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방 안은 다시금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이번엔 단순한 조용함이 아니었다. 공기 속에 애매하고 복잡한 기류가 어른거렸고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양지안은 할아버지가 가짜 결혼 사실을 알게 되어 화를 내실까 걱정한 나머지 조급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차라리 땅속으로 숨고 싶을 정도였다. 부끄러움에 그녀의 귀는 붉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피가 날 듯했고 진태웅의 눈을 바라보는 것도 두려웠다. “다들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어서 밥 먹자. 아버님도 좀 드세요. 지안아, 이건 태웅이가 너한테 특별히 끓여준 국이야. 네 입맛에 맞을 거야.” 은미숙은 눈가에 웃음을 담은 채 말을 이어가며 딸을 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마!” 양지안이 투덜거리자 은미숙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어. 이제 입 다물 테니까 어서 밥 먹어.” 은미숙은 그동안 양정국의 완고한 결혼 강요가 딸에게 상처가 될까 걱정했지만 오늘을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딸은 자기 힘으로 마음의 문을 열었고 결국 진심을 드러냈으며 양정국도 그걸 이해해 주는 듯했다. 앞으로 딸과 진태웅이 잘 이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최고의 결과일 것이다. 그 점에서 은미숙은 더 이상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여자가 한 남자를 마음에 품는 순간, 그를 좇는 일쯤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딸은 그럴 만한 매력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 “아줌마, 저 혼자 택시 타고 갈게요. 일부러 배웅하실 필요는 없어요.” 진태웅은 집을 나서며 은미숙에게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고 떠나기 전까지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 식사는 고작 삼십 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태웅에게는 마치 긴 하루처럼 느껴졌다. 처음 서로 만났을 땐 상황이 전혀 달랐다. 그때는 모두 거짓이었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고 행동도 자유로웠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 자리의 무게와 분위기가 달라진 만큼 많이 부담스러웠다. 특히 은미숙이 내내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