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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오해 아닌데

아침 6시가 거의 되어갈 무렵, 응급실 쪽에서 차 사고로 다리 한쪽이 부러진 환자가 정형외과로 이송되었다. 콜을 받고 달려 나온 정승진은 빠르게 환자 상태를 체크하더니 이내 수술준비에 들어갔다. 이가인은 정승진을 그저 척추 쪽 전문가로 알고 있었다가 수술을 빠르고 성공적으로 마친 그를 보고는 그제야 그의 전문 분야는 척추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금 그의 천재적인 면모에 감탄했다. 8시가 되고 이가인은 퇴근 준비를 마치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때 휴대폰이 울리고 저장되어 있지 않은 전화번호가 떴다. 이가인은 그걸 보더니 서둘러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네, 교수님.” “병동 입구에서 기다릴게.” 대뜸 통보하듯 얘기하는 그의 말에 이가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네? 왜요?” “아침 안 먹어? 그리고 왜 반말 안 해?” “아... 나는 아침 안 먹어.” “그럼 나 밥 좀 사줘. 배고파.” “...” “기다릴 테니까 빨리 내려와.” 정승진은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 밥을 사준다고 하면 이가인이 거절할 게 뻔하니 그는 일부러 그녀가 거절하지 못하게 밥을 사달라고 했다. 이가인은 전화를 끊은 후 한숨을 내쉬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그녀는 행여 정승진이 정정당당하게 정형외과 로비에서 그녀를 기다릴까 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다행히 정승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에 한숨을 돌린 이가인은 빠르게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입구에서 5m 정도 떨어진 곳에 정승진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의사 가운을 벗고 있으니 확실히 의사라고 생각할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만약 마스크에 모자를 하고 있었다면 아마 사람들은 웬 연예인이 병원에 온 줄 알았을 것이다. 지금은 출근 시간이라 의사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정승진에게 인사를 건넸고 정승진은 이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이가인은 그와 일행이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몸을 숨기려는 듯 나무 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하지만 그때 그녀를 발견한 정승진이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하...’ 이가인은 입술을 한번 깨물더니 이내 다시 발걸음을 돌려 정승진 쪽으로 걸어갔다. 정승진과는 불과 5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돼서 그런지 5m가 마치 50m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못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연예인 뺨치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몸매 역시 나쁜 건 아니었지만 모델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승진은 천재라는 타이틀을 단 유능한 의사지만 그녀는 그저 상대적으로 평가가 좋은 한낱 간호사일 뿐이었다. 정승진과는 뭐든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사실 그녀가 스스로를 정승진과 비교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고 그건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이 자꾸 멋대로 그와 비교하고 있고 괜히 그의 옆에 서 있는 게 눈치가 보였다. 이가인이 막 정승진의 앞에 도착한 그때 차 한 대가 바로 옆에 멈춰서더니 혜임 병원 부원장인 양호준이 차에서 내렸다. “아침은 먹었나?” 양호준의 말에 정승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제 막 친구와 같이 먹으러 가려고요.” 그 말에 양호준은 정승진 곁에 서 있는 이가인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이내 그녀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에 이가인은 머리가 다 지끈해 났다. 10분 후, 정승진과 이가인은 병원 바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빠르게 올랐고 정승진은 국을 한입 맛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국물이 진하네.” “이곳 사장님이 유성시 분이라 국이든 국수든 간이 좀 세. 나야 어릴 때부터 이런 맛에 적응이 됐다지만 사람들 평을 들어보면 호불호가 좀 갈리더라고.” 이가인이 국수를 한입 먹으며 얘기했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서 그런지 반말도 아주 쉽게 나왔다. “나 어릴 때 유성시에서 1년 정도 살았었어. 그래서 다시 영주시로 돌아갔을 때 유성시와 정반대인 담백한 그쪽 입맛 때문에 적응이 안 돼서 한동안 고생 좀 했지. 그때 할아버지가 나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럼 커서 유성시 여자랑 결혼하라고도 했었는데.” “유성시에 예쁜 여자들 많아. 시간 나면 한번 놀러 가봐.” 이가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너는 보통 언제 유성시로 돌아가는데?” “설 연휴 때.” “그럼 그때 너 찾으러 유성시로 갈게.” 이가인은 그 말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정승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는듯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내가 착각한 거라면 정말 미안한데 말이야.” 정승진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는 오해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어제 일도 그래. 도움받아놓고 이런 소리 하는 거 엄청 웃긴 거 나도 잘 아는데 네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나뿐만이 아니라 동료 직원들도 그렇고 환자들까지 다 네가 나랑 잘해보려고 그러는 거라고 오해해. 물론 너는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거겠지만. 그러니까 앞으로는 적당한 거리를 지켜줬으면 좋겠어.” 이가인은 이 정도로 확실하게 말했으니 정승진도 그녀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승진은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듣더니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천천히 다섯 글자를 내뱉었다. “오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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