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별원을 나선 유지민은 곧장 회사로 돌아가 야근을 했다.
막 그룹의 한 부동산 분쟁 뉴스를 처리했을 때, 소꿉친구 김유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하이, 내가 어디 있는지 맞춰봐?”
김유성의 시원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배경 음악이 수화기를 사이에 두고 유지민의 고막을 울릴 정도였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놀면서 지금까지 감정이 깊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 동안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유지민은 웃으며 말했다.
“정말 부럽네. 매일 생각도 없이 미친 듯이 놀기만 하니깐.”
“마치 넌 놀면 안 되는 것처럼 말하네?”
김유성이 투덜거렸다.
“내가 만나자고 할 때마다 바쁘다고 했잖아. 매일 강하 그룹에 노예 계약이라도 한 것처럼 일해. 강시현 대표님도 너만큼 바쁘지 않아. 얼굴 한번 보려면 예약하고 줄 서야지?”
유지민은 그의 있는 듯 없는 듯한 불평을 들으며 웃었다. 곧 유학을 떠날 예정이라 김유성과 만날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니 오늘 밤 그를 만나러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클럽에 있는 것 같다.
강시현은 그녀가 클럽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해 대학 입학시험이 끝나고, 반 친구들은 졸업 파티를 마치고 나서 클럽에 놀러 갔는데 결국 유지민은 만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 다행히 강시현이 제때 사람을 데리고 도착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강시현은 유지민의 클럽, 바 같은 곳 출입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만약 자신이 오늘 클럽에 간다는 것을 안다면 강시현은 여전히 긴장하고 화를 낼까?
유지민은 눈을 내리깔고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는 이미 신경 쓰지 않는데, 자신은 왜 집착하는 걸까?
“어디야? 지금 찾아갈게.”
김유성은 무슨 신기한 일이라도 들은 듯 웃으며 소리쳤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야, 약속했어? 야밤에서 기다릴게. 꼭 만나자!”
“알았어. 말이 참 많네.”
유지민은 웃으며 핀잔을 준 후 전화를 끊고 차를 불러 야밤으로 갔다.
도중에 그녀는 근처 쇼핑몰에 가서 술집과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벗고 치마로 갈아입었다.
그녀가 어깨가 드러난 치마를 입고 눈앞에 나타났을 때, 김유성은 무려 30초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헐.”
김유성은 턱을 괴고 지나치며 말했다.
“몇백 년 동안 이런 옷을 못 봤는데 왜? 너의 늦은 반항기야? 삼촌의 고리타분한 규정에 반항하기로 했어?”
대학 입시 당시의 클럽 사건에서 김유성도 목격자 중 한 명이었다. 강시현은 그에게 화를 내며 그의 부모님을 찾아갔고 그로 인해 여름방학 내내 외출이 금지되었다. 김유성은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유지민은 마음이 쓰라려 왔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반박했다.
“날 간섭하지 못해.”
김유성도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야?”
그는 어릴 때부터 유지민이 껌딱지처럼 강시현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을 봐왔다.
“내가 왜 거짓말하겠어.”
유지민은 그를 노려보며 손을 들어 술잔을 들고 클럽 카시트에 앉아 화가 난 듯 말했다.
“삼촌은 오래전부터 나를 상관하지 않았어. 하지만 괜찮아. 나는 곧 출국하거든. 앞으로 상관하고 싶어도 상관할 수 없어.”
김유성은 그녀의 감정이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오히려 또 다른 중요한 점을 포착했다.
“뭐? 출국? 강하 그룹에 남아 일하고 싶지 않아? 왜 갑자기 해외로 가려고 해?”
강시현이 곧 결혼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속상하고 슬펐다.
그녀는 더는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고, 뻔뻔하게 강시현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단을 내리기로 했고, 마음이 약해질까 봐 이 아픈 곳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유지민은 김유성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김유성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그에게 말하면 그는 반드시 자신의 편에 설 것이며, 옳고 그름을 막론하고 강시현을 찾아가 따질 것이다.
그녀는 이러고 싶지 않았다.
