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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경호원의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최민기는 정신을 번뜩 차리고 재빨리 아들을 쳐다보았다. 경호원의 말처럼 아들의 입가를 타고 계속 흘러내리던 선혈이 멈췄다. 한참 멍하니 있던 최민기는 곧바로 이지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요! 방금은 내가 실언을 했어요. 제발 내 아들을 살려주세요!” “이러지 않아도 사람은 살릴 거예요.” 말을 하며 이지아는 다시 은침 하나를 남자아이의 내관혈에 찔러 넣었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해야 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수술실에 들어갈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지혈을 해주는 것뿐이에요.” “알았어요. 구급차가 올 때까지 아들이 버틸 수 있게만 해준다면 무슨 조건이든 전부 들어줄게요!” 최민기는 정중하게 이지아에게 말했다. 이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든 은침을 남자아이의 혈자리에 찔러 넣는데 집중했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유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지아가 침술을 이용해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그럴 리가?’ 이유영은 3년 동안 소년원에 갇혀 있은 데다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이지아가 어떻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했다. 그녀가 경악하며 이지아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때 이지아가 몸을 일으켰다. “피는 멈췄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최민기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에게 있어 아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아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있는 것을 본 순간 최민기가 느낀 절망은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구급차가 도착했다. “얼른 병원으로 데려가세요.” 이지아는 은침을 작은 가방에 집어넣었다. 구급차가 왔으니 이제 이지아가 할 일은 없었다. “잠깐만요!” 무언가를 떠올린 최민기는 급히 자신의 차로 가서 상자 하나를 꺼내 이지아에게 건넸다. “이건 사례로 주는 거예요. 아들 상태가 회복되면 이것보다 더 큰 선물을 줄게요. 아, 그리고 이름이 이지아 맞죠?” 이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답을 한 이지아는 사양하지 않고 최민기의 손에 들려있는 상자를 건네받았다. 상자를 건넨 최민기는 구급차에서 내린 의료진들을 지휘하여 아들을 구급차에 태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이유영은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이지아가 자신을 스쳐 지나가 오연주가 타고 있는 차로 향하는 것을 본 뒤에야 이유영은 꿈에서 깨어난 듯 번뜩 정신을 차리고 뒤쫓아갔다. “어디 갔었던 거야?” 이지아가 차 문을 열고 차에 타자 오연주는 곧바로 화가 난 어조로 캐물었다. 방금 운전기사가 근처에 통행이 가능한 오솔길을 찾았는데 이지아와 이유영이 돌아오지 않아 차는 제자리에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구경하다 왔어요.” 이지아는 담담하게 대꾸했을 뿐 오연주에게 사람을 구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한다고 해도 오연주가 믿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분명 이지아를 추궁할 것이다. 그리고 이지아는 일시적으로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차에 탄 이유영이 뭐라고 오연주에게 얘기할지는 이지아도 알 수 없었다. 이지아의 말에 오연주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구경을 하러 갈 마음이 생겨? 이따가 할머니 생신 연회에서 어떻게 할머니와 외삼촌의 환심을 살지나 얼른 생각해 봐! 어떻게 매일 머릿속에 든 것도 없이 살아. 내가 평생 널 도와서 길을 닦아주길 바라는 거니?” 오연주는 이지아를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 이지아가 주얼리 가게와 그림 전시회에서 보여줬던 모습으로 오연주의 마음속에 쌓였던 그녀에 대한 호감이 이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연주는 또다시 그때 딸을 이유영 하나만 낳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지아는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변변치 못한 이지아 때문에 오연주는 사모님 모임에서 수많은 조롱을 받았다. 생각할수록 분이 풀리지 않아 오연주는 아예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이때 이유영도 조용히 차에 탔다. 그러나 차에 탄 이유영은 오연주에게 방금 전의 일을 일러바치지도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지아는 그런 이유영의 모습이 의아해 힐끔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유영은 이지아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듯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유영은 극도의 충격에 휩싸여 아직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녀는 이지아가 어떻게 은침을 사용할 줄 알고 응급처치를 할 줄 아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지아가 3년 동안 소년원에 갇혀 있었던 것을 제쳐두고 만약 3년 동안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다고 해도 이지아는 이런 지식을 접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유영은 현재까지 이지아가 최민기의 아들에게 지혈을 해줬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생각을 이어가던 이유영은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우연일지도 모른다. 최민기의 아들은 원래부터 상태가 위중하지 않았고 이지아가 침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피는 금방 멈췄을 것이다. 이지아는 운이 좋았을 뿐이니 최민기의 아들이 피가 멈춘 것은 이지아 덕분이 아니다. 이유영은 이 이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 외에는 이지아가 어떻게 의술을 알고 있는 것인지 이유영은 전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유영아! 유영아?” 이유영이 멍하니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연주는 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는 이유영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네? 왜요?” 망연히 고개를 들어 올린 이유영은 그제야 그들이 할머니의 생신 연회가 열리는 호텔 앞에 도착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차에서 내려야지! 너 왜 그래? 아까 차에 탈 때부터 정신을 딴 곳에 팔고 있더니, 어디 아파?” 오연주는 걱정이 앞섰다. 이유영이 아파 연회에 참석하지 못하면 오연주는 자랑할 거리를 잃게 되고 친척들의 추앙도 받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관심이 이지아에게 쏠리게 되면 오연주는 추앙을 받기는커녕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상황들을 떠올린 오연주는 이지아를 목 졸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유영은 재빨리 오연주에게 달콤한 미소를 보였다. “아니에요. 팀의 연구 과제를 생각하느라 잠깐 정신을 딴 곳에 팔았어요. 엄마, 걱정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요. 할머니 기다리시겠어요.” “그래!” 이유영의 반응을 본 오연주는 불안하게 떨렸던 마음이 안정되었다. 역시 막내딸인 이유영이 더 섬세하고 다정했다. 곧이어 오연주의 시선이 돼지처럼 뚱뚱하게 살찐 이지아에게 닿았고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오연주는 다시 한번 이지아를 괜히 소년원에서 꺼냈다는 후회가 들었다. 세 사람이 호텔 룸에 들어갔을 때 다른 친척들과 손님들은 이미 자리해 있었다. 오늘은 유옥선의 66세 생일 연회이니 성대하게 치러야 했다. 그래서 장소를 강현시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로 정했을 뿐만 아니라 평소 왕래가 적은 먼 친척까지 초대했다. 세 모녀는 룸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이목을 받았다. 모여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핑크색 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샴페인 색으로 염색한 웨이브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손에는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몇 분에 한 번씩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이 중년 여성은 이씨 가문의 셋째 며느리 조규리였다. 조규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는 대부분 이씨 가문의 여자 친척들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요! 둘째 오빠가 출장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는 건 이해하지만 둘째 형님까지 늦는 건 아니죠!” “어머님이 평소 둘째 형님 가족을 제일 아끼시는데 이렇게 소홀히 대하면 어머님이 얼마나 서운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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