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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삼촌은 똑똑하고 또 냉철한 사람이라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여자쯤은 쉽게 판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강현수는 강재하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내 안심하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나랑 권해솔이 7년이나 연애한 건 삼촌도 잘 알고 있죠? 내가 그 7년 동안 권해솔을 옆에서 지켜보며 하나 알게 된 게 있는데 권해솔은 겉보기에만 순진하지 실상은 꼬리를 숨기고 있는 간악한 여우가 따로 없어요. 삼촌한테 접근한 것도 분명히 자기한테 득이 될 게 있어서 그런 걸 테니까 절대 속지 마세요.” 그 말에 강재하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권해솔 씨가 나를 꼬시고 있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뭐야, 저 즐겁다는 웃음은...’ 강현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한번 바라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권해솔이 나 좋다고 미친 듯이 쫓아다니지만 않았어도 그런 여자랑 7년이나 사귀지는 않았을 거예요.” 강현수는 마치 권해솔 때문에 자신의 7년이 허무하게 낭비된 사람처럼 굴었다. 자기도 좋다고 사귀었던 주제에 말이다. 강재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옆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발차기가 날라오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강현수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강현수를 날려버린 건 다름 아닌 손세준이었다. “강현수, 성인이면 성인답게 책임질 수 있는 말만 내뱉어야지.” 강재하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천천히 강현수에게로 다가갔다. “거짓말 아니에요, 삼촌!” 강현수는 한번 맞고도 여전히 정신을 못차렸다. 이에 강재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강현수의 가슴팍을 발로 짓눌렀다. 힘을 얼마나 세게 줬는지 강현수는 이대로 갈비뼈가 다 부러질 것만 같았다. “이제 지금 뭐 하는...! 강재하!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강현수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고도 강재하는 좀처럼 발을 거두어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강현수의 아버지인 강석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 나 좀 살려주세요!” 강현수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며 살려달라 외쳤다. 그런데 강석호는 아들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살려달라는데도 마치 남 보듯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혀를 끌끌 차더니 다시 발걸음을 돌려버렸다. 권해솔은 그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했던 며느릿감이었기에 지금은 강현수가 당하는 게 꼴 좋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르신, 이러다 도련님 정말 죽겠어요!” 집사가 강현수를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재하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자네는 혹여라도 끼어들 생각하지 마!” 강재하는 강현수의 의식이 완전히 날아가기 직전에야 발을 거두어들였다. 그러고는 연신 기침을 해대는 그를 향해 음산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그딴 헛소리 지껄여봐. 그때는 이 정도로 안 끝내.” 강현수는 시간이 꽤 지나고서야 죽을 뻔한 공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그는 부러질 뻔했던 갈비뼈를 매만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근데 이럴 일이야 이게...? 고작 권해솔 흉 좀 봤다고?” 밖으로 나온 손세준은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거리며 말했다. “대표님, 차라리 갈비뼈 좀 부러트리지 그러셨어요. 저런 식으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간들은 싹을 잘라놔야 해요! 다시는 안 그러게!” 강재하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손세준도 금세 분위기를 파악하고 운전석에 올랐다. 그 시각, 권해솔은 베란다의 흔들의자에 앉은 채 저무는 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권설아와 강현수 사이의 일이 없었다면 내일은 그녀와 강현수의 결혼식이었을 것이다. 7년간의 사랑을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으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도 넘치는 사랑을 줬는데도 강현수는 아주 손쉽게 그녀를 버렸고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섰다. 심지어 전 연인에 대한 예의조차 없이 결혼식 당일에 신부를 바꾸려는 엄청난 짓을 꾸미려고까지 했다. 강현수는 정말 끝까지 쓰레기였다. “그래도 다행이야. 더 최악을 보기 전에 알게 돼서...” 권해솔은 날이 어두워지자 다시 침대로 돌아와 그대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권해솔, 빨리 일어나!” 아침 댓바람부터 정채영이 쳐들어와 권해솔을 깨웠다. “권설아가 대놓고 널 도발하려 드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너 오늘 안 가면 지는 거라고!” 권해솔은 그녀의 잔소리 공격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다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에너지와 시간을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쏟고 싶지 않았다. “안 일어날 거야? 좋아. 그럼 어디...” 권해솔은 정채영의 발바닥 간지럽히기 공격에 눈을 번쩍 떴다. “아, 알았어! 하하하, 가면 되잖아!” 항복한 권해솔은 정채영의 독촉 아래 새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솔아, 너 진짜 너무 예쁘다. 너랑 너무 잘 어울려!” 정채영의 가지고 온 드레스는 그녀의 어머니인 한영애가 디자인해준 드레스였다. “네가 이모한테 따로 부탁한 거지? 그러지 말라니까...” 권해솔은 말을 그렇게 했지만 드레스가 너무 예뻐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야. 이건 엄마가 너 결혼한다고 했을 때부터 준비했던 이브닝드레스야.” “이모한테는 내가 따로 감사 인사 드릴게.” “그래. 네가 드레스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 걸 알면 아마 엄청 좋아할 거야.” 단장을 마친 후 두 사람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집에서 나왔다. 아래로 내려와 보니 임유승이 차에 앉은 채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두 사람도 같이 가게?” 권해솔이 묻자 임유승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채영이가 너 혼자 갔다가 괴롭힘당하면 안 된다고 같이 가재.” 어쩐지 표정이 밝다 했더니 정채영과 함께라서 기쁜 것이었다. 권해솔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친구들 때문에 든든한지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식장 입구. “죄송합니다만 청첩장이 없으신 분은 입장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직원이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우리가 무슨 깽판 치러 온 사람들도 아니고 축하해주겠다는데 그래도 안 돼요? 축의금도 두둑이 준비해왔다니까요?” 정채영이 두꺼운 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권해솔은 안 되겠는지 임유승과 정채영을 데리고 다시 차량 쪽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권설아가 단단히 얘기해둔 것 같아. 내가 도움 필요하면 전화할 테니까 두 사람은 여기서 나 기다려줘.” 지금으로서는 권해솔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대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괜히 무리하지 말고!” “응, 알았어.” 정채영은 권해솔이 어떤 성격인지 알고 있기에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은 예전의 권해솔이 아니니까.” 임유승은 멀어져가는 권해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채영을 안심시켰다. “제발 그래야 할 텐데...” 식장 안으로 들어온 권해솔은 웅장한 분위기에 바로 압도당해버렸다. “이건 뭐 결혼식이 아니라 꼭 비즈니스 파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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