이 들어도 돌봐 줄 사람 없이 침대에 쓰러지고서야 눈물을 흘렸다.
3년 후, 유학을 마친 그녀는 신약을 개발해 세상에 내놓자마자 세계적인 화제를 일으키며 연구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뒤늦게 후회에 빠진 부자는 미친 듯이 매달렸다.
“서연아, 내가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 줘...”
“엄마, 나 버리지 마. 응?”
한때 그녀를 무시하고 편애하던 부모는 온갖 사랑을 훔친 가짜 친딸에게 재산까지 털린 뒤, 거의 무릎을 꿇을 기세로 뉘우쳤다.
“서연아, 우리가 눈이 멀었어. 우리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그리고 양심 없는 사촌오빠 역시 자신을 살린 이가 그녀였다는 사실을 알고 통곡했다.
“서연아, 집에 돌아와... 네가 나를 용서만 해 준다면 목숨이라도...” 

전생, 강다인은 오빠들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오빠들은 그녀의 재력으로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고 가짜 동생 김지우에게만 지극정성이었다. 친동생 강다인은 결국 집 밖으로 쫓겨나 객사하는 운명에 이른다.
환생 후, 강다인은 딱 한 가지 원칙만 따르기로 한다.
“이타적인 마음을 거두고, 쉽게 용서하지도 화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기적이더라도 혼자 멋지게 살 것이다.”
오빠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왜 내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지? 아, 다인이가 약을 안 줬구나.’
‘왜 시스템에 자꾸 문제가 생기지? 아, 다인이가 복구하지 않았구나.’
‘왜 신약 개발 속도가 이렇게 느리지? 아, 다인이가 실험을 도와주지 않았구나.’
‘왜 대본 수준이 이 따위지? 아, 다인이가 신작을 쓰지 않았구나.’
‘왜 요즘 경기에서 자꾸만 지는 거지? 아, 다인이가 은퇴했구나.’
오빠들은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
“다인아, 제발 돌아와. 우리는 가족이잖아.”
강다인은 차갑게 웃었다.
“사고는 난 다음에 문제를 발견하고, 주식도 오른 다음에 사야 했다고 후회하지. 이제야 잘못을 알았다고 해서 내가 용서할 줄 알았어? 절대 안 해!” 

















서하영과 임도윤이 부부의 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3년. 하지만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결혼 사실을 아는 이들 역시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밤이 되면, 서하영은 재벌 총수의 아내로서 살아갔다. 임도윤이 직접 설계해 만든 호화로운 별장의 고급 소파에 몸을 기댄 채, 그의 반려견을 쓰다듬으며 사치스럽고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그러나 아침이 밝으면 그녀의 신분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집안에 고용된 가정교사일 뿐이었다. 임도윤에게서 월급을 받고, 그의 눈치를 살피며 하루하루를 조심스레 버텨내야 했다. 임도윤은 늘 냉담했고, 가끔은 무심한 말로 그녀를 베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감히 그녀를 건드리려 하면 상황은 달라졌다. 누군가 그녀를 괴롭힐 때 그는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되었고, 누군가 해를 가하려 하면 주저 없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상대를 무참히 꺾어냈다.점차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임도윤이 서하영을 대하는 태도가 수상하다고 말이다. 선배가 후배를 챙기는 따뜻한 정 같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히 스며 있었다. 그의 시선은 지나치게 달콤했고, 그녀를 향한 손길은 지나치게 애틋했다.사실 임도윤은 이미 피비린내 나는 어둠의 세계에서 발을 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서하영을 위해서라면, 그는 언제든 망설임 없이 다시 칼을 쥐고 차갑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적을 베어냈다.사람들은 서하영에게서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는 수십억 원대의 주얼리를 아무렇지 않게 몸에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질투와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뭐, 돈 많은 스폰서라도 붙은 모양이지.”질투 섞인 조롱이 날아들자, 서하영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맞받아쳤다.“아쉽겠지만, 이건 내가 직접 만든 브랜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