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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셔츠가 벗겨지며 임하나의 맑은 등이 육현우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에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육현우는 이내 시선을 돌리며 낮은 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임하나는 침대에 있는 이불을 끌어다 몸에 두르며 억울한 눈빛으로 말했다. “대표님. 이제 믿으시겠어요?” “...” 육현우는 입을 벌려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얘기해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그는 떠나면서 2층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으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육현우의 머릿속에는 유약한 임하나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혼자 울고 있는 거 아냐?’ 육현우는 한승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여자애한테 줄 선물 하나 준비해. 정교한 걸로.” 육현우가 떠나고 임하나는 문을 잠그고 나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겉옷을 벗자 그녀의 가슴에는 옅어지긴 했지만 키스 마크가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등에는 원래 흔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약을 바르자 이내 사라졌다. 그게 바로 육현우가 방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 한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하나는 식은땀이 났다. 만약 육현우에게 들킨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몰랐다. 임하나는 다만 한스 그룹 내에서 사내 연애를 엄격하게 금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인 만큼 이번 일로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육현우가 알게 하지 않을 것이다! 빠르게 샤워를 마친 임하나는 잠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임하나는 아침 2인분을 사서 하나를 이옥자에게 주었다. 링거를 맞고 있는 도중 병실 문이 열렸다. 육현우인 줄로만 알고 고개를 숙여 폰을 하는 척했다. “할머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임하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육성재였다. ‘육현우와 육성재. 같은 성씨인 두 사람이 설마 가족 관계인 걸까?’ 임하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육성재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고 미처 시선을 피하지 못 한 임하나는 그대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옥자가 웃으며 소개했다. “여긴 임하나 씨야. 하나야. 여긴 내 다른 손자 육성재.” 이옥자는 간단하게 두 사람을 소개했다. 임하나는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는 시선을 핸드폰으로 옮겼다. 육성재는 의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이옥자가 검사를 받으러 갔고 육성재는 병실에서 누군가와 문자를 하고 있었다. 폰을 하던 임하나는 잠시 쉬려고 폰을 끄며 고개를 들다가 육성재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임하나는 그가 자신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는 착각이 들었다. 임하나가 시선을 피하려고 할 때 육성재가 입을 열었다. “너 출장 간다고 하지 않았어? 왜 병원에 있는 거야?” 임하나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폰을 들었지만 얼마 못 가 누군가에 의해 빼앗겼다. 임하나는 고개를 들어 병상 옆에 서있는 육성재를 향해 물었다. “볼 일 있어?” 육성재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왜 내 말에 대답 안 해?” 임하나가 입술을 깨물며 되물었다. “내가 왜 네 말에 답해야 하는데? 너는 지금 대체 무슨 신분으로 나한테 말을 거는 거야?” 육성재는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아직도 내 탓하고 있어?” “착각하지 마. 우린 이미 헤어졌어.” 임하나가 가볍게 답했다. “그래. 하지만 나한테도 해명할 권리는 있잖아?” 임하나는 말이 없었다. 육성재가 이어서 말했다. “나랑 소이현은 사고였어.” 임하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육성재는 그녀의 정수리를 보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책임을 회피하는 걸로 보인다는 걸 알아. 하지만 하나야. 네가 믿든 아니든 정말 단 한 번뿐이었어. 그날 이후 소이현을 건드린 적 없어.” “나도 그날 밤 일을 후회하고 있어. 하지만 이미 발생한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와 헤어지는 것뿐이야. 그게 너와 소이현을 책임지는 거라고. 알아?” 임하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마치 누군가 칼로 가슴을 찌르듯이 아팠다. 비록 이미 지나간 일이고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그날 밤 일은 큰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임하나는 육성재를 진심으로 좋아했었고 결혼을 목적으로 만났다. 그녀는 원래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면 주동적으로 육성재에게 결혼하자고 얘기할 계획이었다. 그런 일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로 말이다. 임하나는 울컥하며 눈물이 볼을 타고 이불에 떨어졌다. “하나야. 미안해...” 육성재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에 올렸다. 바로 이때 병실 문이 열리며 육현우가 등장했다. “형.” 육성재가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나며 임하나와의 거리를 벌렸다. 육현우가 임하나를 보다가 시선을 육성재에게 옮기며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할머니가 아프다고 들었어요. 엄마가 와 보라고 해서 왔죠.” 육성재가 답했다. “할머니는 봤어?” 육현우는 차가운 얼굴로 동생에게 말했다. “네.” 육현우가 안으로 들어오며 손에 있던 물건을 내려놓았다. 육성재가 아직도 멀뚱히 서있는 것을 보며 짜증이 섞인 얼굴로 물었다. “안 가?” 육성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아빠가 요즘 용산에 안 계세요. 형이 할머니 돌보는 게 벅차면 엄마한테 데려다줘도 좋다고 엄마가...” “필요 없어.” 육현우가 그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할머니 일은 다른 사람이 신경 쓸 필요 없어.” 병상에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팽팽했다. 결국 육성재가 시선을 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난 갈게요.” 육성재가 떠나고 나서야 임하나는 고개를 들어 육현우를 보았다. 기분이 언짢았던 탓인지 미간을 구기고 있는 육현우의 얼굴은 회사에서 볼 때보다 더욱 차가웠다. 육현우가 고개를 돌려 덤덤하게 물었다. “아는 사이에요?” 임하나는 무의식중에 부정하려고 했지만 육현우가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육현우는 더 묻지 않고 다가와 손에 든 물건을 건네며 말했다. “이건 하나 씨 드리는 거예요.” 잠시 말을 멈추다가 이었다. “보상이에요.” 어젯밤의 보상이었다. 임하나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등을 보여준 것뿐이다. 그건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별것 아닌 일이다. 그저 임하나의 소심한 성격과 불안한 그녀의 마음이 더해져 반응이 컸던 것뿐이었다. “받아요.” 육현우는 임하나가 또 놀랄까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씨가 거절하면 제가 마음이 불편해요.” 임하나가 뭐라고 얘기하려고 할 때 이옥자가 돌아왔다. 임하나는 병원에 3일을 입원해 있다가 넷째 날 퇴원 수속을 했다. 의사는 그녀가 집에 가서 먹을 약을 처방해 주며 제때에 약을 먹으라고 당부했다. 이옥자와 작별 인사를 할 때 이옥자는 아쉬워하며 임하나의 손을 꼭 잡고 놓칠 않았다. 그 모습에 임하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육현우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하나 씨 저희 회사 직원이에요. 보고 싶으시면 언제든 회사로 오세요.” “정말이니?” “네.” 육현우와 약속하고 나서야 이옥자는 임하나의 손을 놓았다. 병원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육현우는 그녀에게 반차를 내주며 푹 쉬고 내일 회사로 출근하라고 했다. 숙소에 도착한 임하나는 소이현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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