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3장

그는 비로소 자신의 여자친구가 현장에 있다는 걸 깨달은 듯 주하영의 허리를 껴안고 있던 손을 거두고는 뒷걸음질 쳤다. 고진우의 친구들은 그의 시선을 따라 이소현을 발견하고는 냉큼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다. “자, 계속해서 게임 놀아야지. 하영아, 넌 위도 안 좋으니까 술 그만 마셔. 우리 게임에서 지면 묻는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하거나 벌칙 받는 걸로 하자.” “그 제안 괜찮네. 그걸로 하자.” 고진우는 감정을 추스른 뒤 소파 쪽으로 다시 걸어왔다. 이소현이 질투하거나 그한테 화를 낼 줄 알았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듯한 그녀의 태도에 고진우는 왠지 모르게 당황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소현이 어딘가 이상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침묵만 흘렀다. 고진우가 머뭇거리며 해명하려던 그때 다른 한 켠에서 재차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영아, 또 진 거야. 벌칙 수행할 거야? 아니면 솔직하게 답할 거야?” 고진우의 주의력은 또다시 주하영한테로 끌리고 있었다. 그는 주하영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벌칙 수행할게.” 고개를 돌려 고진우를 바라보고 있는 주하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선보였다. “그래. 쪽지마다 벌칙이 적혀 있으니까 아무거나 골라봐.” 누군가가 쪽지 뭉치를 꺼내고 있었다. 주하영은 내키는 대로 쪽지를 골랐고 안에 내용을 확인한 게임 주최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주하영, 고진우와 이소현 세 사람을 두리번거렸다. 한 여자는 더는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무슨 벌친인데 그래. 나도 봐봐.” “어머...” 그녀 또한 쪽지에 적힌 내용을 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런 반응들로 인해 다들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벌칙을 고른 건데?” “빨리 말해.” “현장에서 원하는 이성을 찾아 입맞춤해야 된대.” 그 남자는 쪽지의 내용을 읽으며 고진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진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이 굳어버렸다. 룸 안에서는 냉기가 맴돌고 있었다. 주하영은 그런 반응이 대수롭지 않은 듯 환한 미소를 보이며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훤칠한 남자한테로 다가갔다. “지안아, 나하고 키스해 줄래?” 임지안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듯한 고진우의 서늘한 눈빛을 힐끔하고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주하영은 그런 임지안의 목을 잡고 입맞춤하려 했다. “그만들 해!”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건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난 고진우는 성큼성큼 걸어가 주하영의 손목을 끌고 나갔다. 남겨진 사람들은 멀뚱멀뚱 눈빛을 교환하다 동정심이 찬 표정으로 이소현을 바라보았다. 이소현은 책상 위에 놓인 주스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담담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그렇게들 쳐다보는 거야?” 그들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는 자신들의 놀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소현은 마음이 점차 식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알고 지내온 고진우는 이토록 이성을 잃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주스를 다 마시고 난 이소현은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사이에 두고 밖에서 몇몇 여자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진우 미친 거 아니야. 여자친구를 여기에 내버려두고 주하영이랑 나갔잖아.” “그거야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주하영이니까 그렇지.” “그래. 방금 못 봤어? 주하영이 임지안한테 입맞춤하려고 하니까 고진우가 안색이 얼마나 어두웠는데.” “나도 봤어. 고진우 여자친구도 참 불쌍해. 자기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 때문에 미쳐 날뛰잖아.” “불쌍하긴 하더라. 여자친구를 완전 대체품 취급하잖아.” “내가 볼 땐 고진우하고 이소현이 곧 헤어질 것 같아. 고진우가 사랑하는 여자는 주하영이잖아.” “내 생각도 그래...” 거울을 통해 화장실 칸막이를 나오고 있는 이소현을 확인한 그 여자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다른 두 여자도 이소현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이소현은 거울 앞으로 걸어와 무뚝뚝한 표정으로 손을 씻고 있었다. 하긴, 곧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네. 다만 헤어지자고 할 사람은 그가 아니다. 그가 그녀를 쫓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제 그녀가 더는 그를 사랑하지 않으니 그녀가 그를 버리는 것이다. ... 