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강수연은 피하고는 손수건을 건네받아 닦았다.
심지운은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날 떠난 지 겨우 며칠이나 됐다고 이렇게 비참하게 된 거야, 어리광 그만 부려, 넌 온실 속 꽃이야, 고생할 수 있겠어? 나랑 집에 가자, 정말 일하고 싶으면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내 비서 해."
강수연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똥이 들어있는 초콜릿 먹을 바엔 그냥 고생할래."
전에 그녀는 말을 아주 우아하게 했었고 이런 듣기 거북한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었기에 전혀 이미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운은 또 그녀한테 화가 났다.
"너 정말... 주제를 모르네."
그가 가려고 뒤돌았는데 뒷모습에 분노가 가득했다.
강수연은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뒤돌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는데, 고개를 돌리자마자 구석에 있던 윤호진을 보았다.
그가 큰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니 차가운 말투로 천천히 말했다.
"네 남편 말이 맞아, 넌 고생을 할 수 있는 체질이 아니야, 그냥 저 사람 곁에 돌아가서 재벌집 사모님으로 살아."
강수연은 눈살을 찌푸리고 불만에 차서 말했다.
"네가 날 잘 알아?"
윤호진은 입꼬리를 올리고 가볍게 웃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은 없어."
강수연도 피식 웃었다.
"그럼 틀렸어, 넌 날 안 적이 없어, 넌 그냥 오만에 차서 자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거야."
윤호진은 그녀한테로 몇 걸음 다가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치켜들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나 말 잘하네."
"말로 해, 함부로 터치하지 마."
강수연은 싸늘한 표정을 하고 그의 손을 치웠다.
그가 밀어낸 손을 보며 윤호진은 낯빛이 어두워졌고 불쾌해하는 것 같았다.
강수연은 그걸 눈치채지 못했고 그냥 가버렸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는데 꺼내 보니 정택운한테서 걸려 온 것이었다.
그녀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강수연 씨, 회사에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어요, 축하해요, 채용 됐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에 강수연은 2초간 멈칫해서야 반응하고는 흥분해하며 말했다.
"정말요? 네, 감사해요, 저 내일 바로 입사할 수 있어요!"
전화를 끊은 강수연은 너무 기뻐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와 동시에 의아했다. 헌터에서 왜 갑자기 생각을 바꿨지? 설마 정말 민하정이 도와준 거야? 걔가 그렇게 착하다고?
어찌 됐든 이미 직장을 찾았기에 그녀는 아주 기뻐하며 우쭐대는 눈빛으로 윤호진을 바라보았다.
"나 헌터 테크놀로지스에 채용됐어, 난 온실 속 꽃이 아니야, 두고 봐, 내가 승승장구할 거야!"
윤호진은 가볍게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아무 말하지 않고 검은색 우산을 펴고 빗속으로 걸어갔다.
...
오늘 입사해야 했기에 강수연은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준비했다.
그녀는 헌터 인사팀에 갔고, 직원이 그녀를 데리고 입사 절차를 밟았고, 그녀를 프로젝트팀에 데려가 정택운한테 넘겼다.
"다들 이리 와봐요, 새로 온 동료입니다, 다들 박수로 맞이합시다."
다들 아주 협조적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강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강수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다들 순간 그녀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인사를 하고 나서 직속 상사인 정택운이 그녀를 데리고 회사를 참관했다.
그런데 우연히 복도에서 민하정을 만나게 되었다.
강수연을 보자 민하정은 깜짝 놀랐다. 아웃시킨 거 아니었어?
정택운이 소개했다.
"민 본부장님입니다."
강수연은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그날 민하정의 사원증을 보았기에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본부장님, 안녕하세요."
민하정은 미소를 지으며 정택운한테 말했다.
"저 강수연이랑 할 말 있어요."
정택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전에 헌터에서 날 거절했고, 나중에 또다시 채용했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래, 네가 도와준 거야?"
강수연이 떠보듯 물었다.
민하정의 눈빛에 깨달음이 스쳤다. 정말 누군가 도와준 거였어.
누구지?
설마 윤호진은 아니겠지...
민하정이 그녀의 말을 이어갔다.
"같은 학교 졸업했잖아, 도와줄 수도 있지."
"그래?"
강수연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나마 다정하게 민하정을 바라보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반신반의했고 그녀가 그럴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민하정을 너무 잘 알았다. 성별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일이 이렇게 됐고, 그녀는 돈 벌러 왔기에 자기가 할 일만 잘하면 되었고 실수만 안 하면 두려울 게 없었다,
"오래 알고 지냈는데 일하면서 어려운 게 있으면 아무 때나 와서 물어봐."
민하정은 그녀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상사행세를 했다.
"앞으로 수연이라고 부를게."
강수연이 미소를 지었다.
"좋을 대로 해."
민하정은 으쓱해했다. 학교 다닐 때 퀸카였고 훌륭했으면 뭐, 지금은 내 밑에서 부하직원으로 있잖아.
참, 세상 일은 모른다니까!
오늘 갓 입사했기에 강수연의 조장이 그녀를 데리고 업무 프로세스를 익혔다.
강수연은 과거 대기업에서 여러 번 인턴을 했었기에, 3년이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빠르게 적응했고 동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나서서 돕기 시작했다.
정택운은 사무실 문가에 서서 강수연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그는 걱정했었다. 강수연이 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적응을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강수연이 오늘 첫 출근이었기에 업무량이 많지 않아 야근 없이 퇴근 시간에 맞춰 정리하고는 사무실을 떠났다.
그녀는 집에 가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시병원으로 향했다...
강수연과 심지운이 매주 금요일에 시병원에 입원한 심운봉을 보러 함께 갔었다. 고정적인 금요일 말고도 강수연은 다른 시간에도 보러 왔었다.
그러나 한동안 그녀가 오지 않았기에, 심운봉은 사과를 깎고 있는 며느리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수연아, 요즘 집안일이 너무 힘들어? 너무 힘들면 앞으로 안 와도 돼, 여긴 간병인들이 있어, 내 걱정 안 해도 돼."
사과를 깎고 있던 강수연은 멈칫했다. 심지운과 사이가 틀어지고 나서 그녀는 이혼 소송을 하려고 변호사 찾기에 급급했고, 직장을 구하고 집을 구하느라 바빴었다. 계산해 보니 확실히 한동안 오지 않았었다.
그녀는 다 깎은 사과를 심운봉한테 건네며 미안해하며 말했다.
"아버님, 제가 요즘 회사에 갓 입사해서 확실히 바빠요, 앞으로 병원에 자주 못 올 것 같아요."
그녀는 심운봉을 자극할까 봐 별장에서 나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강수연이 취직했다는 말에 심지운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불쾌해했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운봉이 이상함을 눈치챘다. 왜 갑자기 일하려는 거야?
분명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 거야, 아니면 싸웠을 수 있어.
심운봉은 혈색이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아들을 바라보았다.
"너 수연이 괴롭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