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이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무대 위를 쳐다보았다.
“현우야, 이 교수님이 곧 나올 거야!”
성도섭의 목소리에 감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박현우는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그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듯했다.
이은영은 왼쪽 가슴을 움켜쥐며 감탄했다.
“너무 떨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엄마, 곧 내 아이돌이 등장해!”
나효심은 이다빈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흥건했다.
“흥분하지 마! 추태를 부리지 말고! 이따가 이 교수님의 말이 끝나면 내가 가서 말을 걸 거야.”
이다빈은 손을 빼내며 말했다.
“어머니, 이거 놔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화장실이라니? 이 교수가 곧 무대에 오르는데 어떻게 화장실에 갈 마음이 있을 수 있어?!”
“급해요.”
“가지 마!”
1분이 지났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 교수는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 교수가 왜 아직 나오지 않는 거야?”
사람들은 귓속말로 수군거렸다.
연구소에서 초대한 사회자는 진땀을 흘렸다. 무대 뒤로 가서 물어보려 할 때, 앉아 있는 사람들 속에 이다빈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나!
무대에 올라 오지 않고 왜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이지?
이다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을 꼭 붙잡고 있는 나효심을 흘겨보았다.
사회자는 무슨 상황인지 이내 파악하고 이다빈을 돕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곧 노교수 한 명이 이다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어르신, 나 여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 교수님 연구소의 연구원 방 교수라고 합니다.”
거물급 인물이 직접 와서 말을 걸자 이경환과 나효심은 깜짝 놀랐다.
“방 교수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입니까?”
부부는 매우 흥분했지만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방 교수의 위치는 대현에서 이 교수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학술계에서 이름을 알린 대단한 인물이다.
이와 같은 인물이 평범한 사람에게 직접 와서 말을 건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저는...”
방 교수는 이다빈 쪽을 쳐다봤다.
이은영은 바로 이다빈의 옆에 서 있었다. 부부는 방 교수가 이은영을 보고 있는 줄 알고 교만해졌다.
“설마 은영이 때문인가요? 은영이가 학교에서 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방 교수님까지 알고 계실 줄 몰랐어요...”
“우리 집 은영이가 이 교수님의 연구소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곧 대학교 3학년이라 우선 인턴십부터 신청하려고요. 방 교수님, 잘 부탁드립니다.”
“어, 콜록, 그래요? 그렇죠. 그럼 열심히 해야죠...”
방 교수는 건성으로 말했다.
나효심은 오직 이은영의 마케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이다빈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다빈은 그 틈을 타 무대 뒤로 갔다.
그제야 사회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이슈가 좀 있었습니다. 그럼, 우리 모두 큰 박수로 이 교수님을 환영합시다!”
이다빈은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이다빈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나노신소재 연구가 성공한 것은 저 혼자만의 공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서 이룬 성과입니다. 이 분들에게 가장 열렬한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이어 이다빈은 맨 앞줄에 앉은 교수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우정우 교수.”
짝짝짝.
“장지수 교수.”
짝짝짝.
“하민휘 교수.”
짝짝짝.
이름이 불린 노교수들은 감격에 겨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것은 이 교수가 전적으로 그들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어? 현우야, 이 교수의 몸매가 너의 약혼녀와 좀 비슷한 것 같지 않아?”
성도섭이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박현우는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상상력이 참 좋네.”
“헤헤, 농담이야. 그나저나 이다빈이 지난번 너의 집에서 한 말 기억나? 발표회 당일 박선 재단과의 협력을 공개하겠다고 허풍을 떨었잖아.”
성도섭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다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들 호기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이다빈은 박현우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이다빈의 시선을 의식한 박현우의 입에서 의혹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왜? 현우야?”
성도섭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이 교수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풉! 현우야, 너도 이런 농담할 줄 아네?”
박현우가 눈썹 치켜올렸다. 혹시 잘못 본 거 아닐까?
이다빈은 마이크를 잡고 계속 말했다.
“여러분이 나노신소재와 협력하기 위해 오신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연구소를 대표해 협력할 회사를 이미 선정했습니다.”
이 말이 나오자 온 장내가 들끓었다.
“설마요? 내정됐다고요? 도대체 어느 회사가 이렇게 운이 좋습니까?”
“저희는 이번에 연구소와 협력해 새로운 나노신소재를 산업체인에 투입하려고 충분한 자금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헛수고가 되었네요.”
“이 교수님, 뜸 들이지 마시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이다빈은 바로 입을 열었다.
“바로 박선 재단입니다.”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내는 폭탄을 터뜨린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박현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음속에는 거칠고 사나운 파도가 일었다.
이다빈이 허풍을 떨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대박! 지금 내가 들은 게 맞아? 이… 이게… 어떻게…”
성도섭은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현우야, 이다빈이... 호락호락한 여자는 아닌 것 같아!”
성도섭은 이 일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연의 일치가 한 번 있을 수는 있어도 두 번은 불가능하니까!
앞서 이다빈이 28일 발표회를 진행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날짜가 진짜로 28일로 정해졌다.
그리고 이 교수가 박선 재단과의 협력을 발표할 거라고 이다빈이 말했다. 그런데 진짜로 협력하게 되었다.
성도섭도 깜짝 놀라는 일, 박현우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모든 절차가 진행된 후, 발표회는 완벽하게 끝났다.
박현우는 이다빈을 제외한 나머지 이씨 가족들이 앉았던 자리에 주목했다.
남자의 검은 눈동자는 점점 더 그윽해졌다.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벌떡 일어나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절차가 마무리된 후, 이다빈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사람들이 그녀를 겹겹이 에워쌌다.
경호원들은 열심히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다빈 옆으로 다가오기 위해 계속 사람들을 밀었다.
“밀지 마! 밀지 마! 경호원 좀 더 불러오세요! 이 교수님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이 교수님, 다음 단계는 어떤 분야를 연구할 겁니까?”
“이 교수님, 여기, 여기, 우리 방송국에서 단독 인터뷰를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서주 조씨 집안에서 왔습니다.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서로 밀고 당기는 바람에 현장은 더욱 통제 불능으로 변했다.
“비켜요! 잠깐만 지나갈게요. 이 교수님의 사인을 원합니다!”
이다빈은 아주 민첩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그녀도 힘을 쓸 수 없었다.
이때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다!
한 카메라가 그녀의 머리에 씌운 모자에 닿았다. 순간 머리카락은 폭포처럼 그녀의 어깨에 흘러내렸다.
이다빈의 얼굴에 가려진 마스크도 같이 벗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