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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이태현이 신이서를 빌라까지 데려다주었다. 차에서 내린 뒤 그녀는 인사를 하고 이태현이 떠나는 걸 지켜보았다. 내일 기술 전시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적어도 성공에 한 발짝 더 다가갔기 때문이다. 한편 누군가가 차가운 얼굴로 신이서의 경쾌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송서림은 신이서의 표정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를 보아 아주 기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다른 남자와 아주 신나게 놀았나 봐.' 송서림은 담배 연기를 뱉더니 담배를 끄고 서재로 향했다. 신이서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닫는 순간 마침 불이 켜져 그녀는 깜짝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복도에 서 있는 송서림을 보자 그 차가운 눈빛 때문에 온몸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서... 서림 씨, 아직 안 잤어요?" "응." 송서림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그녀 앞을 지나갔다. 한편 신이서는 송서림의 듬직한 뒷모습을 보자 이상하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고 단번에 술 냄새를 맡았다. '술을 마신 걸까?' 고개를 돌려보니 송서림이 술을 따르고 있었고 그의 뼈마디가 선명한 손이 붉은 액체를 흔들고 있었으며 그 모습이 위험하면서도 섹시했다. 하지만 술병에 얼마 남지 않은 와인을 보자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그의 팔을 당겼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이렇게 많이 마신 거예요? 혹시 회사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예요?" 그녀는 참견하고 싶지 않지만 전수미에게 송서림을 잘 돌볼 것이라 약속했다. 그리고 술은 몸에 해로울 수밖에 없다. 그 말에 송서림은 그제야 자신이 이렇게 많은 술을 마셨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마음이 괴로울 때 조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다. 오늘 귀가한 뒤, 신이서가 이태현에게 안긴 채 나가는 모습을 생각하자 이유도 없이 술이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신이서의 연기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다른 남자와 돌아오더니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걱정한다. 정말 가식적이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이서를 피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신이서는 가방을 내려놓고 물 한 잔을 따르더니 그의 손에 넣어주고 그와 동시에 와인을 가져갔다. "회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에요. 이미 잘하고 있으니까 스스로에게 큰 압박감을 주지 않아도 돼요. 술은 건강에 해로우니 물 좀 마시고 일찍 자세요." “...” 송서림은 손에 든 물을 보더니 신이서를 바라보던 눈빛마저 조금 흔들렸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변 사람들은 항상 그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편 송서림이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자 신이서는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오지랍을 부린 걸까?' '그냥 이만 자라고 할까?'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잘 자요." 말하자마자 그녀는 곧장 돌아서던 순간 체혈한 탓인지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선 탓인지 머리가 어지러워 자기도 모르게 송서림의 품에 안겼다. 송서림의 손에 들린 물컵이 툭하고 떨어지면서 셔츠가 젖어 탄탄한 복근이 셔츠 사이로 어렴풋이 보였다. 신이서는 본능적으로 손을 가슴에 대었다. "서림 씨, 저는..." 그녀가 설명하려던 그때 긴 손가락이 그녀의 이마를 밀어내었다. 송서림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수법은 안 통해." 신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 송서림은 이미 방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신이서는 방으로 돌아간 뒤, 침대에 눕자 팔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체혈한 부분이 이미 파랗게 변한 상태였다. 하지만 최화연과 그녀의 딸이 안전한 걸 떠올리자 그녀는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신이서가 급하게 방을 나와보니 송서림은 이미 나간 상태였다. 그녀는 다급히 화장실로 달려가서 씻으려 했지만 객실 욕실의 샤워기가 고장나 어쩔 수 없이 따뜻한 물을 받아 간단히 씻었다. 가는 도중 그녀는 주기훈에게 전화를 걸어 영감을 받으러 기술 전시회에 참석한다고 말했고 주기훈도 곧바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가 기술 전시회에 도착하자 개막식이 이미 끝난 상태라 유일 테크의 Ian은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이왕 온김에 제대로 구경하면서 영감을 찾으려고 했다. 