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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장

긴 손가락으로 벨트를 만지작거렸는데 손에 깁스를 하다 보니 쉽게 채우지 못했다. 바지를 다 입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못 볼 꼴을 당할 뻔했다. 순간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너...” 그를 질책하고 싶었지만 너무 창피하여 재빨리 도망쳐 나왔다. 고서준은 진짜 왜 이렇게 밉상인 걸까? 나는 문 앞에 서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댔고 얼굴은 빨갛다 못해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심지어 질식할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긴장한 채 눈을 질끈 감았는데 머릿속에서 그가 긴 손가락으로 벨트를 만지작거리던 화면이 자꾸만 맴돌았다. 침대에 널브러진 이불을 본 후 나는 곧장 다가가서 한 번이고 두 번이고 열심히 이불을 갰다. 그가 나온 후에야 나도 이불을 한쪽 옆에 내려놓고 머리를 홱 돌렸다. 감히 그를 마주 볼 엄두가 안 났으니까. 한편 고서준은 건달처럼 거들먹거리며 내게 물었다. “왜? 쑥스러워?” 이건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자석 같은 감미로운 목소리에 나는 흠뻑 빠져들 것만 같았다. 애초에 나는 고서준의 겉모습만 보고 사랑한 게 아니라 그의 완벽한 성격에 반해버렸다. 다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뭐든 다 갖춘 완벽한 남자였고 만인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왕자님 같은 존재였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너 진짜 왜 그래?” 방금 그의 행동을 떠올리니 나는 난감해서 어쩔 바를 몰랐다. 비록 전생에 우린 함께 잔 사이였으나 그땐 부부였고 지금의 난 순진한 소녀일 뿐이다. 얼굴도 청순했던 시절로 돌아왔고 내 마음도 덩달아 순진무구했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 벨트를 내밀었다. “너 때문에 손을 다쳐서 벨트도 못 매는 거 안 보여?” 아무래도 한참 애썼는데 못 맨 듯싶었다. 순간 나는 얼굴이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왜 이래?”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댔다. 지금의 나는 겉모습만 숙녀일 뿐 속에선 음란 마귀가 씌어 있었다. 머릿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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