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신이서의 얼굴은 순식간에 더 빨개졌고, 그녀는 다급히 로봇의 입을 손으로 가렸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로봇은 이미 어떤 자세로 일을 봐야 하는지까지 읽기 시작했다.
정말 난처하다.
한편 송서림은 신이서의 당황한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스피커가 머리 뒤에 있어. 잘못 가렸어."
“...”
신이서는 재빨리 막고 싶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보고 있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송서림이 그녀를 끌고 뒤로 갔다.
송서림이 화면을 몇 번 터치하자 화면은 순식간에 각종 이모티콘으로 변했고 또 긴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자 로봇은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아니."
신이서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더 이상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무서울 지경이다.
그때 송서림이 손을 흔들자 로봇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는 가볍게 말했다. "프로그램 오류 때문에 네게 잘못된 길을 안내했어, 네 잘못이 아니야."
신이서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곧이어 그녀는 입을 굳게 닫았다. 이 창피한 일을 송서림이 모두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인 것은 송서림은 강 건너 불구경인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고운성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3년이나 만났지만 그녀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때마다 고운성은 아주 심하게 비웃었다.
"하하하, 너 정말 창피하지? 나 말고 누가 널 받아들이겠어?"
기억 속 고운성은 송서림처럼 그녀를 도와 난처한 걸 해결해 준 적이 없었고, 오히려 뒤늦게 조심하라고 비웃었다.
그녀는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
신이서는 마음속으로 분노했지만 곧이어 시끌벅적한 전시대에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재빨리 다가가 송서림과 나란히 서서 기술의 정의와 상상력에 대해 설명하는 진행자의 얘기를 들었다.
그 순간 신이서는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노트를 열어보자마자 놀랍게도 노트에 잘못된 부분이 고쳐져 있었고, 궁금한 부분에 대한 답변도 적혀 있었다.
그녀는 노트를 송서림에게 맡겼었다...
하여 그녀는 송서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림 씨,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송서림은 제대로 듣지 못해 몸을 기울였다.
"뭐라고?"
"그게... 악..."
신이서가 노트를 들고 고맙다고 인사하려던 순간 사람들이 너무 세게 밀어 송서림의 얼굴에 입술이 닿았다... 노트를 사이에 둔 채.
한편 송서림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생각지도 못해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신이서는 눈을 깜빡였다. 볼펜의 냄새와 송서림의 코에서 은은한 담배 냄새가 나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그때 박수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돌아섰다.
"고마워요. 아니, 미안해요."
"응." 송서림은 이상한 마음을 억누르는 듯 주먹을 쥐었다.
신이서는 노트를 꽉 쥔 채 몰래 송서림을 힐끔 보았으며 그의 차가운 모습을 보고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쉴 때, 송서림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노트를 보니 잘못된 부분이 아주 많던데 넌 이곳에 낯선 사람이란게 분명해. 왜 여기 온 거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그녀는 이태현과 한 배를 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말에 신이서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서림 씨는 처음부터 이렇게 많이 알고 계셨나요?"
"비슷해요." 송서림은 가볍게 말했다.
역시 똑똑한 사람과 그녀는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서림 씨, 이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노력을 하면서 배워야 해요. 이렇게 더운 날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곳을 뛰어다니겠어요? 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니 저는 일할 때 어떤 고난에 닥쳐도 물러나지 않고 억지로 버티며 배워야 해요. 저는 포기하기 싫으니깐요."
말한 뒤, 신이서는 송서림에게 싱긋 웃었다.
하지만 송서림은 그 미소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이서도 더 이상 재미없는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필기를 하며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했다.
"틀렸어." 송서림이 덤덤하게 말했다.
"네." 신이서가 고개를 숙인 채 고쳤다. 하지만 이상하게 송서림과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두 사람은 몇 개의 전시장을 더 돌아다녔다. 그리고 신이서가 이해하지 못할 때 송서림은 가끔 한마디씩 설명해 주었다. 비록 많은 설명은 아니었지만 꽤 유용했다.
신이서는 전문지식을 들으면서 노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오픈 파티의 대략적인 초안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회는 적어도 그녀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으니 의미가 있었다.
그때, 송서림이 전화를 받았다.
"응, 곧 갈게."
그의 엄숙한 표정을 보아 회사에 관한 일인 것 같았다.
그때 신이서가 눈치있게 말했다. "서림 씨, 바쁘면 먼저 일 봐요. 저도 회사로 돌아가야겠어요."
송서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
신이서도 이제는 그의 냉담한 성격에 익숙해져, 신경도 쓰지 않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나가자마자 정장을 입은 두 남자와 부딪혀서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떨어뜨렸다.
그녀가 재빨리 노트를 주웠지만 그 두 사람은 사과도 없이 안으로 걸어갔다.
"Ian이 왔어요?"
"네, 이미 한바퀴 돌아봤대요."
"빨리, 빨리, 오늘 반드시 그 거물을 만나야 해요."
'Ian?'
유일 테크의 대표!
신이서는 더 이상 사과를 받을지 안 받을지 신경쓸 겨를도 없이 얼른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아니나 다를까 한 무리의 사람이 그 뒤를 쫓아 옆문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하던 와중에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송서림인 것 같았다.
신이서가 더 빨리 뛰어가 사람들 속에서 그 얼굴을 똑똑히 보려고 할 때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그녀의 길을 막았다.
"이서야, 이런 우연이 다 있네."
김유진이 왜 이곳에 있는 걸까?
김유진이 머리를 만지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난 유일 테크의 대표를 만나러 왔어."
신이서가 멍때렸다. "봤어?"
김유진은 활짝 웃으며 핸드폰을 흔들었다. "만날 뿐만 아니라 전화번호도 교환했지. 날 아주 마음에 들어하더라고. 다음에 만나면 같이 식사하자고 하던데. 왜? 너도 유일 테크의 대표를 만나러 왔어?"
신이서는 당황했다.
신이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다물었다.
한편 김유진은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더 이상 예의차리지 않았다.
"이서야, 내가 말했잖아.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이번 계약과 부팀장 자리는 내 것이야."
"참, 유일 테크의 대표는 이미 공항에 가는 차에 탔어. 넌 따라잡을 수 없을 거야."
김유진은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신이서는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방끔 쫓아갔던 사람들은 그냥 실패하고 돌아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녀는 화가 나서 핸드폰을 꽉 쥐었다. 그때 마침 김유진이 SNS에 올린 게시글을 발견했다.
[유일 테크의 대표님과 만나서 너무 즐거웠어요. 마음에 들어 해줘서 고마워요.]
사진은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김유진은 정말 말로만 듣던 그 Ian을 만났나 봐.'
결국 신이서는 답답한 마음으로 회사에 돌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주기훈이 흥분한 모습으로 김유진에게 다가갔다.
"유진 씨, 잘했어요! 이렇게 빨리 유일 테크의 대표를 해결하다니!"
동료들은 박수를 치며 김유진을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심하세요, 앞으로 저는 회사를 위해 더욱 헌신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김유진은 머리를 도도하게 치켜들었다.
그 상황은 마치 그녀의 승진 축하 자리인 것 같았다.
신이서는 신경 쓰기 싫어 옆으로 돌아 자신의 자리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김유진에게 발견되었다.
그때 김유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서야, 유일 테크 대표의 차를 찾았어?"
그 말이 나오자 모두가 신이서를 경멸과 조롱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