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헛된 욕심
...
박지환은 윤서아가 괜찮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3층에서 내려왔다. 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곧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한경에게 물었다. "민서희 어디 갔어?"
넋이 나간 한경이 대답하기도 전에 박지환의 휴대폰이 울렸다. 본가에서 걸어온 전화였다. 그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고 건너편에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환이 너도 참. 좋은 일이 있으면서 왜 미리 말하지 않았니? 서아 임신했단다. 어서 집으로 돌아와."
박지환이 본가에 도착했을 때 민서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사모님은 한 켠에서 민서희의 손을 붙잡고 기뻐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민서희는 박지환이 들어온 것을 보고 고개를 푹 숙이며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화를 참으며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아주 좋아!"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얌전했던 그녀가 이렇게 한 방 먹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민서희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사모님은 박지환을 노려보며 말했다. "좋긴 뭐가 좋다는 거니? 태도가 왜 그래? 서아가 임신까지 했는데 기쁘지 않니?"
박지환은 이를 악 깨물며 차가운 눈빛으로 민서희는 노려보며 말했다. "당연히 기쁘죠. 제가 왜 안 기쁘겠어요?"
사모님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당연히 기뻐야지. 얼마나 좋은 일이니. 너희 둘 결혼한지도 어느덧 2년이나 지났고 드디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딸이든 아들이든 우리 박씨 집안에게 모두 좋은 일이지. 너 이 자식 서아 잘 지켜줘야 한다. 서아 몸도 약한데 아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절대 가만 안 둘 거야."
대화를 나누다 박 사모님은 갑자기 끓이던 보신탕이 떠올랐다. "주방에 국 올려놓은 거 깜빡했네. 가서 한 번 봐야겠다."
겁에 질린 민서희는 곧바로 따라 일어났다. "어머니. 저도 같이 가요!"
"거기서!" 박지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먹잇감을 노리는 듯 민서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한테 할 얘기 있어."
사모님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그냥 두 사람이 알콩달콩 장난 친다고 생각하며 민서희의 손을 붙잡으며 위로해 주었다. "서아야, 괜찮아. 긴장할 필요 없어. 지환이가 겉으로는 엄격하고 차가워 보여도 속으로는 누구보다 네 뱃속의 아이를 반기고 기뻐할 거야. 지환이가 널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데. 걱정하지 말고 둘이 얘기 잘 나누렴."
사랑? 당연히 사랑하겠지. 다만 자신이 아닌 진짜 윤서아를 말이다.
민서희는 입술을 꽉 깨물고 사모님이 주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악!" 박지환은 그녀의 가냘픈 손목을 꽉 들어올리며 차가운 시선으로 공포에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민서희, 내가 전에 널 너무 우습게 생각한 거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이런 식으로 날 거역하는 거다니!"
짐작하지 않아도 박지환이 얼마나 화가 많이 났는지 알 수 있었다.
민서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지환 씨... 저 정말 다른 부탁 없어요. 제발 이 아이 목숨만 살려주세요..."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박지환은 차갑게 웃으며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서희, 내가 네 헛된 욕심 모를 거라고 생각해? 넌 이 세상에서 민서희라는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도 윤서아의 그림자로 내 아내로 살고 싶은 거잖아. 내 아이를 낳고 순순히 떠나겠다고? 지금부터 이렇게 내 말에 거역하는데 앞으로 아이를 핑계로 삼아 매체에 노출하려 수단을 가리지 않겠지. 이렇게 여우같은 짓 한 게 처음도 아니잖아."
민서희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말이 비수마냥 그녀의 가슴에 깊이 꽂힌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 칼을 뽑아내 그녀의 가슴에 피가 철철 흐르게 한 것 같았다.
그냥 조용히 혼자 좋아하는 것 뿐인데, 그것마저 헛된 욕심이라니...
"전 그냥......"
