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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여보세요. 하나 씨, 좀 괜찮아졌어요?” 통화가 연결되자 이지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임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많이 좋아졌어요.” “아직도 열나요? 점심 드셨어요? 배고프지 않아요? 제가 배달 시켜줄까요? 아니면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제가 사갈까요?” 이지영의 관심에 임하나는 어리둥절했다. 친한 사이가 아닌데 이지영의 갑작스러운 관심이 조금 지나친 감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호의를 무시할 수는 없어 임하나는 하나하나 답했다. “열은 이제 내렸어요. 점심은 이미 먹었고 배 안 고파요. 배고프면 제가 알아서 배달시켜 먹을게요. 걱정 고마워요. 지영 씨.” “그래요...” 이지영이 잠시 침묵하더니 물었다. “그럼... 대표님도 아직 거기 있어요?” “가셨어요.” “그래요... 대표님이 특별히 하나 씨 보러 병원에 가신 건가요?” “아뇨.” 육현우의 할머니가 입원해 있다는 사실은 얘기하지 않았다. 육현우는 임하나의 사장이기 때문에 입 한 번 잘 못 놀렸다가 일에 지장이 가는 걸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지영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럼 대표님께서는 병원에 왜 가신 거래요?” “아마... 친구 보러 오셨을 거예요.” 임하나가 대충 둘러댔다. “대표님 친구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이지영이 끊임없이 묻자 임하나는 입술을 깨물더니 답했다. “정확한 건 저도 모르겠네요.” “그래요.” 이지영이 실망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나 저녁에 시간 있어요. 뭐 먹고 싶어요? 사 갈까요?” “괜찮아요. 저 저녁에 병원에서 안 지내요.” 임하나는 이지영의 열정이 부담스러워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렇군요. 그럼 푹 쉬어요. 일은 걱정 말고요. 제가 대신 처리해 줄게요.” “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동료 사이에 이런 것쯤이야. 그럼 쉬세요.” “네.” 전화를 끊고 이지영은 의자에 기대어 미간을 구긴 채 생각에 빠졌다. 그때 안은실이 의자를 밀고 와서 물었다. “너랑 실습생이 언제부터 그렇게 친해졌어? 밥까지 가져다줄 정도로?” 이지영이 손을 흔들었다. “불쌍해서 그러지.” “뭐가 불쌍한데?” 안은실이 물었다. “저런 사람 많이 봤어. 어린 나이를 무기로 회사에서 불쌍한 척이나 하고. 사람들의 동정심을 사서 일적으로 이득을 보겠다는 수작이야. 너한테나 먹히지 나한테는 턱도 없어.” 이지영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저녁에 병원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임하나가 링거를 다 맞자 어느새 오후 다섯 시가 되었다. 그녀는 원래 학교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육현우의 할머니가 홀로 병실에 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여 육현우가 오면 가려고 결정했다. 이내 병실 문이 열리며 임하은이 도시락을 들고 들어왔다. “언니? 여긴 어떻게 왔어?” 임하나가 몸을 일으키며 반가워하자 임하은이 우산을 구석에 놓으며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저녁 가져다주려고 왔지. 배고프지?” 도시락을 열자 모두 임하나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언니도 참.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데.” 집에서 병원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임하나는 언니가 자신을 위해 굳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으로 인해 언니와 형부가 싸우는 모습은 더욱 원치 않았다. 임하은은 그녀의 뜻을 알아채고 임하나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네 형부는 저녁에 회식이 있어. 비가 와서 나도 장사 안 하고. 혼자 집에서 심심해서 너 보러 왔지.” 임하나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녀는 휴지를 꺼내 임하은의 어깨에 묻은 빗방울을 닦아주었다. “참 좋네.” 이옥자는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손을 들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나도 언니가 있어. 이미 세상에 없지만. 너희 둘을 보니 나와 언니가 떠오르는구나. 만약 언니가 살아있다면 언니도 날 보러 왔겠지...” 이옥자의 말에 임하은과 임하나는 울적해졌다. 그때 임하은이 말했다. “할머니.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된대요. 할머니의 언니분은 분명 하늘에서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슬퍼하지 말아요. 할머니께서 슬퍼하는 모습을 결코 원치 않을 테니까요.” “그래.” 이옥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 나이 먹고 못 볼 꼴을 보였구나.” “괜찮아요.” 임하은이 말했다. “나이가 얼마나 됐든 사랑하는 사람은 존재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죽은 사람을 추억하는 것보다는 현재를 살아가야죠.” 이옥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임하은이 도시락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할머니. 아직 식사 안 하셨죠? 제 솜씨 한 번 맛보실래요?” 이옥자가 눈빛을 반짝이며 답했다. “좋아. 나도 막 배고프던 참이었어.” 그렇게 세 사람은 함께 식사를 했다. 한스 빌딩. 이지영은 업무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 육현우가 사무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걸으며 시계를 확인하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급해 보였다. 그때 이지영이 얼른 컴퓨터를 끄고 따라갔다. 밖에는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지영이 막 건물에서 나오자 육현우가 문 앞에서 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지영이 육현우에게 다가갔다. “대표님도 이제 퇴근하시나요?” 육현우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담담하게 답했다. “네.” 이지영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말했다. “젠장. 야근하느라 하나 씨한테 밥 가져다주는 걸 깜빡했네요.” 그녀의 말에 육현우가 고개를 돌려 이지영을 바라보았다. “뭐라고요?” “저녁에 하나 씨한테 가보려고 했거든요. 까먹었네요.” 이지영이 폰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비도 이렇게 오는데 택시도 안 잡히고.” 육현우가 물었다. “병원으로 가세요?” “네.” 이때 기사가 차를 몰고 두 사람의 앞에 멈췄다. 육현우가 말했다. “타요. 저도 마침 병원에 가는 길이라.” 이지영은 망설이지 않고 얼른 차에 탔다. 병실 문을 여니 방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부드러운 조명 아래 이옥자는 침대에 기대어 잠이 들었고 임하나는 침대 옆에서 엎드려 잠이 들었다. 볼륨이 낮은 티비 소리와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마치 자장가 같았다. “하나 씨...” 이지영이 막 임하나를 부르려던 찰나 육현우가 손을 들어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는 병실에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밖으로 나오며 병실 문을 닫았다. 이지영은 그의 뒤에서 의도를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대표님?” “하나 씨 오랜만에 깊게 잠들었어요. 깨우지 말아요.” 비록 병실 밖이었지만 육현우는 여전히 낮은 소리로 말했다. 목소리를 조금만 높여도 병실 안에서 잠든 사람을 깨우기라도 하듯 말이다. 이지영은 의아했다. 고작 하루 만에 육현우가 임하나를 이렇게 걱정하다니. ‘혹시 임하나의 비밀을 알았나?’ 하지만 곧 아니라고 확정을 지었다. 만약 육현우가 사실을 알았다면 이지영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육현우는 거짓말을 가장 싫어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지영을 차에 태워 병원까지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지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육현우는 이지영의 손에 들린 음식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만 가세요. 음식은 내가 대신 하나 씨한테 전달할게요.” 이지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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