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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이소현은 민하진의 옆에 놓인 일인용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주눅이 드는 기색 하나 없이 잔잔한 눈빛으로 민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집안에 시집가고 싶은 생각 없어요.” 민하진은 그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이소현을 위아래로 샅샅이 훑어보았다. 이 여자가 바로 그녀의 아들이 3년이나 사귀어 온 여자다.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에 품위도 있어 보이고 비록 보통 집안의 자식이긴 하나 옹졸한 티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방금 입구에서 그녀를 난처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녀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럼 어때? 그저 부잣집에 시집가고 싶어하는 헛된 꿈을 꾸는 여자일 뿐이다.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 해도 결국은 어디에 내세울 수 없는 집안이다. 민하진의 말투에는 우월한 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내 앞에서 연기할 필요 없어.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잘 알아. 우리 아들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아. 너 같은 애가 부잣집 자식을 한 명 만나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이었겠어. 평소에 우리 아들이 너한테 꽤 돈을 많이 썼을 거야?” 이소현이 답했다. “고진우 돈에 관심 없어요.” 민하진은 경멸하는 듯한 냉소를 띠었다. “고상한 척하기는! 너같이 입만 번지르르한 여자들을 내가 수도 없이 봐왔어. 정말 진우 돈에 관심이 없었으면 왜 진우한테 들러붙어 있는 건데?” 이소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모님, 아드님한테 돈 빼고 그다지 우수한 점이 없다고 생각하나 봐요?” “너!” 화가 치밀어오른 민하진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이소현을 쏘아보았다. “영리하게 말하는 모양새 좀 보게! 진우는 너더러 착하고 온순하다고 하더니만 우리 아들이 사람 잘못 본 모양이구나!” 이소현은 침착한 모습으로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었다. “버릇없기도 하지!” 민하진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윗사람이 집에 왔으면 차라도 대접해야 할 거 아니야.” 이소현은 거짓 웃음을 내보였다. “죄송해요. 사모님, 여기 제 찻잔밖에 없어서 말이죠. 사모님도 제가 마셨던 찻잔은 분명 사용하시지 않을 테니까 아무래도 차를 대접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어차피 차 한 잔 안 마신다고 사모님이 노여워하진 않을 거잖아요.” 민하진은 분노가 치밀었다. 진우는 대체 어디서 이토록 무례한 계집애를 찾은 거야? 민하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난 뒤 말을 이었다. “아무튼 우리 집안에 아무나 들일 수 없다고 충고하러 찾아온 거야. 절대 진우하고 결혼하지 못할 거라는 뜻이야.” 이소현이 답했다. “네. 네.” 민하진이 말을 덧붙였다. “내가 인정한 우리 집안 며느리는 하영이야. 하영이 집안하고 우리 집안은 대대로 친하게 지내오기도 했고 하영이가 진우 첫사랑이기도 하니까 허튼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아. 얼른 짐 챙겨서 여길 떠나. 진우의 옆자리를 비워주도록 해.”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이소현은 전에 고진우의 통화를 엿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국성 그룹에 경제난이 찾아와 많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할 수 없게 되어 경제적 손실을 심하게 입었다는 내용들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국성 그룹에 투자할 생각을 했었다. 비록 고진우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그녀와 결혼할 계획이 전혀 없기는 했으나 적어도 연애를 3년이나 해 왔으니 어느 정도 감정은 남아있다고 생각해 그를 도와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도 국성 그룹에 관련해 어떻게 투자하면 좋을지 상의하러 술자리로 고진우를 찾아갔었다. 부모님하고 사이가 틀어져 이석동은 절대 투자를 해주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녀의 사촌 오빠인 소지강은 현재 소씨 가문의 집권인이다. 그의 지도하에 소망 그룹은 승승장구하여 작년에 국내 기업 상위 10위 안에 들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도 그녀를 아껴주던 사촌 오빠라면 그녀의 부탁을 무조건 들어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고진우의 입에서 그녀가 주하영의 대체품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잠시 기억 속에 파묻혀 있던 이소현은 정신을 차리고 민하진한테 말을 건넸다. “걱정 마세요. 며칠 뒤면 고향으로 내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민하진은 이토록 쉽게 이소현을 쫓아낼 수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건지 잠시 어리둥절해 있었다. 돈 한 푼도 안 받고 이대로 물러난다고? 뭐라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소현은 고개를 숙여 시계를 확인했다. “더 할 말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 다른 볼일이 있어서요.” 말을 마치고 난 이소현은 민하진의 답을 듣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민하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대로 가버렸어? “정말 버릇없는 계집애네!” 민하진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나니 왠지 모르게 울화가 치밀었다. “윗사람이 아직 자리를 뜨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가 안중에도 없는 건가?” 그녀는 오늘 특별히 가장 비싸고 화려한 보석 세트를 착용해 세상 물정 모르는 가난한 계집애한테 고진우는 차마 우러러볼 수 없는 남자라는 걸 몸소 깨닫게 해주고 싶었었다. 심지어 이리로 오기 전에 민하진은 이소현을 보자 겁을 주며 자신을 잘 모시게끔 만들려던 계획이었고 더 나아가 이소현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진우한테 전화를 걸 수도 있을 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럴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었다. 이소현이 자리를 떠났으니 여기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던 민하진은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며 고진우한테 불평을 털어놓을 심산이었다. 기사님은 입구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잠시 진정한 뒤 한 번호로 전화를 걸어 상냥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하영아, 진우가 지금 연애하고 있는 여자친구 있잖아. 정말 예의가 없더라. 방금 만나 봤는데 정말 가난한 집안에서 가난한 자식이 태어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주하영은 그 말을 듣고 나자 기분이 들떠 있었다. 이소현이 민하진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고진우가 설령 헤어질 마음이 없다고 해도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주하영은 다정한 말투로 답하고 있었다. “어머님, 노여워하지 마세요.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계집애 때문에 감정 상하시면 안 되죠.” 주하영한테 있어서 가난한 자들은 그저 시골 촌뜨기와도 같은 처지였다. 아무리 이소현이 시골에서 올라온 여자가 아니라고 한들 그녀한테 있어서 별반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민하진이 답했다. “역시 우리 하영이가 착하네. 그 계집애 말로는 며칠 뒤에 고향으로 내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나마 눈치는 있어서 다행이야.” “정말 그런대요?” 주하영이 물었다. “그럼 그분은 진우하고 헤어질 생각인 건가요?” 민하진이 임했다. “당연하지. 그 계집애가 헤어지지 않으면 내가 나서서 헤어지게 만들 거야. 오늘 그 계집애 태도를 보아하니 절대 다시 진우한테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할 거거든.”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주하영이 말을 이었다. “어머님 지금 저택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제가 말동무 해드리러 갈게요.” ... 이소현은 경화원 별장을 나온 뒤 곧장 법률 사무소에 가서 사직서를 냈다. 여기서 일한 지도 3년이 다 돼 간다. 신입으로 들어와 개업 변호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이 법률 사무소에서 경험해 왔었다. 조수 신민지는 올해 막 대학을 졸업해 20대 초반의 나이로 이소현보다 세 살 어렸다. 그런 그녀는 이소현이 사직한다고 하자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언니, 왜 갑자기 그만두는 거예요?” “집안에 일이 좀 생겼어.” 이소현은 사직하는 게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겼었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신민지의 모습을 보고 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녀와 신민지는 평범한 동료 사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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