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1장

이진섭이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덤덤해졌다. 짧은 시간 여러 정서를 느낀 이진섭은 결국 그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 가지만 물을게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여러 번 변하는 이진섭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착잡해졌다. 간단하지만 무거운 질문은 마치 기나긴 세월을 지나 불어온 바람처럼 마음속에 쌓인 먼지를 불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최대한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잘 지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못 지낸 건 아니에요. 대신에 이런저런 굴곡을 겪으면서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어요.” 나는 이진섭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가 건넨 질문에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제가 떠나면서 김정태에게 건 유일한 조건이 바로 수아 씨를 잘 보살펴주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 답이 간절해요. 김정태가 잘해주던가요?” 나는 그 말이 우습게 느껴졌다. 김정태가 나를 잘해주다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김정태는 친부였지만 나를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지 못해 안달 나 있었고 나를 이용해 더 큰 이익을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이진섭의 말은 마치 칼처럼 원래도 너덜너덜한 내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팠지만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동자에 차오른 눈물을 흐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런지 목소리가 티 나지 않게 떨리고 있었다. “제 유년 시절 기억에는 엄마가 없어요. 김정태는 엄마가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면서 엄마를 정신병원에 가뒀고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 엄마는 병원에서 독극물을 먹고 자살했어요. 나는 그때 어머니가 정말 미친 줄 알았고 그래서 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보다 간절히 엄마의 사랑을 바랐다. “행복한 시절을 꼽으라면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에요. 그러다 김정태가 잘나가게 되면서 할머니를 시골로 보내버렸어요.” 김정태가 나를 데려간 목적은 나를 이용해 더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