유지민는 고개를 젖히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아무것도 아니야. 파킨스 대학에서 좋은 제안을 해주었어. 부모님과 나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저울질한 결과 계속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어.”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김유성은 잔을 들어 그녀의 잔과 부딪쳤다.
“강하 그룹의 그 망할 팀장은 하고 싶은 사람이 하라고 해. 넌 그렇게 똑똑한데 더 많이 공부해서 문학상을 받고 돌아와. 내가 SNS에 올려 자랑하게.”
유지민은 그의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그와 잔을 부딪친 후 술을 한 모금 들이키고 말했다.
“좋은 말 고마워.”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더 신이 나서 곧 양주 두 병을 비웠다.
유지민은 흐리멍덩하게 일어나 술 트림을 하며 말했다.
“나, 나, 나, 나 쉬할 거야.”
“쉬! 그래, 내가 쉬하는 거 도와줄게!”
김유성도 술에 취해 그녀와 어깨동무를 하고 매우 다정하게 화장실로 갔다.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걸으면서 웃고 떠들 때, 2층 VIP 구역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한 쌍의 눈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강시현은 술잔을 움켜쥐고 난간에 두 손을 얹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술잔을 쥐고 있는 손가락 마디에 이미 힘이 들어가 하얗게 질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옆에 있던 협력업체 직원은 그의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몰려왔다. 말을 잘못할까 봐 두려웠던 그 직원은 조심스럽게 떠보았다.
“강 대표님, 그 계약서는...”
“연락처를 남겨요. 시간을 따로 잡고 나중에 회사에 가서 얘기해요.”
강시현은 비서 명함을 건네고는 술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협력업체 직원이 따라가며 말했다.
“저기, 강 대표님, 이렇게 급하게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무슨 일 있어요?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괜찮아요.”
키가 크고 다리가 긴 강시현은 두 걸음 만에 1층으로 내려와 차갑게 말했다.
“집에 말 안 듣는 애가 있어서요.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따라오지 말아요.”
강시현의 말투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 협력업체 직원은 더는 따라가지 못하고 서둘러 걸음을 멈추고 연신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강시현의 도도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빛이 의심스럽게 변했다.
‘강씨 가문에 2세가 있었나? 왜 못 들었지?’
화장실로 가려면 먼저 어두운 긴 복도를 지나야 한다. 두 사람은 잔뜩 취한 채 비틀거리며 한참 동안 걸어갔지만 여전히 긴 복도 중앙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강시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김유성이 유지민의 허리에 대고 있는 손을 2초 동안 응시했다. 그러다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 김유성의 손목을 꽉 잡고 밀치더니, 다른 한 손으로는 유지민의 어깨를 잡고 뒤로 끌어당겨 자연스럽게 품에 안았다.
김유성은 비틀거리다가 넘어져 어렴풋이 고개를 들고 욕설을 퍼부었다.
“누구야! 누가 감히 나를 넘어뜨리려 하는 거야! 이리 와!”
유지민은 어리둥절해서 손을 뻗어 강시현의 옷깃을 잡고 소리쳤다.
“내가 잡아줄게! 감히 나를 괴롭히다니, 때려야지...”
뒷부분의 말이 목에 걸려 뱉을 수가 없었다.
유지민는 자신을 품에 안고, 자신이 옷깃을 잡은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단호한 옆모습은 마치 신들린 듯한 미모를 뽐냈고, 섹시한 목젖은 화에 북받쳐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삼촌!”
유지민은 갑자기 손을 놓고 자기도 모르게 몸을 곧게 세웠다.
강시현은 눈살을 찌푸린 채 이를 갈며 말했다.
“너희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김유성도 그제야 놀라서 정신을 차리고 얼른 땅에서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우리 그냥 놀러 왔어요. 나쁜 짓은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저를 믿으세요.”
“아빠가 이런 데 놀러 온 거 알아?”
강시현은 위에서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몰라요. 부탁해요. 아저씨, 제발 아버지께 말하지 마세요.”
김유성은 두 손을 모아 빌었다.
“꺼져.”
강시현이 경고하며 말했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김씨 저택 문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