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장
나는 학업에 열중하며 실습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디자이너 보조로 한정 짓지 않고 주얼리나 원단, 의상 가공 등 의상 디자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보기로 했다.
운이 좋았는지 드디어 디자이너 어시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 디자이너는 업계에서 꽤나 유명했지만, 성격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일주일 정도 일을 하고 있었을 무렵 김정태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때 나는 막 퇴근해서 버스에서 내린 뒤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야?”
나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한번 바라보며 대답했다.
“김정태 씨, 제 경제적 지원을 이미 끊어놓고선 우리가 이제 무슨 관계가 있다고 제가 어디 있는지 알려드려야 하죠?”
그 말에 그의 목소리는 금세 격앙되었다.
“김수아, 너 할머니를 요양원에서 데려오게 하고 싶지 않은 거야?”
나는 그 말에 순간 얼어붙었고 목소리마저 차갑게 가라앉았다.
“감히 할머니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는 당신 어머니라고요!”
그러자 김정태는 비웃으며 대답했다.
“내 어머니? 그 늙은이는 날 단 하루도 키운 적 없어. 이렇게 잘 먹이고 입히며 모셔드리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했어. 오히려 너야말로...”
“그 여자가 너를 열 살까지 키웠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되든 상관도 안 하는 거야?”
김정태가 노수영과 이혼했을 때 나는 겨우 세 살이었다. 그때 노수영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나를 버렸고 김정태는 사업 확장에만 몰두하느라 나를 시골에 있는 할머니에게 떠넘겼다.
나는 할머니와 단둘이 열 살까지 의지하며 살았다.
그러다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해외에서 잘 지내던 노수영이 갑자기 연락해 왔고, 내가 비참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김정태와 협의한 끝에 나를 데려가게 되었다.
내가 김정태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는 이미 이미영과 재혼한 상태였고 그때 김정태와 이미영의 딸 김수연은 벌써 일곱 살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 마음속에 불이 일었지만, 속으로 삼킬 수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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