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소현아, 상미파리에서 맞춤 제작한 약혼반지를 해성 매장으로 보냈어. 시간 되면 가서 확인해 봐.]
상미파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아몬드 반지 브랜드였다.
고작 며칠 전에 혼사를 동의했는데 맞춤 제작한 반지가 벌써 도착한 거야?
설마 사전에 준비해 두었던 건가?
이소현은 별다른 말 없이 알겠다는 메시지로 답장을 했다.
상미파리 매장 안.
점원은 예의 있게 반지를 꺼내주었다.
“이소현 씨, 강지태 씨가 특별히 맞춤 제작한 반지예요.”
이소현은 그 반지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5캐럿의 희귀한 파랑색 다이아몬드는 작은 핑크 다이아몬드와 무색의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외부 링에 박혀 있었고 조명으로 인해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반지 내부에 이소현 씨와 강지태 씨의 이름 약자가 새겨져 있어요.”
이소현은 반지 안을 들여다보니 정말로 ‘YSH, GJT’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반지에 엄청난 공을 들인 게 틀림없었다.
이소현은 반지를 끼어보니 사이즈가 맞춤했다.
“예쁘네요.”
점원도 진심으로 감탄해 주었다.
반지를 끼고 있던 그때 고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소현,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이소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고진우는 이소현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잡고 있던 주하영의 손을 뿌리쳤다.
주하영은 싸늘한 눈빛이 스쳐지나더니 금세 평온함을 유지했다.
고진우가 주하영을 데리고 나타난 이 광경에 이소현은 하나도 놀랍지가 않았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반지 보러 왔지.”
고진우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와 이소현의 손에 낀 반지를 보더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소현은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흔들어 보이며 꽃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어때? 예뻐?”
고진우는 눈빛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하나도 안 예뻐.”
반지가 어떠한 의미를 뜻하는 건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고진우는 이소현이 말을 잘 듣는 여자인 줄로 알았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얻을 수 없는 것에 눈독을 들일 줄은 몰랐었다.
그녀와 절대 결혼은 안 된다.
이소현은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
고진우는 싸늘한 태도로 임했다.
옆에 있던 주하영은 빙그레 웃으며 이소현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다 마주치네요. 저도 오늘 반지 맞추러 온 거예요.”
이소현은 속으로 그들을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방금 주하영과 통화를 했던 거였다.
그가 말한 볼일이 바로 주하영과 쇼핑을 하며 반지를 맞추는 건가?
고진우는 해명하지 않았다.
주하영의 말을 묵인하는 것이다.
이어 주하영은 이소현의 손에 끼워진 반지에 시선을 돌렸다.
가운데 파랑색 다이아몬드는 5캐럿은 될 거고 주위에 희귀한 분홍색 다이아몬드가 매칭돼 있었다.
이 반지가 적어도 14억 원 정도는 할 텐데 무슨 자신감으로 이 반지를 착용해 보는 거지?
사지도 못할 거면서 쪽팔리지도 않은 건가?
주하영의 도발적인 말투에도 이소현은 그저 대충 답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끼워진 반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강지태의 안목은 역시나 알아줘야 한다니까!
마음에 쏙 들잖아!
“이소현 씨, 반지 예쁘네요.”
주하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그러게요. 저도 예쁘다고 생각해요.”
고진우의 안색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이소현! 당장 반지 빼.”
“왜?”
이소현은 짐짓 의아하다는 듯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네가 반지를 왜 착용해 보는 건데? 결혼이라도 강요하겠다는 거야?”
고진우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하고 절대 결혼 못 해!”
옆에 있던 주하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기양양해하고 있었다.
“이소현 씨, 오늘은 어머님 의사로 진우하고 같이 반지 맞추러 온 거예요.”
그가 말하는 어머님은 고진우의 어머니인 민하진이었다.
주하영의 말에 담긴 의미는 명확했다.
그건 바로 그녀는 고진우의 어머니가 인정한 며느리이고 고진우의 어머니는 그녀가 시집을 오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소현 너는 고씨 가문에 발을 들이지 못할 거라는 뜻이었다.
이소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약혼자와 맞춤 제작한 약혼반지를 살펴보고 있는데 이들은 왜 여기서 난리를 피우고 있는 걸까?
