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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육현우는 먼저 주치의에게 할머니의 검사 결과를 물었다. 그가 병실에 돌아오자 임하나는 이미 일어나 이옥자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있었다. 임하나는 기척 소리에 몸을 돌려 금방 깨어난 듯 몽롱한 눈빛으로 인사했다. “대표님 오셨어요.” 그녀의 부드러운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육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할머니 돌봐줘서 고마워요.” 임하나가 아직도 퇴원하지 않은 이유를 육현우는 알 것 같았다. 이옥자는 쉽게 남을 칭찬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제 보니 임하나에겐 확실히 우수한 성품이 있었다. “별말씀을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리고... 점심에 대표님께서 만드신 갈비탕도 먹었잖아요.” 갈비탕을 먹은 것을 답례로 이옥자를 돌보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육현우가 임하나를 보며 물었다. “맛은 어땠어요?” “네?” 임하나는 육현우가 이렇게 물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잠시 멈칫하다가 멋쩍게 답했다. “맛있었어요. 조금 싱겁긴 했지만.” “그래요.” 육현우도 화내지 않고 순순히 임하나의 의견을 접수하면서 해명했다. “할머니께서 짠 걸 못 드셔서요. 간을 적게 했어요.” 임하나가 놀란 듯 물었다. “그 갈비탕 대표님께서 하신 거예요?” 육현우가 답하기도 전에 이옥자가 끼어들며 말했다. “현우가 만든 게 맞아. 우리 현우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전구도 잘 갈고... 시간 있으면 우리 집에 와서 현우 요리 솜씨 좀 맛봐.” 임하나가 고개를 돌리자 방금까지도 곤히 자고 있던 이옥자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하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대표님 정말 대단하신데요.” 지위가 이렇게 높은 사람이 집안일도 스스로 하는 건 아주 드물었다. 육현우는 달랐다. 그는 스스로 집안일을 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 육현우는 대답 대신 도시락을 이옥자에게 건넸다. 이옥자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나 저녁 먹었어.” “드셨다고요?” 육현우는 의외였다. 이옥자는 입맛이 까다로워 밖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옥자가 웃으며 말했다. “하나 언니가 음식을 해서 가지고 왔지 뭐니. 그래서 같이 먹었어.” 육현우가 도시락을 치우며 말했다. “그럼 얼굴 닦아드릴게요.” “됐어. 하나가 이미 닦아 줬어. 족욕도 했고 넌 필요 없어.” 육현우는 말문이 막혔다. 그때 임하나가 가방을 들며 말했다. “대표님. 시간도 늦었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 할머니도 안녕히 계세요.” “그래. 조심히 가렴.” 이옥자가 미소를 지으며 임하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임하나가 떠나자 육현우가 웃으며 말했다. “저 아이가 정말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당연하지. 넌 어때? 저 아이가 마음에 들어?” 임하나가 떠나고 이옥자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내가 널 위해 이미 물어봤어. 남자친구랑 헤어졌대. 만약 마음에 들면 빨리 적극적으로 어떻게 좀 해 봐.” 육현우는 어이가 없었다. 그 시각, 임하나는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소나기가 얼굴로 쏟아졌고 무의식중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누군가 그녀를 잡아끌었다. 남자의 시원한 향기가 임하나의 코를 자극하여 임하나는 멍하니 눈앞에 나타난 남자를 보았다. “대표님?” 임하나의 손목을 잡은 육현우는 생각보다 더 부드러운 촉감에 손에 더 힘을 주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으며 말했다. “왜 매번 절 보면 얼굴이 빨개져요?” 그의 말에 임하나는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 아뇨. 전... 전 그냥...” 더듬거리며 제대로 말도 못 하는 그녀를 육현우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임하나의 볼을 보며 육현우는 어쩐지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바람이 불자 육현우는 임하나의 독특한 향기를 맡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임하나를 잡아당겼고 그녀는 힘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임하나가 반응하기도 전에 육현우가 고개를 숙여 코를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댔다. “대표님!” 임하나가 눈을 크게 뜨며 숨을 들이켰다. 목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며 육현우의 코끝이 임하나의 목에 닿았다. 임하나는 당황하며 육현우를 밀치고 빗속을 뚫고 달렸다. 숙소에 도착하자 40분이 지난 뒤였다. 온몸이 젖은 임하나는 계단을 올라 키를 꺼내 문을 열려고 하던 찰나, 숙소 앞에 누군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임하나는 그 자리에 서서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육현우가 담배를 끄고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훤칠한 키의 육현우가 점점 가까워지자 임하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두 다리가 얼어붙기라도 하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갈라진 목소리로 상대를 부를 뿐이었다. “대표님.” 빗물이 그녀의 젖은 몸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며 바닥을 적셨다. 임하나는 빨개진 눈가를 하고 추운지 바들바들 떨었다. “왜 도망가요?” 육현우의 말투에는 화가 섞이지 않았다. 이렇게 작고 여린 여자 앞에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저 보호해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병원 입구에서 자신의 행동이 상대를 놀라게 했다는 생각에 육현우가 죄책감을 가지며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심했어요. 다른 뜻은 없고 방금 하나 씨한테 향수 냄새를 맡아서요... 그날 밤 하나 씨 맞죠?” 육현우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임하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임하나가 뒤로 물러나며 답했다.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육현우가 손을 내밀어 임하나가 더는 도망가지 못하게 그녀의 손목을 잡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워크숍이 있던 날 하나 씨가 제 텐트로 들어왔던 거 맞죠?” “저 아니에요...” 임하나가 부정했다. 그러자 육현우는 침묵하다가 침을 삼키며 물었다. “증명할 수 있겠어요?” 임하나는 눈을 크게 뜨더니 한참 지나 답했다. “좋아요!” 숙소의 문이 닫히고 실내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탁. 임하나가 테이블 조명을 밝히자 주위가 밝아졌다. 그녀는 천천히 돌아 옷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육현우는 문 뒤에서 임하나의 등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만약 그날 사랑을 나눴던 여자가 임하나라면 그녀의 몸에는 분명 흔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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