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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소희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승군이 왔다고?’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경성에 돌아온 이상, 언젠가는 그를 마주칠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이렇게 빠르고 갑작스러울 줄은 몰랐다. 다행히 환이와 군이는 없었다. 태자와 여러 대군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청에 있던 모든 사람이 문 앞까지 나가 공손히 맞이했다. 소희연도 조용히 뒤따랐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네 명의 남자가 사람들의 중심이 되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앞에 선 남자는 곤룡포를 입었다. 온화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태자였다. 그의 곁을 나란히 걷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전승군. 5년 만에 다시 본 그는 예전보다 훨씬 차가워지고 날카로워져 있었다. 깊고 묵직한 분위기 속에 한층 더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고, 마치 칼날을 품은 듯한 존재감이 사람을 압도했다. 그를 본 순간, 소희연의 마음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속으로 쯧 하고 혀를 찼다. 아들이 가출했으면 당장 찾으러 나서야 할 텐데, 이 사람은 그런 걱정도 없이 남의 회갑연이나 참석하고 있다니. 그러니 군이가 그를 멀리할 수밖에. 그때 전승군이 갑자기 미간을 좁히며 날카롭게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시선이 단번에 소희연을 향했다. 소희연은 즉시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며, 얌전한 태도를 취했다. 속으로는 더욱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건 또 무슨 야수 같은 직감이야? 한 번만 더 쳐다봐도 바로 눈치채다니.’ 비록 시선을 피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남자의 시선이 잠시 자신에게 머무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살피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희연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그 누구보다도 전승군이 얼마나 끈질긴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얼굴까지 바꾸고 가명을 써가며 경성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 정도로 철저하게 위장했는데, 설마 그가 알아볼 수 있을까?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전승군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지만, 곧 흥미를 잃고 거둬들였다. 방금 잠깐, 전승군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지만 막상 시선을 돌려보니, 낯선 얼굴을 한 못생긴 여인이 눈을 내리깔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는 전혀 의미 없는 존재였다. 전승군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무미건조한 얼굴로 태자 옆을 따라갔다. “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모든 사람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태자는 앞으로 나아가 남원군의 부친을 직접 부축하며 말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모두들 예를 거두어도 좋습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남원군 부친이 몸을 일으키더니 노련한 얼굴에 진심 어린 미소를 띠었다. 당대의 태자가 친히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대군들까지 함께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냉담하고 고고한 승찬 대군까지 참석했다는 것은 황제가 여전히 이 늙은 신하를 중히 여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라면, 설령 남원군에 문제가 생겼더라도 꼭 처벌만이 답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남원군 부친은 속으로 안도하며 급히 태자에게 웃으며 말했다. “태자 전하, 그리고 여러 대군 나리들, 안으로 모시겠사옵니다.” 태자가 대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어딘가 어색한 것을 감지했다. “여기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태자 전하! 부디 소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시옵소서! 소신은 결백하옵니다!” 남원군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크게 외쳤다. “태자 전하, 제발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소실 홍씨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울부짖었다. “승원 대군 마마!” 한쪽에서 병사들에게 붙잡혀 있던 신옥혜가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승원 대군을 간절하게 불렀다. 하지만 승원 대군은 못 들은 척하면서 오히려 승명 대군을 끌어다가 자기 앞을 가리게 만들었다. 방금 태자에게 혼인을 강요받은 터라, 기분이 잔뜩 상해 있는 상황이었다. 하필 신옥혜까지 마주칠 줄이야. 그는 그녀를 가능한 한 멀리 피하고 싶었다. 