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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이씨 가문에는 친척이 적이 않았기에 암투를 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꼬는 말을 듣는 거에 이미 도가 튼 오연주였다. 하지만 이유영은 이씨 가문에서 항렬이 가장 낮아도 가장 우수하고 예쁜 데다가 공부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친척들의 환심도 살 줄 아는 아이였다. 하여 이유영이 있는 한 오연주는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었다. 할머니인 유옥선 역시 이유영을 가장 예뻐했고 심지어 여러 손자보다 더 아끼기도 했다. “형수, 생일잔치 시작된 지 30분이나 지났는데 이제 오신 거예요? 오늘 엄마 생신이신데 너무 무심한 거 아니에요?” 오연주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유옥선 앞으로 가서 사과했다. “어머님,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일부러 늦게 온 건 아니고 차가 막혀서 시간이 좀 걸렸네요.” “괜찮아, 온 것만으로도 고마워.” 유옥선은 오연주를 나무라지 않았다. 하지만 말투에서 약간의 언짢음이 느껴졌다. 오연주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이유영한테 눈치를 줬다. 이유영은 바로 눈치껏 잘 포장된 선물을 할머니한테 건네주며 개봉했다. “할머니, 오늘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만수무강하며 행복하게 사세요! 이건 저희 가족이 준비한 작은 선물이에요. 비취로 만든 관음 조각상인데요, 할머니 마음에 드셨스면 좋겠어요.” 유옥선은 선물 박스에 들어있는 선물을 보고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상자 속 비취는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역시 우리 유영이가 제일로 기특해! 선물 너무 마음에 드는구나.” “할머니, 그리고 여기 제가 직접 그런 그림도 있어요.” 이유영은 바로 어디선가 두루마리가 된 종이를 꺼냈고 이내 할머니 앞에 펼쳐보였다. 그림 속 인물은 카노푸스로 장수를 의미했고 생신에 아주 걸맞은 선물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그림 실력도 상당했다. “어디 보자...” 유옥선은 돋보기를 쓰고 그림을 자세히 살펴본 후 이유영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영이 그림 실력이 더 좋아졌네?” 할머니는 싱글벙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고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할머니는 가문이 이미 유복한 지라 선물의 가치보다는 마음 씀씀이를 더 중히 여겼다. 지금까지 이유영의 그림을 이길 수 있는 선물은 없었다. “유영이가 또 그림을 그렸어? 우리도 좀 보자!”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주인공은 이씨 가문의 먼 친척이었다. 이유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해요. 연습을 더 많이 해야죠.” 그러고는 자기 그림을 모든 손님에게 보여줬다. “유영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했는데 역시 명불허전이네.” “이 어린 나이에 저 정도 실력이면 나중에 대단한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유영아, 나중에 갤러리에서 그림 전시하면 우리도 보러 갈게.” “진짜 천재는 남다르긴 하네...” 한편, 조규리는 친척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유영을 보며 시샘을 느꼈다. 하지만 자기 못난 아들을 생각하며 차가운 얼굴로 칭찬 릴레이에 가담했다. 오연주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득의양양한 듯 흐뭇하게 웃었다. 이유영 역시 친척들의 칭찬을 들으며 마음 속에 남아있던 먹구름을 말끔히 걷어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친척들의 칭찬과 찬양, 이 모든 건 내 차지야!’ 그녀는 오늘의 주인공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곳에 온 후로 이지아한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지아 같은 버러지는 평생 이유영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지아를 언급했다. “형수, 지아가 소년원에서 나왔다며?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오늘 왜 안 데리고 왔어?” 이지아는 줄곧 오연주 뒤에 서 있었다. 모두 이유영을 칭찬하기 바빠 이지아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발언에 다른 친척들도 그제야 이유영한테 쌍둥이 언니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듯했다. 일부 친척들은 이지아가 소년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이 말을 듣고 표정이 변했다. “지아야, 어서 친척들한테 인사해야지. 소년원에서 예의범절을 안 가르쳐줬어?” 모두의 주의가 이지아한테로 쏠리자 조규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나섰다. “형수, 아무리 지아가 유영이보다 못났다고 해도 예의범절은 잘 가르쳐줬어야지.” 이에 오연주는 표정이 굳었지만 그래도 얼른 이지아를 보호해줬다. “오랜만에 외출하는 거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네요.” 사람들만 많지 않았다면 진작에 이지아한테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이유영은 도착하자마자 할머니 그리고 친척들과 인사를 나눴지만 이지아는 무표정으로 모르는 사람들 보듯 가만히 있었다. ‘이런 것도 딸이라고, 진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유옥선의 표정도 굳었다. “됐어,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천천히 가르치면 되지.” 할머니는 이지아의 얼굴과 오관을 자세히 보며 흠칫 눈살을 찌푸렸다. 할머니의 인상 속 어린 이지아는 귀엽고 말 잘 듣는 아이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귀엽던 얼굴이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어있었다. 애당초 그녀는 이지아가 소년원에 가는 걸 반대하지 않았었다. 그곳에서 교훈을 얻고 새 사람이 되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지금 이지아의 모습은 할머니를 더욱더 실망하게 했다. “지아야, 얼른 가서 할머니 생신 축하드린다고 말해!” 오연주는 이지아를 흘겨보며 재촉했다. 이지아는 부추김에 의해 할머니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응, 그래.” 유옥선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이지아와 이유영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 딴판이었다. “지아야, 네 선물은?” 오연주는 분위기를 풀고자 딸을 재촉했다. 이지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최민기가 준 케이스를 꺼냈다. 오연주가 이지아한테 다도 세트를 준비시켰지만 이지아는 차에서 오연주가 준비한 선물을 챙기지 않았다. 어릴 때, 할머니는 과거의 이지아한테 잘해줬었다. 단지, 이유영의 모함으로 그 당시의 지아는 점점 더 나약해졌고 친척들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이지아는 최민기가 선물한 물건을 할머니한테 주기로 했다. 이로써 이 몸의 주인인 이지아의 소원을 성취되었다. “이게 뭐야?” 이지아의 선물을 보며 유옥선이 물었다. 이지아는 대답 없이 선물을 개봉하고 할머니한테 보여줬다. 유옥선은 눈앞의 물건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꽃이야?” 할머니는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옅은 초록색의 식물을 보고 고개를 들어 이지아를 쳐다봤다. 비록 평범한 꽃이었지만 매우 예뻤고 마음 씀씀이가 보였다. “이게 뭐야?” 조규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달려와 할머니 옆에 섰다. 꽃송이를 본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꽃 한 송이를 이런 고급 케이스에 담은 거야? 난 또 비싼 선물인 줄 알았네.” “아무리 그래도 손녀 마음이 있어!” 유옥선이 조규리를 째려보며 말했다. “방금 소년원에서 와서 돈도 없을 텐데 날 위해 선물도 준비하고 고맙구나.” 방금까지 이지아에 대한 인상이 매우 안 좋았지만 선물을 보고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이건 천산에서 자란 설련이에요.” 아무리 이 꽃을 알아보지 못하자 결국 이지아가 직접 밝혔다. “뭐? 천산? 설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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