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경찰에 신고한 덕분에 스키장을 포함한 리조트 전체가 즉시 봉쇄되었다. VVIP 이용객이 아닌 이상, 누구도 당분간 떠날 수 없게 되자, 로비에는 항의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곧이어 경찰이 빠르게 도착했다.
“서아린 씨,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난을 감지하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여경이 내 손에는 따뜻한 물 한 잔이 쥐여주며 팔을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
그때까지도 나는 손을 떨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어요. 열이 나는 것 같아서 제 일행인 재욱 오빠를 찾으러 나갔는데, 결국 못 찾고 길을 잃었어요. 겨우 방으로 돌아왔더니 문이 열려 있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프런트에 내려가 신고를 부탁했어요.”
호텔 매니저도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경찰은 즉시 CCTV 확인을 요청했다.
전생에서 같은 호텔 매니저가 고객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CCTV 확인을 거절했었지만, 이번에는 도난당한 물건이 2억 원짜리 팔찌였기에 책임을 피하려는 듯 협조적이었다.
그러나 보여 준 영상은 복도의 일부만이었다. 그것도 강재욱이 떠난 이후의 장면부터였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면 속에 키 170cm 정도의 검은색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나타났다.
“저 사람, 아까 입구에서 나가겠다고 실랑이하던 그 사람이잖아요.”
한 여성 투숙객이 경찰이 보지 않는 틈에 끼어들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경찰은 즉각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중년 남성을 붙잡아 왔다.
“나는 안 훔쳤어요! 팔찌 같은 거 손도 안 댔다니까요!”
그러나 그의 주머니에서 내가 묶고 있는 방의 카드키가 나왔다.
“이거 어디서 난 거죠?”
술에 취한 남자는 눈을 슬쩍 나에게 돌리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냥...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주운 거예요! 형사님,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제발 믿어 주세요! 몸수색해 보세요!”
경찰은 그의 수상한 태도를 예의주시했다.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경찰관님, 2억 원짜리 보석을 훔치면 몇 년 형을 받나요?”
멀리서 한 법학 전공 학생이 나서서 대답했다.
“최소 10년은 나올 겁니다. 변호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면 감옥에서 늙어 죽을 수도 있죠.”
“아, 아니라니까! 난 보석을 훔치려던 게 아니라 그냥... 그냥 사진을 찍으려고 들어간 거예요! 다른 건 건드리지도 않았어요. 방에 아무도 없어서 그냥 나왔어요!”
처음부터 불안해 보이던 중년 남자는 완전히 겁에 질려 실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진? 무슨 사진?”
“저기 앉아 있는 여자 좀 봐.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보다 더 예쁘잖아. 당연히 몰카라도 찍으려고 들어간 거겠지.”
“설마요! 몰카요?”
“세상에! 끔찍해! 다행히 실패해서 망정이지, 정말 소름 돋는다.”
“이런 쓰레기는 당장 감옥에 보내야 해! 이 리조트는 보안시스템이 엉망이네!”
호텔 매니저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
“저희 호텔은 안전합니다! 이 카드키는 절대 별도로 저희가 발급한 카드키가 아닙니다. 비상 카드키는 여기에 보관되어 있어요...”
“그럼 이게 재욱 오빠가 가져갔던 카드키라는 거예요?”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팔을 감싸안았다. 그리고 중년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실대로 말하세요! 재욱 오빠가 시킨 거예요?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완전히 얼어붙었다. 마치 들킬 것을 예상 못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 그의 태도가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내가 힘없이 몸을 떨고 있자, 한 남학생이 격분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 강재욱이라는 놈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오후에 내가 이 누나를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 눌러드렸는데, 그 자식이 누나한테 막말하면서 엄청 무례하게 굴었어요. 아, 그리고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외출하던데, 진짜 쓰레기 같은 놈이었네요!”
나는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 오한에 열까지 올라 머리가 띵했다.