고진우의 별장으로 돌아오고 나자 벌써 저녁 11시였다. 매우 피곤한 이소현은 샤워를 마치고 금방 잠을 청했다. 고진우는 다음 날 오후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침실 문을 열자 바닥에 널려 있는 캐리어가 눈에 들어온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 하는 거야?” 이소현은 옷장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돌아왔어? 며칠 뒤에 고향에 다녀오려고.” 그녀의 물건은 너무나도 많았다. 필경 여기에서 2년이란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옷이나 신발, 그리고 잡동사니 같은 작은 물건들은 강성으로 가져가지는 못해도 잘 포장해 버려야만 한다. 그녀는 여기에 자신하고 관련된 그 어떠한 물건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이 마치고 난 그녀는 고진우의 목에 찍힌 붉은 자국이 눈에 들어오자 잠시 얼떨떨해져 있다 이내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렸다. 고진우한테 대한 감정을 철저히 접은 것이다. 그러니 그가 누구와 하룻밤을 보냈던 이제 그녀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고진우는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갑자기 고향에 내려가는 건데? 어젯밤 일 때문에 화가 난 거야? 일부러 날 피하려고?” “아니야. 부모님 보고 싶어서 그래.” 이소현의 답을 듣고 나자 고진우는 표정이 풀어졌다. “그래, 부모님 찾아뵙는 것도 좋지.” 3년 동안 이소현은 단 한 번도 고향에 내려간 적이 없었다. 심지어 설마저도 그녀는 혼자 보냈었다. 그는 가족들 나몰라라 하고 그녀와 새해를 보낼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그녀를 집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인 민여사는 집안 배경이 없는 여자를 집안에 들일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고진우가 말을 이었다. “요즘 바빠서 같이 가주지는 못할 것 같아. 언제 비행기표야? 기사님한테 데려다주라고 할게.” 이소현은 마음에 드는 옷 몇 벌을 침대에 가지런히 늘어놓은 뒤 한 벌씩 차근차근 접어 캐리어에 넣고 있었다. “괜찮아. 택시 잡으면 돼. 데리러 올 사람 있거든.” 그 말을 듣고 나자 고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소현이 부모님 만나러 같이 가자고 할까 봐 은근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평범한 연인이었으면 연애한 지도 3년이 돼 가고 있으니 상견례를 치르는 건 당연하다. 허나 그는 평범하지가 않다. 그는 고씨 집안의 외아들로 국성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다. 집안 배경의 차이가 그들 사이에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큰 벽이다. 고진우도 그와 이소현은 절대 미래가 없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부모님을 만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소현도 그런 도리를 알고 있는 건지 강제로 그를 데리고 가려 하지 않았다. 생각에 잠겨 있는 고진우는 이소현이 심성이 착하다는 걸 재차 깨닫게 되었다. 어젯밤 충동심을 이기지 못하고 주하영과 함께 도망간 일로 이소현이 울며불며 소란을 피울 거라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잠잠하기만 한 터라 안심이 되었다. 3년이란 연애기간 동안 이소현은 다른 여자들처럼 시시각각 그의 동선을 살피지도 않았고 그가 다른 여자와 가까이 지내는 일로 화를 낸 적도 없었다. 그때 친구의 말이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두 여자랑 연애하면 되지. 죄책감이 드는 거면 이소현한테 선물 공세하며 달래주면 되잖아. 여자를 달래주는 게 얼마나 쉬워.” 어쩌면 주하영하고 약혼하고 이소현을 내연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경 그처럼 집안 배경 훌륭한 남자를 이소현은 다시는 찾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이소현은 그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으니 절대 그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녀가 고향에서 갖다 온 뒤에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고진우가 입을 열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 해성으로 돌아올 때 나한테 말해. 데리러 올게.” 이소현은 눈을 아래로 떨구고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알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녀의 속심말이었다. 그가 다시 입을 뻥끗하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몇 분이 지나자 고진우는 전화를 끊고 이소현한테 말을 건넸다. “볼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돼. 어젯밤 일은 내가 잘못했어. 널 혼자 거기에 버려두는 게 아니었는데. 사죄하는 의미로 선물 사줄게. 이따 비서가 챙겨올 거야.” 이소현은 담담한 태도로 응하고 있었다. 고진우는 다른 말 없이 곧장 떠나버렸다. 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소현은 강지태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