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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뭐라고?” 남원군은 얼굴색이 바뀌더니 문밖을 바라보았다. 대청 앞에서 하인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저지하려던 몇몇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소희연이 기절한 산적 두목을 질질 끌며 하인들 사이를 지나 대청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손을 들어 힘껏 던졌다. “쿵!” 산적 두목이 대청 한가운데 거칠게 내팽개쳐지며 두어 번 굴렀다. 잔치 자리를 가득 메운 하객들이 흠칫 놀랐고, 겁이 많은 부인들은 비명을 질렀다. “꺅....” 남원군과 소실 홍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네 정체가 무엇이냐? 감히 이 집에 함부로 발을 들이다니!” 남원군은 어두운 얼굴색을 한 채 그녀를 꾸짖었다. 소희연의 입꼬리가 비웃듯이 올라갔다. “아버지, 저를 모르시겠어요? 소녀 경혜입니다.” “뭐라고?” 그녀의 말에 남원군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홍씨가 비명을 질렀다. 홍씨는 놀라고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너, 네가 누구라고?” “어머님, 저 신경혜예요.” 소희연이 천천히 면사포를 걷자 고운 왼쪽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나 오른쪽 얼굴에는 흉측한 검은 점이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찌푸리게 했다. “저 아이가 어릴 적부터 시골에 내쳐졌던 셋째 아가씨, 신경혜라고?” 하객들이 놀라며 수군거렸다. “팔자가 사나워 부모를 해친다고 했던 그 아이?” “그래. 그런데 어쩌다 돌아온 거지?” “그런데 저 얼굴 좀 봐. 듣자 하니 진무군 댁의 도련님과 혼약이 맺어져 있다던데. 그 도련님 참 가엾네...” “그러게 말이야.” 홍씨는 신경혜의 얼굴을 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토록 지우고 싶었던 과거가 살아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녀는 다급히 물었다. “네가 어떻게 돌아온 거냐?” “어머님이 사람을 보내 ‘마중’ 나왔잖아요?” 소희연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홍씨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 “돌아오든 말든. 그건 그렇다 쳐도, 대체 저 끌고 온 시체는 뭐냐! 오늘은 아버지의 회갑연이다! 감히 이런 불길한 짓을 저지르다니!” 남원군이 노기를 띠며 꾸짖었다. 대청에 앉아 있던 남원군의 부친도 싸늘한 시선으로 소희연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오해십니다. 이자는 시체가 아닙니다.” 소희연이 한 걸음 나아가며 산적 두목을 발로 툭 찼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까지 죽은 척할 거야?” 산적 두목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움찔하더니 비명을 질렀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아, 아가씨! 제발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날 살펴보지 말고,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아는 얼굴이 있으면 말해 봐.” 소희연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산적 두목이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홍씨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껴 저도 모르게 남원군 뒤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산적 두목이 눈을 번쩍 뜨더니 화려하게 차려입은 홍씨를 보자마자 외쳤다. “아니, 당신은!” 홍씨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다급히 부정했다. “난 모르는 일이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 양반댁 부인이라고 하셨잖아요. 부인,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저는 부인 일을 도와드린 것뿐인데요!” 산적 두목은 소희연의 서늘한 기세에 질려 홍씨를 알아본 순간 그녀를 향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대청에 있던 하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홍씨를 향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궁금증과 호기심, 그리고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발견한 듯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난 모르는 일이야! 누군가가 너를 시켜 나를 모함하는 거겠지!” 홍씨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산적 두목이 경악한 표정을 보였다. “뭐라고요?” 남원군은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느껴 호통을 쳤다. “신경혜, 대체 무슨 짓을 벌이는 거냐!” 소희연이 무심한 얼굴로 답했다. “아버지, 그건 어머님께 여쭤보셔야죠. 제가 오늘 막 경성에 들어설 때 길목에서 갑자기 산적 떼가 들이닥치더군요. 그러고는 ‘부인 홍씨의 명을 받들어 네 목을 베러 왔다’고 하더군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직접 붙잡아 오게 되었습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 여기서 가려 보려고요.” 남원군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그는 더 세게 호통쳤다. “산적 따위의 말을 믿는다는 거냐? 시골에 처박혀 살다 보니 어리석어졌구나!” “산적의 말을 믿지 않아서, 그래서 직접 데려온 것입니다.” 소희연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대청을 둘러보았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조정의 중신들이십니다. 다들 총명하신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보시겠지요?” “제 말은 사실입니다! 맹세코 거짓이 없습니다!” 산적 두목이 다급히 외쳤다. 그리고 꽁꽁 묵인 두 손으로 홍씨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저분이 시킨 게 분명합니다! 나흘 전에 계집종과 할멈을 데리고 성 밖에 있는 낡은 절에서 저를 만났었죠. 천 냥을 준다며 거래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대신 사람 하나 죽여달라고 말이에요. 그 사람 머리를 가져오면 더 큰 상을 주겠다고도 하셨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홍씨는 필사적으로 남원군의 팔을 붙잡았다. “나리, 저는 결백합니다! 억울하다고요....” “부인이 그러셨잖아요! 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산적 두목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홍씨가 인정하지 않으면 산적 두목은 곤란해질 것이었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쓸 신세였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신경혜도 절대 그를 봐주지 않을 것이다. 하객들은 모두 그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경험이 풍부한 조정의 중신들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금세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은 결국 남원군 댁의 가정사였다. 소실 홍씨가 산적과 결탁하여 가문 내 적녀를 암살하려 했지만, 그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남원군 부친의 회갑연에서 오랜만에 나타난 셋째 아가씨 신경혜가 이를 폭로한 상황이었다. 이 사건은 남원군 가문에 엄청난 수치가 되었다. 가문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진 상황이었다. 하객들 중 일부는 속으로 웃으며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리, 저 정말 억울해요!” 홍씨는 눈물을 흘리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저는 경혜와 아무런 원한이 없어요. 경혜는 어린 시절부터 시골에 가 있었는데 제가 그런 경혜를 왜 죽이려 했겠습니까?” 소희연은 기가 차다는 듯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마음이 급했던 산적 두목이 재빨리 말해버렸다. “셋째 아가씨의 결혼 문제 때문이죠.” 홍씨는 말문이 막혔다. “부인께서 그러셨잖아요. 셋째 아가씨의 생모와 원한이 있어서 셋째 아가씨가 고관대작에 시집가는 걸 막아야 한다고 하셨죠. 아니면 진실을 알아내고 복수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그러셨죠. 어차피 셋째 아가씨는 시골에서 자랐고, 남원군도 그리 신경 쓰지 않으니 셋째 아가씨가 시골에서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요!” 산적 두목이 모든 걸 털어놓았다. “그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면 저는 이 일을 맡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모르는 척한다니.” 남원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홍씨를 바라보았다.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예요!” 홍씨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때, 홍씨의 친딸인 신옥혜가 나섰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 저는 어머니를 믿습니다! 어머니는 그럴 분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한 지 오래됐고, 다른 언니 동생들을 자기 자식처럼 대해왔어요. 어떻게 경혜만 그렇게 미워하겠어요? 제가 확실히 증명할 수 있어요. 나흘 전에 어머니는 저와 하루 종일 함께 계셨습니다. 절대 외출한 적이 없어요. 이 산적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거짓을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산적 두목이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지금 뭐라고 씨부렁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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