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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옥혜 말이 사실입니다! 그날 저는 줄곧 옥혜와 함께 있었으며 청지기들도 이를 증언할 것입니다. 저는 결코 밖을 나간 적이 없는데 부디 믿어 주십시오, 나리!” 소실 홍씨는 곧장 눈물을 떨구며 애원하였다. 신옥혜는 남원군 댁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가씨이자, 남원군의 금지옥엽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남원군의 굳어 있던 안색이 한층 누그러졌다. 오늘은 대감 어르신의 회갑연이라 많은 귀한 하객들이 자리했다. 이 일은 더 이상 거론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지금으로선 가문의 체면을 보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남원군은 근엄한 기색으로 꾸짖었다. “신경혜, 네 죄를 아느냐?” 소희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소녀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씀입니까?” 남원군은 의기양양한 채로 말을 이어갔다. “네가 집안의 여식이면서도 외부인을 매수하여 선영이를 모함하였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회갑연에서 감히 소란을 일으켜 불길한 일을 초래하였도다. 이런 악독한 심보를 지닌 네가 불효 불경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이윽고, 그는 소리 높여 명하였다. “누가 있는가! 이 불효한 계집을 끌고 가 불당에 가두어 깊이 반성케 하라! 또한, 입을 함부로 놀리는 이 무뢰한은 곤장을 쳐 죽이라!” 그야말로 소실 홍씨를 감싸고자 증인을 없애려는 것이었다. 소실 홍씨는 수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더니 입꼬리를 올려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신경혜, 천한 계집 따위가 감히 나를 건드려? 설령 네가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온다 한들, 증거가 있다 한들, 감히 내게 손끝 하나 댈 수 있을 줄 알아? 일단 불당에 갇히고 나면, 내 손에 떨어질 것이다. 그때 네가 어찌 되는지 두고 보자!’ 이미 대청 바깥에서 대기하던 청지기는 무리의 장정을 이끌고 들이닥쳤다. 그들은 반은 산적 두목을 거칠게 끌어냈고, 나머지는 소희연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산적 두목은 소실 홍씨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년이 감히 나를 팔아넘기다니! 두고 봐라, 내 형제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거든, 네년 집안이 통째로 저승길에 동행할 것이야...” 청지기는 낌새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급히 헝겊을 주워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산적 두목은 눈이 핏발이 서도록 버둥대며 소실 홍씨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 순간, 소실 홍씨의 오만한 기색도 서서히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아차, 깜빡 잊었다. 이자는 단순한 거리의 불량배가 아니었지.’ 무려 그녀가 거금을 주고 고용한, 진짜 산적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자는 호랑이도 피해 간다는 호랑산에서 수년간 터를 잡고, 살육과 방화를 일삼으며 악명을 떨친 자가 아니었던가? 만약 그가 이 자리에서 곤장에 맞아 죽는다면, 남은 산적들은 어찌 반응하겠는가? 분명 그녀를 원수로 여겨 신씨 일가를 몰살하려 들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가 감히 편히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까? 앞날이 위태롭기 그지없을 것이다. 소실 홍씨는 겁을 집어먹고, 다급히 남원군에게 말했다. “나리, 차라리 저자를...” 그러나 그녀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또 다른 하인이 허둥지둥 뛰어들었다. “나리! 큰일이 났습니다!” “또 무슨 일인 게야?” 남원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늘따라 무슨 재앙이 이렇게 많이 들이닥친단 말인가! 하나 해결하면 또 하나 터지고, 끝이 없네!’ 그의 부친 또한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간 말없이 앉아 있던 그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한편, 좌중의 하객들은 흥미진진하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인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경조부에서 사람을 잡으러 왔다 합니다! 댁에 산적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합니다!” “누가 신고하였느냐?” 남원군의 안색이 삽시간에 싸늘하게 변하였다. 그 순간, 여유롭게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소녀가 신고하였습니다.” 일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남원군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자리에서 딸의 목을 조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분노로 소리쳤다. “신경혜, 대체 네가 무슨 속셈이냐! 우리가 네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토록 아버지의 경사를 망쳐야만 속이 시원한 것이냐?” “아버지, 그리 말씀하실 것까진 없지 않습니까? 소녀는 단지, 길에서 산적이 살인을 저지르는 현장을 보고 신고하였을 뿐입니다. 경조부에 알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녀의 미소는 더욱 깊어지며 조소를 띠었다. “비록 소녀가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자랐다 하나, 법과 도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죄를 알고도 묵인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사로운 정으로 법을 어기는 것 또한 중죄이지 않겠습니까? 