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7화

역시나 문석진의 말에 병원 복도에 있던 사람들 모두 시선을 돌렸다. 허남준은 가슴 한가운데가 갑자기 막히는 듯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 있던 장철민이 다가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허 선생님, 저 사람 일부러 시비 걸고 있잖아요. 당장 내보낼게요!” 허남준은 고개를 저으며 힘없이 답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피곤해서... 그냥 돌아가 쉬고 싶어요.” 그가 막 자리를 뜨려 하자 문석진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는 팔짱까지 끼며 비아냥거렸다. “왜 이렇게 서둘러 가려고 해요? 좀 더 얘기 나눠요.” 강서윤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말렸다. “석진아, 그만하고 우리 먼저 가자.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문석진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시간 별로 안 걸려. 게다가 난 다른 뜻도 없고, 그냥 남준 씨한테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그래. 결혼식 날에는 꼭 별도로 테이블 하나 마련해서 술을 제대로 올리고 싶거든.” 허남준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며 숨까지 거칠어졌다. 견디다 못한 장철민이 한 발 나서며 소리쳤다. “그만해요.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문석진은 옆으로 시선을 돌려 그를 흘끗 쳐다봤다. “당신은 누구예요? 여긴 당신이 껴들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장철민은 차가운 눈빛으로 답했다. “허 선생님은 우리 장씨 가문의 은인이나 다름없어요. 지금 바로 사과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문석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서윤아, 이거 봐. 웃기지 않아? 난 그냥 남준 씨 하고 얘기 좀 하려는 건데, 이 양반이 왜 화를 내고 난리야. 누가 보면 주인 지키는 개라도 되는 줄 알겠어. 나더러 사과하라고? 건방지긴. 자기가 뭔데?” 강서윤은 뒤늦게 고개를 돌려 장철민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몸이 굳어버렸다. 허남준만 보느라 장철민을 못 봤던 것이다. “그만하고 입 다물어...”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며 장철민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그... 안녕하세요, 장 대표님.” 장철민은 서늘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새로 만난다는 남자가 저 사람인가 보네요? 강 대표 안목 참 실망스러워요.” 강서윤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강산 그룹은 연성 그룹과 맞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석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도 금세 다가서더니 아부하는 투로 말했다. “아, 장 대표님이셨군요? 반가워요, 저는 문석진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하지만 장철민은 그를 완전히 외면했다. “날 보고 싶었다고요? 그럴 자격은 있고요?” “그게...” 문석진은 어색한 표정으로 굳어버렸고, 악수하려고 뻗은 손도 허공에 멈춰 있었다. “어서 허 선생님께 사과해요. 안 그러면 경해시에서 발붙이기 힘들어질 겁니다. 못 믿겠으면 어디 한 번 도전해 봐도 되고요.” 장철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누구도 맞설 수 없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문석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을 보였다. 바로 그때 허남준이 입을 열었다. “사과 같은 거 필요 없어요. 별일도 아닌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는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 등이 한껏 처진 채 쓸쓸한 기색이 역력했다. 강서윤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복잡한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 집으로 돌아온 뒤, 허남준은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한편, 강서윤은 병원 검사 결과 하반신 마비 증상이 거의 완치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문석진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다행이야, 서윤아. 이젠 정말 아무 문제 없네. 내가 말했잖아, 넌 운이 따라주는 사람이니까 잘될 거라고.” 강서윤은 억지로 웃어 보였지만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문석진은 담당 의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의사는 그를 힐끔 보더니 담담히 말했다. “저한테 고마워할 건 없어요. 이건 전적으로 허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두 사람 모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병원에서 나온 문석진은 강서윤의 손을 꼭 잡았다. “서윤아, 이제 걱정할 것도 없으니 우리 빨리 결혼하자. 우선 허남준 씨랑 이혼부터 빨리 끝내는 게 좋겠어. 이혼을 끌어 봤자 좋을 건 없잖아.” 강서윤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확실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문석진은 다시금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서윤아, 우린 정말 많은 일을 겪고 겨우 여기까지 왔어. 근데 뭘 걱정하는 거야? 설마 아직도 날 원망해? 그땐 정말 꼼짝할 수 없이 갇혀 있었고, 널 향한 내 진심은 하늘이 보증해 줄 거야.” 그 달콤한 말에 강서윤은 또다시 흔들렸다. “알았어. 이혼 서류 마무리 지을게.” 문석진은 목표를 달성한 듯 환히 웃었다. “좋아!” ... 그 시각, 허남준은 집에서 하루만 쉬고 다시 병원에 나갔다. 원래는 며칠 더 쉴 수 있었지만 집에 있으면 잡념이 더 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이 바빠져야 그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는 하루 만에 세 건의 고강도 수술을 연달아 진행하며 숨이 거칠어질 만큼 무리했다. 곁에 있던 동료가 수건과 달콤한 간식을 건네며 말했다. “좀 쉬어요. 위가 아픈 것도 아직 완치되지 않았잖아요. 이러다 몸 망가져요. 게다가 원장님도 휴가 승인해 줬는데 부모님하고 시간 보내면 좋잖아요.” 동료는 그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을 돌려서 했다. 허남준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놀면 뭐 해요. 차라리 일하는 게 나아요.” 동료는 답답했지만, 일단 그를 사무실로 돌려보냈다. 마침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무심코 휴대폰을 들어 확인하던 허남준은 발신자를 보자마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메시지를 열어보니 짧은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법원으로 와 줘요. 이혼 서류 처리하게요.] 허남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가정법원. 그가 도착했을 때, 강서윤과 문석진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허남준의 야윈 얼굴을 본 강서윤은 내심 걱정되면서도, 동시에 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역시 내가 이혼하자고 하니까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고민했나 보네.’ 문석진은 곧장 비꼬기 시작했다. “이게 누구신가? 하루 못 봤더니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설마 미련이 남아서 이러는 건 아니죠? 하긴, 저는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 감정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 데도 물러나 줘서요. 아무쪼록 남준 씨 정신 건강 잘 챙겼으면 좋겠어요.” 그는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띠고 얄미운 억양으로 말했다. 하지만 허남준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별일 아니에요. 병원 일이 바빠서 잠을 못 잤을 뿐이에요. 빨리 서류 처리해요. 저 또 돌아가 봐야 해서요.” 강서윤은 그의 말을 전부 핑계라고 여겼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양쪽 다 이혼에 동의했기에 절차는 금방 끝났다. 마지막 도장이 찍히는 순간, 강서윤은 왠지 모를 통증이 가슴 깊숙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허남준은 이미 지친 듯 아플 힘조차 없다는 표정이었다. “됐네요. 이제 우린 남이니 다시 마주칠 일 없길 바라요.” 그가 돌아서려는 순간 강서윤이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그녀는 가방을 뒤져 어떤 서류를 꺼냈다. 서류에는 커다란 글씨체로 ‘경해 별장’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경해 별장은 경해시에서도 손꼽히는 동네로, 그곳의 집 한 채만 몇백억은 했다. 강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거 가져요. 제 나름대로 주는 보상이에요.” 허남준이 말을 하기도 전에 문석진이 잽싸게 서류를 빼앗듯 가로챘다. “서윤아, 이러면 안 돼. 네가 이러면 남준 씨 자존심이 상하잖아.”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