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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1년 전 신민지는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그 남자친구는 작성한 계산서를 들고 와 신민지한테 돈을 갚으라고 했었다. 계산서에 적힌 내용은 연애 기간 동안 남자 쪽에서 지출한 천만 원에 관련된 자세한 명세들이었다. 신민지가 돈을 갚지 않으면 그 남자는 고소하겠다며 노발대발하는 탓에 신민지가 이 법률 사무소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 당시 법률 사무소의 다른 변호사들은 모두 나가 재판을 열었고 이소현만 자리에 남아있었다. “사실은 그런 거 아니에요.” 신민지는 흐느껴 울며 말을 이어갔다. “그 사람하고 2년을 동거했었어요. 처음부터 집세도 수도세, 생활비를 각자 내기로 약속했었어요. 매달 저한테 40만 원을 입금할 거라면서 그 안에 집세, 수도세, 그리고 생활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까 저도 그 사람하고 같이 40만 원을 공동 소비로 사용했었어요.” “그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사람 말대로 했던 거예요. 그런데 헤어지고 나서 저한테 돈을 갚으라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저한테 계좌이체는 결혼을 목적으로 한 증여니까 헤어졌으면 응당 돌려줘야 한다면서요.” “분명 그 사람이 이건 생활비에 쓰이는 거라고 했는데 증여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2년 동안 저한테 사준 선물을 다 합치면 10만 원도 안 돼요. 어떻게 뻔뻔스럽게 저를 고소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있어요. 흑흑흑...” “매달 그 사람하고 같이 쓴 40만 원도 부모님이 주신 생활비였어요. 대학생인 제가 무슨 수로 그 많은 돈을 갚아요. 부모님한테 얘기할 용기도 없고요. 제가 공부해야 할 시간에 남자친구하고 동거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아빠가 절 죽이려고 들 거예요. 언니,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요...”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법률 전공인 대학생이 나쁜 놈의 함정에 빠졌으니 말이다. 연애에 미쳐 있는 여자들은 종종 쓰레기 같은 남자를 만나 만신창이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소현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눈앞에 있는 그녀를 안쓰럽게 여기고 있었다. 일반적 상황이라면 법률 사무소는 수임료도 보장이 안 되는 의뢰인의 사건을 맡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변호사들과는 다르게 이소현은 이 사건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신민지한테 수임료로 돈까지 빌려줬었다. 그때의 이소현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신민지를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신민지가 혹시나 허튼 마음을 품을까 걱정이 들었던 걳이다. 변호사 수임료는 의뢰인이 직접 변호사한테 건네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법률 사무소에 수임료를 지급하면 법률 사무소에서 대리 변호사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형식이었다. 변호사 자격증을 딴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이소현은 법률 사무소에서 받는 한 달 월급이 고작 140만 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신민지한테 돈을 빌려줬었다. 그 사건을 맡은 뒤 이소현은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관건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승소를 하게 되었다. 신민지는 그런 그녀한테 감탄과 감사를 표하며 졸업한 뒤에 이 법률 사무소로 와서 그녀의 조수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신민지는 붉어진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니, 실습 기간 끝나고 언니 찾아가도 돼요?” 뜻밖의 물음에 이소현은 어리둥절해졌다. 곧이어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그럼. 강성이 내 고향이거든. 나중에 찾아오게 되면 나한테 연락해.” “완전 좋아요!” 신민지는 눈물을 흘리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언니, 평생 언니 따라다닐 거예요! 저를 귀찮아하시면 안 돼요.” “그럴 리가!” 법률 사무소 주임 사무실. 주임은 안경을 쓴 중년 남자로 그녀의 사직서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소현아, 왜 갑자기 사직하려는 거야? 업무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이소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집안에 일이 생겨서 급하게 돌아가 봐야 돼서요. 한 달 전에 사직서를 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집안에 갑자기 일이 생길 줄은 저도 몰랐어요. 죄송해요.” 이소현은 재차 말을 덧붙였다. “업무 인계는 거의 다 돼 가요. 제 손에 열흘 뒤에 열릴 이심 재판이 남아있고요. 그것만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갈 생각이에요.” 