설마 아버지께서도 이를 묵인하시어, 소녀를 옥에 가두려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남원군은 이 말을 듣고 경련을 일으킬 듯 입술을 씰룩였다. ‘이 계집이 감히!’ 고작 시골에서 자란 주제에 어찌 이리도 말재주가 좋은 것인가! 그뿐이랴, 대놓고 그를 조롱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말한 ‘죄를 알고도 묵인’이란, 다름 아닌 그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소희연은 나직이 덧붙였다. “신씨 일가가 소녀에게 잘못한 일이라곤,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태어날 때부터 사주가 흉하다고 하여, 세 살에 시골로 쫓겨났을 뿐입니다. 그곳에서 하인 취급을 받으며, 남은 음식 찌꺼기를 먹고, 초라한 헛간에서 잠을 청하였을 뿐입니다.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버텼을 뿐인데 그마저도 모자라, 이번에는 산적 떼를 만나 목숨이 위태로워 간신히 살아남아 이 집 대문을 넘은 것입니다. 이토록 기적 같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소녀는 감격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어찌 신씨 일가가 소녀에게 잘못했다고 원망하겠습니까?” 남원군과 소실 홍씨는 할 말을 잃었다. 남원군 부친과 하객들도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경혜야, 말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 신옥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가 태어날 때부터 사주가 좋지 않아 부모님께 해를 끼친다고 하였으니, 이는 타고난 운명이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탓이 아니지 않느냐?” 소희연이 담담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소문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신옥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 어머니께서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 아니겠...” “옥혜 언니, 어머니께서는 언니의 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그런 말씀을 그렇게 하셔도 되겠습니까?” 소희연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신옥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남원군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버럭 호통쳤다. “신경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소희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귀한 분들을 모시다 보니 잊으신 것이 많으신 듯합니다. 홍씨를 맞아들이신 뒤로는 어머니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모양인데, 제가 대신 상기시켜 드려야겠습니까?” 이는 대놓고 그가 첩을 총애하여 본처를 등한시했다는 뜻이었다. 남원군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장이라도 불같이 화를 낼 듯한 기세였으나 소실 홍씨가 몰래 그의 팔을 꽉 잡았다. “경조부의 대감께서 아직 문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나리.” “어서 모셔 오너라.” 남원군은 급히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청지기가 황급히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엄 있고 냉엄한 기운을 풍기는 경조부의 조성위가 군사들을 이끌고 들어왔다. “조 대감께서 어찌 오셨습니까.” 남원군은 급히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 주위의 낮은 품계의 대신들과 하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 대감은 앞으로 나와 남원군의 부친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리며 말했다. “대감 어르신, 소인은 어명을 받들고 와서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대감 어르신의 회갑연을 방해하게 되어 송구합니다.” 남원군의 부친이 놀라 물었다. “조 대감,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 대감은 대답하지 않고 어수선한 대청을 쓱 훑어본 뒤,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신고한 자는 어디 있느냐?” “제가 신고하였습니다.” 소희연이 손을 들며 말했다. 조 대감이 그녀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남원군 댁의 하인들이 겁을 먹고 길을 비켜 주었다. 경조부 조 대감은 공정하고 엄격하기로 이름난 인물이었다. 성정이 강직하고 황제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그의 손에 들어간 사건은 비록 황족이라 할지라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남원군이 얼굴에 웃음을 억지로 지으며 말했다. “조 대감, 이는 그저 여식과 집안일에 관한 오해일 뿐이니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으니 조 대감께서까지 수고하실 일은 아니지요.” “큰 문제가 아니라 하셨습니까?” 조 대감은 싸늘한 눈빛으로 남원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원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고 계시기나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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