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장
놀랍게도 난 어젯밤에 단잠을 잤다.
고서준이 야외 세트 담당 건으로 전화 오거나 메시지를 보낼 줄 알았는데 밤새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마치 이 일을 마음에 새겨두지 않는 것마냥, 또 혹은 내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속에 담긴 연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그도 동아리에 들 생각이 없었는데 학점을 채우기 위해서 마지 못해 이벤트 기획 동아리에 가입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더니 또 나랑 한팀이 되었고 이 일로 괜히 이지현이 오해할까 봐 일부러 나랑 거리를 유지하는 거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저도 몰래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만 이젠 모든 걸 내려놨으니 마냥 홀가분할 따름이었다.
더는 씁쓸하고 우울한 감정에 휩쓸린 내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좌지우지 당하지 않는 기분이 이토록 자유로운 거였구나.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아침 먹으러 갔다.
이제 막 아래층에 내려왔는데 가까운 숲속에 누군가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평일에는 커플들이 문 앞에 서 있는 걸 자주 봤는데 이른 아침부터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걸 보니 백 점짜리 남자친구인가 보다.
그 남자가 누군지 궁금해하고 있을 때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이른 아침에 왜 잠은 안 자고 우리 기숙사 아래로 달려온 걸까?
“왜 그런 것 같아?”
고서준이 이를 악물고 나를 째려봤다. 나한테 화난 듯싶었는데 대체 뭘 화나게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미리 말하는데 나 요즘 이지현 본 적도 없고 걔 심기 건드린 적도 없어.”
나는 재빨리 선을 긋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때 고서준이 휴대폰을 들고 카톡을 열어서 내게 대화창을 보여줬다.
“왜 내 카톡 삭제했어?”
그 순간 나는 뻘쭘해서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우리 기숙사까지 찾아온 이유가 고작 이걸 묻기 위해서라고? 내가 왜 카톡을 삭제했는지 궁금해서?!
대화창에는 고서준이 내게 말을 보냈고 그 위에 보란 듯이 삭제당했다는 문구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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