카드키가 중년 남자의 손에 있었다는 건 여러 가능성이 있었다. 정말 주웠을 수도 있었고, 강재욱이 일부러 떨어뜨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용해야 했다.
나는 선제공격을 택했다.
“재욱 오빠가 시켰죠? 강재욱 씨가 시켰냐고요!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말해 보세요!”
남자는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고, 나는 내 추궁이 정확했기 때문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옆에 있던 여경의 소매를 붙잡고 부탁했다.
“제발... 학교 기숙사로 데려다주세요. 다른 곳은 어디도 안전하지 않아요...”
열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내 이마는 뜨거웠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하얀 천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강렬한 불빛이 눈을 찌를 듯이 밝았고 목이 바짝 말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짙은 소독약 냄새 속에 섞인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내 피부를 서늘하게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누군가가 내 목을 졸랐고 온몸이 침대에 깊숙이 파묻히는 듯한 압박감이 엄습했다.
역시나 강재욱이었다. 병상 옆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큰 키와 날렵한 실루엣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위압감은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고, 내가 괴로워할수록 길고 날카로운 손가락은 내 목을 더욱 세게 조여왔다. 그의 차가운 눈빛 속에서 경멸이 한층 더 짙어졌다.
나는 마치 그의 손에 들린 하찮은 벌레 같았다. 그가 조금만 힘을 주면 손쉽게 목이 꺾일 듯했다.
‘이제 도망칠 수 없는 건가...’
나는 숨 막히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아...”
나의 손톱이 본능적으로 그의 손등을 파고들자, 깊이 긁힌 자국에서 피가 맺혔다. 그는 낮게 신음을 흘렸지만, 끝내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지우에 대해 헛소문 퍼뜨릴 때, 넌 뭐 하고 있었어?”
그는 냉소적인 웃음을 흘렸다.
“참, 내가 두 명의 여자를 데리고 스키장에 갔다고? 하룻밤에 여자 둘을 갖고 놀았다고? 그런 말이 들렸을 때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네가 해명이라도 했어야지. 네가 가만히 있은 덕분에 지우가 어떤 꼴을 당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숨이 막혀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의식이 희미해질 무렵, 그가 마침내 손을 거두었다.
그의 손은 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 나서 귓가를 스치고 턱선을 타고 내려가더니 마침내 내 옷깃을 파고들었다.
“너란 인간이 어디까지 뻔뻔한지, 확인해 볼까?”
나는 그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기침을 쏟아낸 뒤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너... 경찰한테 내가 시켜서 그 남자가 사진을 찍으려 했다고 말했어?”
그는 옷 사이로 집어넣었던 손을 빼내고 내 턱을 움켜쥐었다.
“너란 여자는 보고 싶으면 언제든 벗길 수 있어. 네 사진을 찍으라고 시킬 이유가 없잖아!”
나는 필사적으로 침착해지려 했지만,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나를 인간으로조차 보지 않았다. 장난감처럼 취급하며, 한마디 한마디로 나를 짓밟았다.
“재욱 오빠, 내가 신고한 건 도난 사건 때문이야.”
나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가 해명하지 않은 건,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야. 오빠가 나랑 지우 언니랑 같이 스키장에 갔던 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하룻밤 두 여자’ 같은 소문은 들은 적도 없고, 퍼뜨린 적도 없어. 난 이후에 열이 나서 그대로 쓰러졌어. 그런데도 오빠가 날 원망한다면... 지우 언니가 오빠를 받아주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가네...”
송지우는 애초부터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 내가 죽기 전까지도, 강재욱은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는 그저 그녀를 향한 헛된 집착 속에서 허우적댈 뿐이었다.
강재욱이 갑자기 허탈하게 웃으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더니 병상을 세게 걷어찼다. 침대가 요동쳤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송지우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강재욱에게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금기였다.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누군가 입 밖에 내는 걸 원치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송지우가 정확히 누구를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단지 그녀의 마음이 떠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직접 송지우에게 따지지 못하고, 그저 혼자 미쳐갈 뿐이었다.
하지만 송지우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