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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3장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난 입술을 살짝 깨물고 나서 입을 열었다. “별일 없으면 난 이만 가볼게.” 여기에 남아있으면 할 얘기도 없고 서로 어색하기만 했다. “수...” 고서준이 뭔가 얘기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한 글자를 뱉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수아’라고 부르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이제 와서 그렇게 친근하게 부를 관계는 아닌 것 같다. 고서준은 의자에 앉아 날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흐르는 감정이 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고서준?” 난 그저 빨리 지금, 이 상황을 끝마치고 싶을 뿐이다. 내 목소리에 고서준은 순간 눈빛을 빛내더니 다시 시묵룩한 표정으로 바꿨다. 조금 안쓰러웠다. 그러다 이내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찌하든 간접적으로 우리 할머니를 해친 사람이었다. 다시 만나게 되면 남은 건 증오와 미움뿐일 거로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머뭇거리며 다시 잘 지내보려는 고서준을 보니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난 응답 없이 그저 차갑게 고서준을 보고 있었다. “자, 커플들 사이 문제는 집에 가서 서로 대화를 나누시고요. 그만 가보셔도 됩니다.” 숨 막힌 분위기에 의사 선생님도 답답했는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내쫓았다. “커플 아니에요.” 난 쌀쌀하게 입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답 한 거지만 눈길은 고서준을 마주하고 있었다.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보며 난 한마디 더 보탰다. “마침, 알고 지내는 낯선 이 사이가 맞겠네요.” 내 말을 듣자 고서준을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던 눈동자는 빛을 잃었고 입을 우물댔지만,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궁금하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회피하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실망 가득 찬 그의 얼굴을 보며 난 손을 꽉 쥐고 자신한테 경고했다. ‘그래, 그냥 아무 상관 없는 낯선 사람이야.’ 그가 날 살린 건 죄책감을 덜려고 부린 수작일 뿐이다. 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잡생각들을 버리려고 했다. 인사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나서 난 밖으로 나왔고 고서준도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우린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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