남원군 부친은 웃음을 거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태자 전하, 소신 또한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사옵니다만 조 대감께서 갑자기 경조부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저희 집에 도적이 나왔다고 하셨사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오해인 줄 알았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조 대감께서 갑자기 소신의 아들을 붙잡아 가두려 하시고, 나아가 저희 집 대문까지 걸어 잠그려 하셨으니...” “태자 전하, 소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억울하옵니다!” 남원군이 한층 더 억울한 얼굴로 소리쳤다. 태자가 시선을 돌려 조성위를 바라보았다. “조 대감, 무슨 일인 것이오?” 조성위가 예를 갖추며 답했다. “태자 전하, 실은 이러하옵니다. 사전에 밀고가 들어와, 남원군 댁에 자객이 숨어 있다는 신고가 있어, 소신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나서게 되었사옵니다.” “그리고는?” 태자는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한 듯 덤덤하게 물었다. “전하, 그저 작은 오해일 뿐이옵니다...” 남원군의 부친이 급히 나서며 얼버무리려 했다. 하지만 철저히 공명정대한 조 대감이 그에게 면을 세워줄 리 없었다. “소신이 직접 조사한 바, 실상은 남원군의 애첩이 자객을 매수하여 본가의 셋째 아가씨를 해치려 하였사온데, 이 자객이 뜻밖에도 셋째 아가씨에게 생포되어 본가로 끌려와 대질신문을 당하고 있었사옵니다.” “...” 장내가 정적에 휩싸였다. 산적을 생포했다고? 이것이 과연 양반가의 규수라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승원 대군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셋째 아가씨란 누구요?” 조성위가 소희연을 가리켰다. “이분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소희연은 할 수 없이 앞으로 나서며 얌전히 허리를 숙였다. “태자 전하, 대감 마마, 소녀는 신경혜라고 하옵니다.” “참으로 흉하구나!” 승원 대군이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을 듣고는 스스로도 놀랐다. 그의 눈에 띈 것은 소희연의 얼굴 한쪽을 덮은 선명한 태어날 때부터의 반점이었다. 이토록 흉한 얼굴을 가진 여인을 경성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형님...” 승명 대군이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경거망동하지 마십시오." “난 내가 본 그대로 말한 것일 뿐이다...” 승원 대군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호기심에 다시 물었다. “그런데, 정말 자객을 네가 생포한 것이냐?” 모두의 시선이 소희연에게로 쏠렸다. 그중에서도 승찬 대군의 눈빛이 가장 날카롭고 싸늘했다. 전승군은 문득 얼마 전 외곽에서 있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 휘영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군이가 자객을 만났다가 남원군 댁의 여인에게 구조되었으며 그 여인을 따라갔다고 한다. 설마, 그 여인이 바로 그녀란 말인가? 소희연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리 없었다.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찌 그리했느냐?" 승원 대군은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점점 더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몸도 가녀린데, 어떻게 자객을 생포할 수 있었단 말이냐?” “대군 마마께서는 소녀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소희연이 조용히 반문했다. “그렇다.” 승원 대군은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단합니다.” 소희연이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저기 붙잡혀 있는 자객이 바로 그자입니다. 아직 살아 있으니, 대군 마마께서 믿기 어려우시다면 직접 물어보시면 될 것입니다.” “...” 승원 대군은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하는 걸 보니 사실이겠지. 그런데 내가 직접 물어보면 괜히 어리석어 보이지 않겠는가?’ 그는 소희연의 얼굴을 다시 한번 흘깃 보았다. 못생긴 데다, 성격까지 사나우니 전혀 매력이 없다고 느꼈다. 흥미를 잃어버린 승원 대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소희연은 평온한 얼굴로 서 있었지만, 속으로는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전승군의 얼음 같은 시선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그녀가 바로 그날 군이를 데리고 사라진 그 여인이라는 것이 점점 확실해졌다. 그런데 군이는 지금 어디 있단 말인가? 전승군은 그녀를 노려보면서도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군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태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 대감, 계속 말해 보시오.” 조성위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말을 이었다. “양측의 대질이 끝났으나, 아직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소신은 우선 자객을 경조부 감옥으로 이송하여 엄중히 심문하고자 하였사옵니다. 그러나 남원군께서 이를 가로막았사옵니다. 남원군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이 자객은 신씨 가문의 노비로서 이미 매매 문서를 작성하였기에, 경조부에서 처분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셨사옵니다. 이에 소신이 남원군을 체포하게 되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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