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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하염없이 억울함을 호소하던 남원군과 홍씨가 순간 얼어붙었다. 남원군의 부친과 대청에 모인 하객들 또한 멍하니 굳어졌다. 조성위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강경하게 나오는지,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단지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니? 태자 또한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북진국의 법에 따르면, 노비가 죄를 저질렀을 때 주인은 그를 처벌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오. 남원군이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소?” “태자 전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허나, 단순히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면, 어찌 감히 남원군께 이 같은 무례를 범하겠사옵니까?” 조성위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태자 전하께서는 이 죄인이 누구인지 아시옵니까?” 태자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소.” 그러자 조성위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자는 다름 아닌, 호랑산을 장악한 산적 떼의 두목이옵니다!” “정말이오?” 태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순간, 대청 곳곳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호랑산의 산적 떼라고?” “그 경성 교외에서 몇 해 동안 무리를 이루어, 관군까지 농락하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는 그 무리? 과객과 장사꾼들을 가리지 않고 약탈하고, 지나가는 백성들까지 무참히 살해했잖소.” “황제 폐하께서 여러 차례 토벌령을 내리셨으나, 그 산적 놈들이 워낙 지형을 잘 이용하여 번번이 도망쳤다고 나도 들었소!” “반달 전, 그 산적 떼들이 또다시 장사꾼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한 것도 모자라 목까지 베어 관도로 내던졌다고 들었소. 그 끔찍한 광경에 놀란 백성들이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들었고. 이건 명백히 조정을 우롱하는 행위 아니오?” “이 일로 인해 황제 폐하께서 크게 노하시어, 태자 전하께 전권을 맡기시며 반드시 반달 안에 호랑산을 소탕하라 명하셨지 않았소!” “이 산적이 정말 호랑산에서 온 자라면… 남원군께서 친히 ‘우리 신씨 일가의 노비’라 말씀하셨으니...” “그렇다면, 남원군과 호랑산 산적 떼가 연관이 있다는 말이 아니오?” 하객들은 숨을 들이마시며 일제히 경악하였다. 이제야 모두가 깨달았다. 조 대감의 얼굴색이 왜 갑자기 어두워졌는지. 그저 노비 하나 감싸려 했던 게 아니었다. 이건 나라를 위협하는 대역죄였다! 남원군의 부친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번쩍 들어, 아들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내리쳤다. “이 불효막심한 놈!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것이냐? 지금 당장 사실대로 고하거라!” 진실을 알게 된 남원군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반응할 틈도 없이, 부친의 지팡이가 연거푸 날아들었다. 그는 족쇄가 채워진 손발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겨우 피하려 했으나, 노장이 힘껏 휘두른 지팡이에 그대로 머리를 맞고 말았다. 퍽! 머리가 찢어지며 피가 솟구쳤다. 남원군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버지! 저는 억울합니다! 저도 전혀 알지 못한 일이라고요!” “아직도 변명할 작정이냐!” 남원군의 부친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번뜩이며 지팡이를 다시금 높이 들었다. 퍽! 퍽! 한 번 내려칠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대청에 울려 퍼졌다. 분노에 찬 손길엔 망설임이 없었다. 비록 남원군이 무장 작위를 가진 몸이라 하나, 신홍철 본인은 문신의 길을 걸어왔기에 부친이 이토록 죽을힘을 다해 매질하는 걸 견뎌낼 리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바닥에 나뒹굴며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고, 얼굴 반쪽이 피범벅이 되어 그야말로 처량하고도 비참한 모습이었다. “태자 전하, 억울하옵니다! 정말 억울하옵니다!” “제발, 제발 그만 때려주십시오!” “이런 불효자는 당장 때려죽여야 마땅하다!” “대감 어르신, 대감 어르신...” 소실 홍씨는 족쇄를 찬 채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그 처절한 모습이 더욱더 초라해 보였다. 그녀는 기어가려 몸을 움직였으나, 겨우 두어 번 몸을 뒤틀었을 뿐인데 마치 창으로 배를 찌르는 듯한 격렬한 통증이 엄습했다. 홍씨는 아랫배를 감싸 쥐며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고, 배야”” 순식간에 대청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태자와 하객들 역시 이 뜻밖의 광경에 놀라 굳어버렸다. 소희연은 혼란에서 한발 물러선 채, 싸늘한 눈빛으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을 뿐, 그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남원군 댁에서 가장 노련하고 치밀한 인물은 다름 아닌 남원군의 부친이라는 것을. 그에게는 신홍철 하나뿐인 아들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로 아들을 때려죽이겠는가? 그가 이토록 격노한 모습으로 매질하는 것은 결국 ‘고육지책’에 불과했다. 