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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네,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 김유성은 유지민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의리가 없이 돌아서서 도망쳤다. 김유성을 손본 후 강시현은 화간 난 얼굴로 품에 안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 밑에 번쩍이는 분노가 유지민의 반항심을 불러일으켰는지, 아니면 알코올이 작용했는지 그녀는 갑자기 용감해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강시현을 밀친 후 얼굴을 붉히며 화가 나서 말했다. “저는 원래부터 강씨 가문의 아이가 아니었어요. 그러니 무슨 신분으로 저를 간섭하는 거예요?” 유지민은 쿨하게 그가 했던 말을 그에게 던져버렸다. “무슨 신분? 난 너의 작은 삼촌이야.” 강시현도 화가 치밀어 올라 차갑게 말했다. “아니에요.” 그는 처음부터 그녀의 삼촌이 아니었고 유지민이 삼촌이 아니기를 바랐다. 유지민은 빨개진 두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저를 싫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간섭하세요? 일부러 걱정하는 척 연기하지 마세요.” 강시현은 얼굴이 굳어졌고 목소리도 침울해졌다. “다시 한번 말해봐.” “싫어요...” 유지민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하늘땅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강시현이 그녀를 어깨에 메고는 성큼성큼 클럽에서 나갔다. “내가 키운 사람이니 상관할지 말지는 내가 판단해.” 유지민은 내내 발버둥 쳤지만 술기운에 온몸이 나른해져 어쩔 수 없이 강시현에게 끌려 차 뒷좌석에 내던져졌다. 강시현도 뒷좌석에 올라타고는 포악하게 그녀와 자신에게 안전벨트를 해준 후 기사에게 명령했다. “집으로 가.” “안 가요.” 유지민은 울면서 소리쳤다. “거기는 내 집이 아니에요!” 강시현은 화가 치밀어올라 그녀의 턱을 잡고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 “돌아오지도 않잖아요! 큰 집에 저 혼자만 있는데 그게 어떻게 집이에요?”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목놓아 소리쳤다. “마음이 내키면 저한테 잘해주고 싫으면 저를 버렸잖아요. 저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았고 저를 존중하지도 않았어요. 당신이 싫어요. 미워요!” 강시현은 멍해졌다. 가슴이 찢어지듯 슬프게 우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저도 모르게 답답해졌고 마음이 아파 났다. 밉다고? 유지민이 언제 그에게 이런 말을 했었고 또 이렇게 억울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였단 말인가?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듯 그녀를 품에 안고는 부드럽게 달랬다. “미안해, 삼촌이 잘못했어. 회사가 너무 바빠서 그런 거지 일부러 돌아가지 않은 게 아니야. 지민이 삼촌을 용서해줄 수 있어?” 지민, 지민이. 오랜만에 들어보았다. 강시현이 지난번에 그녀를 지민이라고 부른 게 언제인지 유지민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이렇게 부드럽고 그녀를 끔찍이 아끼던 강시현이 얼마 만에 나타난 걸까? 그 황당한 하룻밤이 지난 후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지도 않았다. 유지민은 목놓아 울었다. 그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던 그녀는 한껏 껴안으며 얼굴을 그의 품에 묻었다. 쓰고 떫은 감정이 홍수처럼 그녀의 마음을 적셨다. 역시 꿈에서라야 이렇게 부드럽게 대해주었다. 꿈속에서 강시현은 부드럽게 그녀를 차에서 앉아 내려 방으로 데려가 눕히고는 얼굴도 닦아주었고 신발도 벗겨주었다. 마지막엔 직접 꿀물도 먹여주었다. 꿀물보다 더 달콤한 꿈이었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었던 유지민은 깨어나기 싫었다. “착하지, 잘 자. 잘 자고 깨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유지민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를 잡았다. 그녀의 손은 매우 뜨거웠고 세차게 뛰는 맥박이 부드러운 손끝을 통해 그의 손바닥에 전해졌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강시현은 온몸이 굳어져 손을 빼려고 했지만 이때 유지민이 몸을 일으키며 다른 손을 벌려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눈처럼 하얀 얼굴을 그의 아랫배의 대였는데 부드럽고 뜨거웠다. 