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선원주는 남궁진의 얼굴빛을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혹여 왕비마마를 오해하실까 염려되어 일부러 찾아뵈었습니다. 이 일은 모두 제 불찰이옵니다. 영이가 장난이 심한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였사오며, 왕비마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사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난 후에도 남궁진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선 무엇인가가 격렬히 요동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경선이 방 안에서 걸어나왔다. 남궁진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조경선의 시선은 오직 강헌을 향해 있었다.
“연고를 가져오거라. 초연이 아까 피를 몇 번 토하였으니 약방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준비해줘.”
그녀는 손목을 살짝 움직이며 덧붙였다.
“손이 다쳐 글씨를 쓸 수가 없으니, 대신 써 주거라.”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남궁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요동치는 듯했다.
“아까 그 한 방, 많이 아팠소?”
불쑥 튀어나온 그의 말에 조경선은 살짝 눈을 내리깐 뒤, 이내 차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측빈에게 내리신 천지주를 찾으셨나 보군요.”
“...영이가 땅속에 묻어둔 것이었소. 그래서 그렇게 오래 찾지 못했던 것이지.”
그는 말을 잇기 어려운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마치 목구멍에 단단한 무언가가 걸린 듯 숨이 막히고 아려왔다.
“왕비... 미안하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 그리고 앞으로도 마지막이 아닐 테지요. 원비와 제가 갈등을 빚는 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분노를 감당하는 이는 늘 저뿐일 테니까요.”
예상했던 것과 달리 조경선은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선원주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 모두 그녀가 격렬하게 분노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녀는 오히려 담담했다. 차갑고, 무심하고, 아무런 동요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궁진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지금껏 겪어온 그 어떤 고통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통증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아픔과 쓰라림이 온몸을 휘감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손발이 얼어붙는 듯했다. 순간적

링크를 복사하려면 클릭하세요
더 많은 재미있는 컨텐츠를 보려면 웹픽을 다운받으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