주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네. 알았어. 건강하게 잘 지내.” 법률 사무소를 나온 이소현은 무작정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화려한 불빛이 켜지고 밤바람이 나무 꼭대기를 스쳐 지나고 있었다. 이소현은 왠지 모를 외로움에 사로잡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3년이란 시간을 보냈던 이 도시를 떠나게 된다. 해성시로 처음 도착했을 때는 은행카드가 전부 정지되어 주머니에 몇십만 원의 용돈밖에 없는 탓에 그녀는 호텔에서 3일을 머물렀었다. 3일 동안 그녀는 일자리를 찾았고 법률 사무소 인근에서 저렴한 월셋집을 찾았었다. 집세와 보증금을 내고 나니 그녀는 주머니에 무일푼이었고 강성에 있는 절친의 도움으로 겨우 끼니를 챙길 수 있었다. 저렴한 월셋집 단지는 혼잡하기만 하고 치안도 좋지 않았었다. 그녀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주정뱅이가 그녀의 방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그 때문에 한밤중에 이불 속에 숨어 벌벌 떨며 감히 문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집주인한테 상황을 얘기하긴 했지만 집주인은 자신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며 손을 내둘렀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다른 거처를 옮겨야만 했고 심지어 악덕 집주인한테 보증금마저 차감 당했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예의 있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조곤조곤 얘기했었는데 그 악덕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건 물론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그녀를 지적질했었다. 결국 참다못한 그녀는 그 집주인이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다며 전화로 신고를 했고 이어서 소방 불합격이라는 신고도 했었다. 그걸로도 부족했던 건지 그녀는 집주인이 계약을 위반하고 세입자를 모욕했다는 죄명으로 법원에 신고를 넣어 집주인을 난처한 지경으로 몰았었다. 나중에는 법원에서 소송을 접수하기도 전에 그 집주인이 먼저 보증금을 돌려주었다. 그녀는 계약서 위반이라는 소송은 철회했으나 모욕죄는 철회할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결국 악덕 집주인은 소송에서 패소하여 그녀에게 돈을 배상해야만 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나니 이소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마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낙담한 시기였을 것이다. 니중에 옆집에 살던 여자아이한테서 그녀가 이사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정뱅이가 누군가한테 심하게 맞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었다. 아마도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린 모양이다. 그 악덕 집주인도 그 뒤로는 소리 소문 없이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자업자득이니라... 처음 고진우를 만났던 그때 그녀는 신입이었고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던 변호사들을 따라 국성 그룹 산하에 있는 한 작은 회사로 가서 법률 고문 계약 문제를 논의했었다. 마침 그날 고진우가 그 회사로 가서 순찰했었는데 그의 말로는 그녀한테 첫눈에 반했었다고 했다. 그 뒤로 고진우는 그녀한테 맹렬한 구애 공세를 펼쳤고 그녀를 살뜰히 챙기며 모든 면에서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켜 줬었다. 그리고 매번 항상 그녀가 필요한 순간마다 그는 한걸음에 달려와 주곤 했었다.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한 뒤 고진우는 여전히 그녀한테 살갑게 대하며 두 사람은 알콩달콩한 연애를 이어갔었다. 허나 그들의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게 된 계기는 바로 일주년 기념일이었다. 두 사람이 술도 조금 마셨고 고진우는 그녀와 연인 사이의 마지막 단계를 밟으려고 그녀를 품에 안으며 입맞춤을 하려 했는데 그녀는 당황해하며 그를 밀쳐내고 있었다. 고진우는 상처를 입은 듯한 표정이었다. “왜 그래?” 그녀는 긴장한 나머지 말을 더듬었었다.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시간을... 좀 줘.” 그날 이후로 고진우는 예전처럼 다정하게 대하지 않았었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진우와 연인 사이의 마지막 단계를 이행할 마음이 없었고 입맞춤도 원하지 않았었다. 그녀도 자신의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어쩌면 첫 연애라 더욱 신중하고 싶은 걸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고진우가 수많은 여자들이랑 입맞춤도 하고 잠자리고 가졌으니 그가 더럽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어떠한 이유든지 지금의 그녀는 이 모든 게 다행이라 느껴졌다. 별장으로 돌아오자 고진우는 집에 없었다. 이소현은 샤워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 열흘 뒤면 드디어 여기를 떠날 수 있다.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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