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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허남준은 손사래 치며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얼른 돌아가.” 채청아는 초조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괜찮긴요! 땀이 이렇게 나고 있는데 빨리 병원에 가 봐야 해요.” 그녀는 급히 택시를 잡아 허남준을 직접 병원으로 데려갔다. 원래 있던 지병인 만큼 동료들이 대략 살펴본 후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던 허남준은 채청아에게 말했다. “청아야, 너 이제 돌아가. 나 혼자 있어도 돼.” 채청아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그래도 보호자 한 명은 있어야죠. 저 어차피 할 일 없으니까 같이 있을게요.” 결국 허남준은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채청아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곁을 지켰고 그에게 부드러운 죽도 사다 줬다. “오빠, 조금씩만 먹어요. 너무 한꺼번에 먹지 말고요.” “고마워.” 허남준은 마음속에서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강서윤을 돌보며 무려 7년을 함께했건만 이처럼 사소한 배려를 받은 기억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속이 더 쓰라렸다. 치료가 끝난 뒤, 병원 복도에 앉은 허남준의 창백했던 안색은 조금 나아졌다. 채청아는 살포시 그의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 “오빠, 다음부터는 술 마시지 말아요. 의사인 오빠가 더 잘 알잖아요. 이런 상태에서 술이 얼마나 안 좋은지.” 허남준은 가볍게 끄덕였다. “알았어. 조심할게.” 이대 하얀 가운을 입은 동료 한 명이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허 선생님, 장승혁 회장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당장 수술해야 해요! 원장님이 집도의로 선생님을 지목하셨어요!” 장승혁 연성 그룹 창시자로 경해시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했다. 자선 사업에도 열심이라 존경받는 어른이었다. 허남준은 약해진 몸을 겨우 일으키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바로 갈게요.” 놀란 채청아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오빠,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아요! 좀 쉬어야 해요!” 허남준의 동료 역시 그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는 우려했다. “허 선생님, 괜찮겠어요? 안 되면 제가 원장님께 말씀드려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남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장 회장님 케이스는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요. 제가 가야 해요.” 그는 뒤돌아 채청아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난 정말 괜찮으니까, 너 먼저 돌아가. 나중에 연락할게.” 이어서 동료가 건넨 가운을 재빨리 걸치고 빠른 걸음으로 수술실 쪽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채청아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점점 표정이 흐려졌다. 급히 달려간 수술실 앞에는 이미 연성 그룹 관계자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전부 거물급 인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는 장승혁의 친아들이자 그룹의 실제 운영자인 장철민이었다. 허남준을 발견한 장철민은 바로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제 아버지 잘 부탁드립니다. 꼭 좀 살려주십시오!” 허남준은 힘겹지만 또렷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장철민은 문득 허남준의 창백한 안색이 눈에 띄었는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지금 몸 상태가 수술에 문제는 없으신가요?” 수술은 기술뿐만 아니라 체력과 집중력도 필수다. 한순간의 실수도 치명적일 수 있으니 말이다. 허남준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제 몸 상태는 제가 제일 잘 압니다.” “선생님 개인 사정에 제가 참견할 건 아니지만,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희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주위 공기가 단숨에 냉랭해졌다.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허남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은 아슬아슬한 순간이 반복됐지만 중간중간 포도당 등을 맞으며 가까스로 진행했다. 다행히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수술이었다. 끝났을 때 허남준은 온통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장철민은 두 손을 모아 예의를 보였다. “허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까는 제가 너무 급해서... 어쨌든 제 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허남준은 힘겹게 숨을 고르며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면 같은 심정이었을 거예요.” 장철민은 뒤돌아서며 명함을 꺼내 건넸다.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연성 그룹이나 제게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허남준은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어 예의를 차리고 명함을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가 막 돌아서려는데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하하, 데이트 끝나고 바로 출근하는 거 보니까 일에 참 열정적이네요.” 뒤돌아보니 문석진이 강서윤과 팔짱 낀 채 서 있었다. 허남준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고 땀이 다시 솟아날 정도로 속이 쓰렸다. 문석진은 계속 비꼬는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서윤이 다리에 혹시 후유증이 남았을까 봐 검사받으러 왔어요. 얼마 전까지 허남준 씨가 담당했으니 놓친 게 있을지도 몰라서요.” 치료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걸 돌려서 말하는 셈이었다. 강서윤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허남준의 창백한 얼굴과 땀범벅이 된 이마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말하려다가 문석진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남준은 마른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검사 잘 받아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문석진이 다시 길을 막았다. “잠깐만요. 예전에는 늘 허남준 씨가 서윤이 다리를 돌봐주지 않았나요? 마지막 확인도 해주는 게 맞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대단하신 허 선생이라면 저도 마음 놓을 수 있고요. 저희 곧 결혼할 건데 문제가 있으면 곤란하잖아요.” 결혼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허남준은 가슴 한구석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이 갈가리 찢기는 느낌이었다. 문석진은 그걸 즐기는 듯 짓궂은 미소로 계속 몰아붙였다. “서윤이 상태를 가장 잘 아니까 문제가 있을 때 얘기하기도 편하겠죠.” 얘기는 무슨, 없는 트집이라도 잡아서 비난할 기세였다. 강서윤은 허남준의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말리고 싶었지만 우물쭈물하다 끝내 말을 삼켰다. “석진아, 그만해. 그냥 다른 의사한테 진료받자.” 문석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남준 씨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7년이나 돌봐줬는데 이 정도도 못 해주나? 참, 저희 결혼할 때 남준 씨도 꼭 와요. 와서 술 한잔해야죠.” 그는 ‘7년이나 돌봐줬다’, ‘결혼한다’ 같은 단어를 대놓고 말해 주변의 시선을 모았다. 병원에 허남준이 강서윤에게 어떻게 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그가 수많은 간호사 마음속 최고의 신랑감이 된 것이니 말이다. 그런 그가 이혼을 한다니 다들 술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문석진이 바라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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