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나는 바로 학교로 돌아갔다. 다만 숙소 앞에서 이경서를 만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누구도 내가 시력을 회복한 걸 몰랐기에 나는 지팡이를 두드리며 이경서를 지나쳐 숙소로 향했다.
그 순간 이경서는 나를 불러세웠다.
“선배님, 무슨 일이죠?”
“여기 사람 많으니까 저쪽 가서 얘기해.”
이경서는 다짜고짜 나를 잡고 데려갔다. 남들이 보기엔 나를 부축해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꽉 잡고 끌고 가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는 무조건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겨울이 되면서 나무는 이미 황갈색으로 변했지만 아직 잎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경서는 그제야 내 손목을 놓아줬다. 지나가는 여학생들 눈에는 다정한 선배처럼 보였을 지도 모른다.
다만 내뱉은 말은 가식적인 모습과 달리 다소 직설적이었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게 너무 안정적인데? 어제 와이키키에서도 지팡이가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보였어.”
“와이키키?”
나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선배님도 거기 있었나요? 선배님은 시각장애인이 손잡이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는 게 얼마나 쉬운지 모를 거예요.”
나는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시각장애인처럼 행동했다. 거의 본능적이었다.
아까 호텔에서 송지우와 강재욱을 만났을 때도 나는 방향을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경서는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봤다.
“계속 이딴 식으로 말할 거야? 강재욱한테는 이러는 꼴을 못 봤는데.”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선배님, 많이 바쁘실 텐데 할 말 있으면 얼른 하세요. 그동안 나한테 함께 기부하자고 하거나, 지우 언니를 위해 옷을 입어보라고 하기도 했죠. 오늘도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거죠?”
이경서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똑똑하면서 강재욱이 너한테 마음이 없는 건 왜 못 알아보는 거야?”
처음 듣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송지우에게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선배님, 대체 뭘 원하는 거죠?”
“강재욱은 아직 너를 얻지 못했으니 자꾸 너한테 마음이 쓰이겠지. 너를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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