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조규리는 일부러 오버하며 말했다.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이딴 꽃이 어떻게 천산에서 자란 설련이라는 거야? 그럼 내 그릇에 담긴 당근은 천년 인삼이겠다! 지아야, 아무리 돈이 없어 좋은 선물을 못해 드린다고 하지만 할머니한테 이런 선물을 너무한다는 생각은 안 드냐? 그리고, 형수, 애한테 선물 살 용돈이라도 좀 줘야죠! 할머니한테 선물하는 게 그렇게 아까웠어요?”
오연주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이지아를 질의하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한 다도 세트는 어디 있어?”
이지아한테 기껏 선물을 준비해줬으니 이런 사단이 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다도 세트가 비록 값비싼 물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선물로 주기는 제격이었다.
이지아가 제멋대로 어디선가 이름 모를 꽃을 꺾어와 할머니한테 선물할 줄 누가 알았으랴?
게다가 염치도 없이 천산에서 자란 설련이라고 한다.
“다도 세트보다 더 좋은 건데 왜 다도 세트를 줘야 해요?”
이지아의 반문에 오연주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주위에 눈이 많아 분노를 꾹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딸을 때려봤자 창피한 건 자기였다.
그녀는 곧 화병이 날 듯했다.
유옥선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아야, 네가 뭘 선물하든 할머니는 상관없지만 절대로 거짓말을 쳐서는 안 돼!”
소년원에 다녀오면 심성을 바로잡을 줄 알았지만 이지아는 되려 거짓말도 치기 시작했다.
이지아는 할머니를 보며 말했다.
“거짓말 친 적 없어요!”
퍽!
유옥선은 의자 손잡이를 내리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우리 손녀가 주는 선물이라면 다 좋아! 하지만 이게 천산 설련이라고 거짓말을 친 건 잘못이야!”
“형수, 딸 교육을 어떻게 한 거예요? 제가 다 쪽팔리네요!”
조규리는 기회를 틈타 한마디 거들었다.
다른 친척들 역시 비웃음이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천산 설련? 그건 몇 십 억 하는 거잖아? 게다가 재배하기도 어려워 돈이 있어도 못 사는 거 아니야? 아니, 소년원에서 갓 나온 아이가 천산 설련을 구한다는 게 말이 돼?”
“쯧쯧, 어린 애가 체면 살려보겠다고 저런 거짓말을 했어?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는 거야?”
“답도 없지, 나중에 크면 부모님 등골이나 빨아먹으며 살겠지.”
...
오연주는 곧 분노가 터질 듯했다.
“지아야, 얼른 할머니한테 사과드려!”
“잘못한 거 없는데 왜 사과해요?”
이지아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이씨 가문이 대가문은 아니더라도 어떻게 천산 설련도 알아보지 못한단 말인가?
강현 가문과 진주 가문 사이의 갭이 그녀의 생각보다 많이 큰 듯했다.
“나 화나 죽는 꼴 보고 싶어?”
오연주는 이지아를 이곳에 데려온 게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두고 왔어야 했다.
유옥선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아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할머니는 이지아를 보고싶지 않아 고개를 돌려버렸다.
“오늘 할머니 생신이잖아! 애 먹이지 말고 얼른 사과해!”
“얼른 사과하고 끝내! 어린 아이가 어른들 말을 들어야지!”
주위 친척들도 이지아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언니, 이건 언니가 잘못했잖아. 얼른 사과해...”
이유영은 좋은 동생인 척 다독였다.
사람들의 위선적인 면모에 이지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케이스를 들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천산 설련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천산 설련은 그녀의 몸 속에 있는 독소를 빼는데 도움이 된다.
할머니가 드셨더라면 더 큰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귀한 선물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한테 줄 이유가 없었다.
“지아야, 지금 뭐하는 거야?”
오연주가 이지아를 말리려고 할 때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케이스, 후성 그룹 거 아니야?”
“뭐? 후성 그룹?”
이에 모두의 시선이 케이스로 향했다.
“후성 그룹 로고잖아...”
조규리는 뭔가가 번뜩 떠오른 듯 한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얼마 전에 후성 그룹이 경매에서 30억에 달하는 천산 설련을 샀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맞아요! 저도 뉴스에서 봤어요!”
“오늘 실검에 오른 거 말하는 거예요?”
“그게...”
삽시간에 쎄한 기운이 현장을 감쌌다. 모두의 비웃음을 샀던 이 꽃이 진짜 천산 설련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조규리는 얼른 관련 뉴스를 검색해 사진을 찾아냈다. 사진 속의 식물이 방금 이지아가 먹은 꽃이랑 똑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귀한 걸 네가 먹었어?”
조규리는 귀한 식물을 낭비한 듯싶어 가슴이 아팠다.
이지아가 먹은 거면 낭비나 다름이 없어보였다.
“귀한 거요?”
이지아가 피식 웃었다.
“방금 거짓말이라고 했잖아요.”
“후성 그룹 얘기는 하지 않았잖아! 후성 그룹 얘기를 꺼냈다면 우리도 당연히 믿었지!”
조규리는 오히려 당당하게 잘못을 이지아한테 넘겼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지아가 천산 설련을 얻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유옥선과 오연주는 산산이 조각난 천산 설련을 보고 후회막급이었다.
“지아야, 사실대로 말해. 이거 어디서 난 거야?”
오연주는 이지아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때, 무언가가 번뜩 떠오른 이유영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방금 전에 사고 현장에서 최민기가 이지아한테 무언가를 건네준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아는 왜 운이 이렇게 좋은 거지?’
만약 자기가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해 최민기 아들을 구하는 척 애를 썼더라면 저 천산 설련은 그녀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진짜 짜증나! 지아만 이득 봤잖아!’
이지아는 어머니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전 여기로 올 때 최민기를 만났어요. 제가 도움을 줬고 이건 답례로 받은 거예요.”
이유영의 시샘은 점점 더 커졌다.
‘저건 원래 내거야! 최민기를 도운 것도 나여야 하고 저 설련도 내 것이어야 했어! 지아가 내 모든 걸 빼앗고 있어!’
오연주는 이유영의 표정을 발견하지 못하고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이지아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지아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려는 듯 딸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래?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최씨 가문은 아무나 건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