한 놈은 그녀가 결혼을 강요하는 거라 착각하고 있고 또 한 놈은 자기가 민하진의 인정을 받아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해성시의 소규모 가업을 소유한 고씨 가문을 그녀의 아버지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
“그래. 알았어.”
이소현의 말투는 여전히 평온했다.
주하영과 고진우는 얼떨떨해졌다.
이 여자는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주하영은 이소현의 표정을 뚫어져라 살피고 있었다. 그녀한테서 질투심이나 불쾌감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허나 이소현의 태도는 여전하기만 했다.
주하영은 순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소현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괜찮은 척하는 건지 가늠이 가지 않는 것이다.
고진우는 표정은 극도로 어두워졌다.
“이소현, 이러는 게 재미있어? 오늘 내가 하영이하고 여기로 반지 맞추러 올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찾아온 거지?”
“솔직하게 말할게. 우리 둘은 미래가 없어. 오늘 결혼을 강요한다고 해도 소용없다는 소리야!”
“집안끼리 어느 정도 배경이 맞아야 결혼을 할 거 아니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하고 결혼할 수 있겠어?”
고진우는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어갔다.
“지금 네 모습이 어떤지 알아? 창피해 죽겠어!”
정말로 화가 치밀어 오른 듯한 그는 한꺼번에 불만들을 토로하고 있었으나 이소현은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미소를 보였다.
“또 내가 창피해진 거야?”
“우리 아직은 연인이야. 그럼 이분은 내연녀가 되는 거 아닌가? 그럼 넌 다른 여자랑 바람을 피운 쓰레긴데 누가 더 창피한 거야?”
고진우는 그녀의 말로 인해 분노가 극에 달한 건지 식식거리며 언성을 높였다.
“당장 반지 뺄 거야? 안 뺄 거야?”
이소현은 무덤덤한 말투로 느릿느릿 답하고 있었다.
“안 뺄 거야.”
“그래! 어디 착용해 봐. 어차피 착용한다 해도 난 반지 사주지도 않을 거고 너하고 결혼하지도 않을 거야!”
이소현이 답했다.
“알았어.”
고진우는 이소현이 고집을 부리고 있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런 그녀를 분노가 서린 눈빛으로 쏘아보던 고진우는 노기등등하게 자리를 떠나버렸다.
주하영은 뒤를 쫓아 나섰다.
“진우야, 기다려.”
두 사람이 떠나고 나자 점원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이소현 씨, 저분들은 누구세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3년 동안 연애를 해 왔는데 고진우는 그녀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사실상 정작 결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은 그였고 그녀 또한 그와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이소현은 반지를 낀 사진을 몇 장 찍어 강지태한테로 보내주었다.
[예뻐?]
같은 시각 강성시 강준 그룹 대표 사무실.
강지태는 소현이라 적힌 이름으로 보내온 메시지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손에 들린 서류를 내려놓고 답장을 했다.
[예쁘네.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어.]
강지태는 웃음이 짙어졌다.
[마음에 들면 됐어.]
[지태 오빠, 이거 엄청 비싸지?]
[안 비싸, 소현이는 이것보다 훨씬 더 비싼 걸 착용해도 돼.]
비서인 임해성은 강지태의 서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대표님을 몇 번이고 힐끔거렸다.
잘못 본 거 아닌가?
차가움의 대명사인 대표님이 지금 웃고 있는 건가?
문제는... 너무 달달해 보이는데?
대표님한테 핑크색 기운이 느껴지네...
“서명했어. 뭘 보는 거야?”
강지태는 비서 임해성한테 평소의 싸늘한 태도를 내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난 임해성은 대표님 손에 들린 서류를 받아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대표님, 그럼 먼저 나가볼게요.”
이소현은 반지를 챙긴 뒤 옆 매장에 있는 남성용 시계 전문점으로 향해 강지태한테 답례로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전에 아버지가 강지태의 사진을 보내왔었다.
차가운 기운이 넘쳐나는 그는 훤칠한 이목구비를 자랑하고 있었고 기억 속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이소현은 강지태한테 어울릴 만한 검은색 손목시계를 신중하게 골랐다.
막 카드를 긁고 있던 그때 낯익은 사람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소현아, 네가 어떻게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