신홍철이 어리석게 실수를 저질렀으니 부친이 이토록 가차 없이 매질하지 않는 이상, 그 손이 곧 다른 이들에 의해 내려올 터였다. 그렇게 되면 신홍철은 죽지 않더라도 겨우 목숨을 부지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부친인 그가 직접 손을 쓰고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태자와 하객들에게 남원군 일가의 결백을 증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편이 되었다. 이야말로 교활한 속셈이었다. 신홍철은 부친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소희연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시선 한쪽 끝이 스치듯 지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승찬 대군 또한 냉랭한 시선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청 안의 혼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희연, 바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 ‘이 남자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이렇게 큰 구경거리를 놔두고, 왜 이렇게 음산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거야?’ 소희연은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조용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 판단했다. “어서 대감 어르신을 말리십시오!” 태자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급히 명을 내렸다. 하객들은 곧장 몰려들어 사방에서 남원군 부친을 붙들었고 각자 달래는 말을 쏟아냈다. “대감 어르신, 진정하십시오!” “아직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선 차분히 이야기부터 나누시지요!” “너무 노하시면 몸만 상하시니 부디 분을 거두십시오...” 한편, 다른 하객들은 신홍철에게 다가가 안위를 살폈다. “남원군, 괜찮으시오?” 신홍철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아이고... 아이고...” “어서 약재를 가져와 남원군께 발라 드려야 하오!” 태자 앞에서 본래 구경만 할 작정이었던 하객들도 이때만큼은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덕분에 태자를 비롯한 대군들은 오히려 할 일이 없어 한쪽에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승원 대군이 승명 대군에게 슬며시 속삭였다. “내 장담하는데, 이 사람들 속으로는 다 웃음을 참느라 죽을 맛일걸?” 승명 대군이 기막힌 듯 말했다. “딱 지금 형님 모습처럼요?” 승원 대군은 입을 활짝 벌리고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걸 보고도 안 웃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대단한 구경거리구나!” 무엇보다, 이 소동 덕분에 태자는 반드시 직접 나서 수습해야 할 터. 그렇다면 그의 혼사 문제는 한동안 미뤄질 것이다. 그야말로 하늘의 가호였다! 승원 대군은 속으로 감격하며 더욱더 큰 난리를 바라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이번 사건이 더더욱 커지길 바랐다. 그래서 아바마마와 태자 모두 혼사 문제를 잊어버린다면 그는 비로소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승원 대군은 그 생각에 한껏 들떴으나, 너무 즐거워한 나머지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대청 안이 한창 혼란스러워 모두가 신옥혜와 다른 두 명의 신씨 일가 아가씨를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 신옥혜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승원 대군에게 뛰어들었다. “대군 마마! 절 보러 오신 거지요? 부디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해주십시오!” “잠깐, 가까이 오지 말거라!” 승원 대군이 급히 손을 내저었으나 신옥혜는 애써 못 들은 척하고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손을 꽉 붙잡았다. 맑은 눈물이 그녀의 고운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그야말로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승원 대군은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다. “울지 말고...” “대군 마마, 저는 너무도 두렵습니다!” 신옥혜가 흐느끼며 그의 품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자, 승원 대군은 반사적으로 그녀를 감싸안았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그는 당장이라도 자기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이쪽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얽혀 있었고, 한편으로 하객들은 간신히 남원군 부친을 떼어놓고는 신홍철을 일으켜 세워 대강 상처를 치료했다. 그 처참한 모습을 보며 태자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대감 어르신, 아직 사안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으니 진정하십시오.” 괜히 사람을 때려죽이면 더 골치 아프게 될 터였다. 그러자 남원군 부친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갑자기 ‘쿵’ 소리를 내더니 태자 앞에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흘렸다. “태자 전하, 소신이 자식을 잘못 가르쳤사옵니다! 이토록 부끄러울 데가 없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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