이태현이 자신의 보스는 전문성을 선호한다고 했다. 이곳은 서울에서 제일 전문적인 곳이니 말이다. 신이서는 부스를 따라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기술을 보면 다가가 자세히 물어보면서 자신의 계획에 적용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한참 돌아다닌 뒤, 그녀는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전시관이 너무 커서 5분 동안 찾았는데도 화장실을 찾지 못했다. 그때 전시장 안서 이동하는 서비스 로봇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도움이 필요한게 있으신가요?" "여자 화장실은 어디에 있나요?" "지금 당장 가장 빠른 경로를 알려줄게요. 앞으로 100미터 가서 왼쪽으로 돌아 50미터를 걸어 복도 바깥 왼쪽에 있어요." "감사합니다." 신이서가 진지하게 말했다. "천만에요." “...” 그녀는 정말 급한 것이 아니라면 이 로봇을 제대로 연구하고 싶었다. 그렇게 신이서는 로봇의 안내에 따라 전시관을 나와 화장실 문을 열었다. "허!!!" 화장실에 들어서던 순간 신이서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를 등 돌린 채 서 있는 남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바로 제일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송서림이었다. 송서림은 손을 씻다가 갑자기 들어온 신이서를 보자 낯색이 어두워졌다. "아직도 보고 있는 거야?" 그는 덤덤하게 말하더니 신이서의 눈을 가린 채 그녀를 끌어냈다. 송서림의 손은 조금 차가웠지만 신이서의 얼굴은 후끈 달아올랐다. 밖으로 나갈 때까지 송서림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서, 서림 씨, 여기서 다 만나네요."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된 채 더듬거리며 말했다. "우연은 아닌 거 같은데." 송서림은 차가운 눈빛으로 신이서를 바라보았다. 그는 세상에 이렇게 우연한 일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신이서가 자신을 따라와 우연이라고 가장한 것이다. 그녀의 수법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한편 신이서는 그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설명했다. "오해예요. 난 일하러 왔어요. 그리고 로봇이 길을 잘못 안내한 거예요. 일부러 들어간 게 아니에요. 당신이 안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누가 있든지 들어가지 않았을 거예요." 말하다 말하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정말 화장실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서림 씨...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말하고 나서 신이서는 노트를 송서림에게 건네고 얼른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송서림은 멈칫하더니 손에 들린 노트를 바라보았다. 신이서의 말대로 정말로 기술 전시회에 대해 필기한 것이 있었다. 그 중에는 그녀가 잘못 쓴 것과 이해하지 못해 물음표를 찍은 부분도 있었다. 그녀가 필기한 것을 보면, 그를 추적할 시간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진짜 오해일까? 송서림은 몇 장 훑어보더니 펜을 잡았다. 한편 신이서는 화장실을 나오니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방금 실수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간 걸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송서림이 손을 씻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생각에 그녀는 얼른 냉수로 얼굴을 씻었다. 잡생각을 하면 안 된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신이서는 어색한 얼굴로 송서림에게 다가갔다. "서림 씨, 그게..." "가자." 송서림은 노트를 신이서에게 돌려주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네?" "나도 일하러 왔어." 송서림은 오늘 만남이 우연인지 계획된 것인지 궁금하다. 신이서는 이태현을 유혹하고 자신을 찾아왔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전시장에는 전문성이 매우 강한 제품들만 있어, 신이서는 비전문가이기에 거짓말이 들통나기 마련이다. 한편 신이서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문가가 옆에 있으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하여 그녀는 곧바로 송서림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송서림과 함께 들어서자마자, 서비스 로봇을 다시 만났다. 더 신기한 것은, 방금 그녀에게 길을 안내한 로봇이었다. "안녕하세요, 또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안녕하지 못해요." 신이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일이죠?" 로봇은 큰 눈을 깜빡이더니 화면에 몇 줄의 글이 나타났다. 그것도 모자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아가씨, 제가 변비 해결 방법을 몇 가지 찾아봤어요. 도움이 되길 바래요. 시도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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