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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절대 그녀가 아니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눈썹을 찌푸린 채 여자의 원망을 듣고 있던 그는 참지 못해 화를 냈다. “몸이 허약하고 어지럼증과 발열 증상이 자주 일어나는 상황이 1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건 호전되지 않았다는 거야. 작은 진료소지만 유명한 의사가 진찰하고 있으니 꼭 나아질 거야.”   “이런 진료소에서요?” 윤서아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는 듯했지만, 박지환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뭔가 결정한 듯 남자의 어깨를 감싸고 말을 이었다. “저는 그냥 사기꾼일까 봐 걱정돼서 말이죠. 원래 일도 바쁜데 괜히 돈 쓰고 시간도 낭비하면 제가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요.”   “아니야.” 박지환은 그녀의 손길이 불편한지 찌푸리고 있던 미간은 더욱 깊어졌다. “네 몸보다 중요한 건 없어. 1%의 희망이라도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윤서아는 그의 말에 순간 볼이 빨개졌다. “지환 씨, 저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은 병실로 들어가 환자에게 서이준이 진찰 보는 곳을 묻고 진찰실로 들어가려 할 때 문득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희 언니, 저기 그네 놀래요!”   박지환은 거리가 멀어 잘못 들었나 싶어서 무의식적으로 뒤뜰로 시선을 옮겼고 순간 익숙한 모습에 넋을 잃었다.   민서희?   아니야! 박지환은 머릿속의 생각을 바로 부정했다. 아이와 함께 다른 나라로 떠났는데, 그녀일 리 없어.   그리고 혹시 진짜 그녀라면 이런 작은 진료소가 아닌 바로 자기를 찾아왔을 것이다.   “지환 씨, 왜 그래요?”   박지환은 민서희라는 이름에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아니야.” 잠시 후, 주먹을 꽉 쥐고 있던 그는 손에 힘을 풀고 말을 이었다. “들어가자.”   서이준은 윤서아의 맥을 짚고 나서 필요한 약재와 기피해야 할 부분들을 알려줬고 박지환은 뒤에 앉아 책상에 놓인 휴케라가 심어진 화분을 바라봤다.   그는 눈앞의 꽃이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당시 결혼했던 그 여자는 밖에 나가는 걸 꺼렸었고 유일한 취미라고는 거실에서 휴케라 꽃을 재배하는 것뿐이었고   가끔 웃으면서 그한테 물었었다. “지환 씨, 휴케라 꽃의 꽃말이 뭔지 알아요? 바로 아름다운 미래예요. 왜냐면 가장 추운 날에 가장 아름다운 색을 갖추고 있거든요. 저희 감정도 그러지 않을까요?”   “이 꽃 말이에요.” 박지환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넥타이를 정리하면서 입을 열었다. “서 선생님, 이런 꽃은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꽃을 심은 거죠?”   방금까지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하고 있던 서이준은 휴케라 꽃을 보더니 미소를 보였다. “사실 저도 잘은 몰라요. 그녀가 심은 거예요.”   “그녀라면?”   박지환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답답해졌고 머릿속에는 뒤뜰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누구를 말씀하신 거죠?”   서이준이 답하기도 전에 민서희가 진료실의 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이준 씨, 마당의 그넷줄이 끊어졌어요. 자칫하면 아이들이 다칠 뻔했는데, 퇴근하면 튼튼한 줄 사 와요.”   민서희는 말을 마치자 웬 뜨거운 시선이 자기를 향하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앞을 볼 수 없어 엄청 불안했다.   “진찰하고 있어요?” 그녀는 박지환이 앉은 곳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지환은 민서희를 본 순간 주먹을 꽉 쥔 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깊은 상처로 가득해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안타까운 마음보다 무서울 정도였다. 그리고 두 눈은 빛을 잃어 조금의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박지환은 이런 그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민서희?   아니야... 절대 그녀일 리 없어!   민서희는 아름답고 1살 정도의 어린아이와 함께 그의 앞에 나타났어야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착각한 거야. 착각한 게 틀림없어!   박지환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민서희를 완벽하게 보호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어긋난 행동을 했어도 민서희가 죄를 떠맡은 이상 그녀를 계속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 보호를 받았는데 얼굴이 망가지고 실명할 리가 없잖아!   박지환은 어두운 표정으로 모두의 시선 속에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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