강시현은 숨을 들이쉬며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는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거의 억눌리고 쉰 목소리가 전해졌다. “지민아, 너 취했어.” 유지민은 들은 척도 않았다. 두 손이 묶여도 입이 있지 않은가. 알코올에 물든 붉은 입술을 벌려 가죽 벨트의 금속 버클을 물며 딸까닥 소리를 냈다. ‘탁’하는 소리는 마치 종소리처럼 강시현의 온몸을 떨게 했다. 유지민을 힘껏 밀치며 혼내주려고 할 때 그는 그녀가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든 것을 발견했다. 강시현은 화가 나서 그녀의 장난기 어린 붉은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받치고는 엄지손가락으로 엷은 입술을 문질렀다. 그 입술이 빨갛게 부어오르자 그제야 손을 거두었다. 다음 날 아침, 유지민은 심한 두통과 함께 깨어났다. 마치 누군가가 전기 드릴을 들고 그녀의 관자놀이를 뚫는 것 같았고 입술도 저리게 아파 났다. 세수할 때에야 그녀는 입술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빨갛게 부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음식을 먹었을까? 클럽에서 강시현에게 잡힌 후 그에게 끌려 집으로 왔는데 그 후로 무슨 일이 있었지? 그 후... 그녀는 강시현의 벨트 버클을 물었다. 혹시 입술이 부어오른 게 버클을 물다가 부딪혀 부었을까? 이렇게 단단할 수 있을까? 아니, 중점은 이게 아니었다. 그녀가 술에 취한 후 또 한 번 염치없이 강시현에게 덮쳤다. 유지민은 얼굴을 가리고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변기에 머리를 틀어 박고 죽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다. 분명히 포기하기로 했고,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했는데 왜 술을 마시니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단 말인가? 강시현은 그녀를 더 미워했을 것이다. 그녀는 정말 그를 다시 볼 면목이 없었다. 유지민은 도둑처럼 창가로 달려가 훔쳐보다가, 정원 주차장에 강시현의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강시현은 마침 여유롭게 식당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순간 유지민은 발걸음을 멈칫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강시현이 갑자기 눈을 들어 그녀를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숙취가 아직 깨지 않았어?” 유지민은 난처해서 손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런데 멍하니 뭐해? 와서 아침 먹어.” 강시현이 말했다. “네.” 유지민는 우물쭈물 긴 테이블 맞은편으로 가서 앉아 조용히 아침을 먹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을 낮추려 최선을 다하며 강시현이 평소처럼 그녀를 무시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강시현은 그녀의 뜻대로 할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빨리 먹어. 좀 이따 함께 회사에 가자.” 사람과 사람은 역시 다르다. 사랑하고 안 사랑하는지는 늘 한눈에 알 수 있다. 강시현은 전화기 너머로 부드럽게 몇 마디 당부했고, 유지민은 그가 데리러 간다고 말하는 것을 예리하게 들었다. 그래서 그가 전화를 끊은 후, 유지민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삼촌, 바쁘시면 먼저 가세요. 저 혼자 가면 돼요. 저는 꼭 제때 출근해서 일에 책임을 질 거예요. 절대 결근하지 않을 거예요.” 강시현은 다시 한번 얼굴을 찌푸렸다. 어두운 눈동자는 유지민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또 거절이다. 그는 유지민이 그를 거절하고 밀어내는 태도가 싫었다. 강시현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신 뒤 화풀이하듯 커피잔을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음대로 해.”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나 식탁을 떠났다. 유지민은 멍하니 정원 밖을 바라보다가 그의 차가 대문을 나서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 양민하와의 경쟁에서 자신은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으며, 결코 선택받는 쪽이 아니다. 진작에 습관이 되었는데 또 무엇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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