"그냥 뭐? 온갖 수를 써서라도 이 아이를 낳겠다. 민서희 너 설마 날 너무 사랑해서 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날 그리워하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는 맘껏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민서희. 그만 욕심 부려. 나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병원에 가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박지환이 얼마나 잔인한 사람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민서희는 입술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박지환의 어머니는 주방에서 나오며 이상한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민서희를 자신의 뒤에 감싸며 물었다. "무슨 일이니?"
박지환은 어머니께 해석하며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오늘 제가 서아를 화나게 했거든요. 그래서 갑자기 이렇게 본가로 찾아왔나 봐요. 얘기 잘 끝났어요. 좀 이따 데려갈 거예요."
"네가 남편 노릇을 잘 했으면 서아가 이렇게 본가까지 왔겠니? 결국은 네가 잘못한 거지." 사모님은 자신의 아들을 감싸지 않았다. 오히려 민서희를 위로해 주었다. "서아야. 돌아가기 싫으면 본가에서 지내도 괜찮아. 엄마가 매일 너랑 같이 쇼핑다닐게."
"어머니." 박지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민서희는 사모님의 뒤에 숨어 조바심을 떨며 박지환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어머니... 저 그럼 본가에서 어머니랑 며칠만 지낼게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박지환의 검은 눈동자는 광기로 가득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한 눈빛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았다. 만약에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민서희는 지금 당장 숨이 멎었을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명령에 거역한 민서희를 바라보며 박지환은 차가워진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아야, 아직도 내가 일만 하고 네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화가 안 풀린 거야? 그래 그럼. 본가에서 며칠 지내고 싶으면 나도 너랑 같이 여기 남을게. 너 화 풀리면 그때 같이 돌아가자."
박지환의 미소는 따사로운 봄바람 같았지만 그녀에게는 악몽처럼 느껴졌다.
민서희는 표정이 싹 변하더니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한참 지나서야 한 마디 내뱉었다. "하지만 당신 물건들 다 별장에 있잖아요——"
"오래 있을 거 아니니까 괜찮아."
그는 매일 밤 3층에 가서 윤서아의 곁에서 얘기를 나누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윤서아를 별장에 혼자 버려두고서라도 자신을 지켜보려 하다니.
민서희는 겁에 잔뜩 질렸다.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박지환은 정녕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걸까?
그녀는 절망적이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아무리 박지환을 피한다고 해도 결국 밤에는 같은 침실에서 자야 했기 때문이었다.
박지환은 미리 방에 들어가 있었고 민서희는 문 밖에서 반 시간 넘게 망설이다 결국 문을 열고 들었다. 방 안에는 곧바로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박지환은 베란다에서 앉아 잠옷을 걸치고 있었고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결과 검은 눈빛은 마치 어두운 밤에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같았다.
민서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그때 박지환이 말했다. "이리 와."
민서희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갔고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등줄기에 땀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다가가기도 전에 그의 손이 갑자기 그녀의 목을 꽉 쥐었고 그 순간 그의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민서희, 너 정말 겁도 없구나!"
민서희는 떨고 있었고 화가 치밀어 오른 박지환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교훈을 주지 않으면 아픈 맛을 모른다 이거지!"
그는 그녀의 옷을 벗겼고 차가운 바람이 뼈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깜짝 놀란 민서희는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지환 씨!"
그녀는 당황하며 말했다. "뭐하는 거예요!"
"뭐하는 거냐고?" 박지환의 손목에 든 힘은 줄어들지 않았고 그녀를 힘껏 베란다에 있는 테이블로 밀어던졌다. 유리에 비친 그의 잘생긴 얼굴은 재수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떨 거 같은데?"
그는 그녀의 두 팔을 등 뒤로 꽉 잡은 채 매우 거칠었다.
"내 아이를 낳아서 나한테 매달려 이런 거 원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면 너 같이 별 볼일 없는 여자가 무슨 수로 다른 남자들 눈에 들겠어? 매번 여우처럼 가까이 들이대면서 얼마나 기대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오늘 제대로 만족시켜주지!"
민서희는 놀란 마음을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아이가 위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