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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이해가 안 되는 남자

이가인은 고현우의 말을 듣더니 속으로 피식 웃었다. 남자들은 대개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고들 하던데 고현우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난 그때 네가 아무런 대답도 안 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덕분에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게 너무 미안하지는 않았거든.” 고현우는 담담한 그녀의 말에 심장이 갑자기 답답해 났다. “나 출장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잖아. 혹시 그때 내가 전화 안 받아서 화났어?” 이가인은 순간 강수진과 그가 했던 대화가 생각나 기분이 확 더러워졌다. “진짜 이유가 뭔지 말해줘?” “응.” “너도 알다시피 나 너 예전부터 좋아했어. 그래서 너한테 품고 있던 환상 같은 것도 많았어. 그런데 막상 함께하고 보니까... 차라리 환상 속에 살던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가인은 일부러 모호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고현우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 “무슨 뜻이야?” “별 뜻 없어. 그리고 우리는 연애를 한 거지 결혼을 한 게 아니잖아. 그러니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질 수도 있는 거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사이 비밀로 하길 참 잘한 것 같아. 괜히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고.” “내가 우리 사이 비밀로 하자고 했던 게 마음에 안 들었어?” 이가인은 그를 코앞에 두고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고현우, 우린 지금 헤어진 상태야. 헤어진 마당에 자꾸 지난 과거 얘기하는 거, 이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너 평소 하던 대로 해. 그리고 너 좋다는 사람 많잖아. 혹시 외로워서 그런 거면 너 좋다는 사람 중에서 제일 예쁜 여자랑 다시 새로운 연애 시작해. 참, 혹시 걱정할까 봐 미리 얘기해주자면 우리 연애한 거 사람들 귀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만약 들어갔다고 하더라고 그 얘기를 한 사람이 나는 아닐 거야.” 고현우는 이가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홧김에 하는 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 이제는 그라는 존재를 지워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한때는 이가인과 헤어질 때 그녀가 끝까지 헤어져 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전혀 그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그가 더 질척이고 있었다. 고현우는 순간 마음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 잘 생각하고 결정한 거 맞아?” 이가인은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내뱉었다. “걱정하지마. 갑자기 어느 날 너한테 찾아가서 다시 사귀어달라고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말에 고현우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 “뭐 원하는 거 있어?” “?” “그간 너한테 뭘 선물한 기억이 없는 것 같아서.” 그 말에 이가인의 심장이 살짝 따끔해 났다. 그녀는 3초간 그를 빤히 바라보니 이내 진심이 담긴 말투로 얘기했다. “그럼 나랑 잠시 함께했었다는 거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 고현우는 이가인의 집에서 나온 지 20분이나 됐는데도 여전히 그녀가 했던 말을 머릿속에서 떨쳐내지 못했다. 솔직히 그녀가 먼저 헤어지자고 할 줄도 몰랐고 헤어짐의 이유가 고작 그런 것일 줄도 몰랐다. 게다가 둘이 사귀었던 걸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말아 달라는 말도 기가 막혔다. 그와 연애했다는 사실이 창피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그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이가인이라는 여자는 그만 몰랐을 뿐 원래 차갑고 사람을 쉽게 내치는 그런 여자였던 걸까? 그와는 그저 잠깐 즐겼을 뿐이고? 사실 고현우는 어제까지만 해도 이가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투정 한번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그와 헤어지고 싶어 하는 듯 보였고 심지어는 그를 매우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현우는 그 생각에 얼굴을 굳히며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가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리고 그는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를 힐끔 보더니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벨 소리가 거의 끊어질 때쯤에야 전화를 받았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잔뜩 뿔이 난 강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의 고현우였다면 늦게 받은 이유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설명을 했겠지만 지금은 짜증이 가득 밀려 있는 상태라 퉁명스럽게 세글자만 내뱉었다. “바빴어.” “지금 어딘데?” “병원.” “오늘 당직이야?” “왜?” “왜긴 왜야. 보고 싶어서 그러지.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와.” “바빠.” 짤막한 그의 대답에 강수진이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 “오라고. 나 안 보고 싶어?” 그 말에 고현우는 갑자기 생뚱맞게 이가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가인은 그에게서 바쁘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그가 전화를 늦게 받거나 못 받은 것에 그 어떤 원망도 쏟아내지 않았고 그 어떤 투정도 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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