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너...”
손윤서는 화가 나서 그녀를 때리려 했다.
진태웅은 조용히 손윤서를 바라보며 눈빛에 마지막 남은 슬픔을 담았다.
“결혼한 지 3년, 난 네가 나를 충분히 이해해줄 거로 생각했는데 네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보네. 넌 심지어 내 변명을 듣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 아니면, 어쩌면 내가 네 진짜 모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건지도. 그건 우리가 정말 안 맞았다는 증거겠지.”
이 말을 하며 진태웅의 시선은 그녀 뒤에 서 있는 정장 차림의 청년에게로 고정되었다.
“최근 많은 소문을 들었어. 네가 이 자식과 쌍으로 다닌다는 얘기 말이야. 우리 이혼도 이 자식이 이유 중 하나겠지. 맞아?”
“그래.”
손윤서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정장 청년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기소개하죠. 내 이름은 신우빈, 신화그룹의 대표예요. 윤서 회사의 상장 예정 투자자이기도 하죠.”
진태웅의 가슴 속이 따끔하게 아렸지만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알겠어. 행복하게 잘 살아.”
그는 손윤서의 목 부위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옥패는 돌려줘. 내 부모님의 정표이니 네가 차고 있을 자격 없어.”
손윤서는 목에서 옥패를 풀어 건네주더니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진태웅 씨, 당신이 자진해서 재산 분할을 포기했지만 난 그렇게 모진 사람은 아니에요. 이 카드에 십억이 들어있는데 작은 도시로 가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예요.”
“보상이야?”
진태웅은 입가에 비웃음을 흘렸다.
“손윤서, 네가 내게 빚진 건 이 따위 십억으로 갚을 수 있을 정도로 적지 않아. 그래도 고마워.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까. 이제부터는 진짜 나 자신으로 살 거야.”
이 말을 남기고 진태웅은 카드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
손수진이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손윤서가 협박하듯 말했다.
“너 거기 서! 오늘 이 문을 넘어가기만 해봐. 대학 생활비 모조리 끊어버릴 거야!”
손수진은 눈에 눈물이 맺히며 울먹였다.
“언니... 언니는 형부를 버린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진태웅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손윤서의 마음에는 자유를 얻은 기쁨 대신 허전함만 가득했고 마치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서서히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
손씨 저택을 나선 진태웅은 자신을 비웃으며 생각했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손윤서에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끝나다니.'
하지만 그는 원래 깔끔한 성격이었다. 이제 서로 연관이 없다면 각자 잘 살면 그만이었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며 진태웅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닥쳐!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전화 너머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가문은 백록시의 명문가인데 어쩌다 너 같은 망나니가 태어났는지 모르겠구나. 백조 가치의 가업을 버려두고 산에 올라가서 무슨 한의학이나 배우겠다니.”
“네 누나를 좀 봐. 젊은 나이에 소장이 됐고, 다른 누나는 신형 핵탄도 개발했는데...너는 대체 평범한 집안에 배경 하나 없는 여자와 결혼을 해? 진씨 가문의 체면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구나. 할아버지께서 너 때문에 화가 나 돌아가기 직전이야!”
“이미 이혼했어요.”
진태웅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처음부터 가문의 어르신들은 손윤서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진태웅이 신분을 버린 것이 가문에 먹칠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이혼 소식을 들었으니 환호라도 지를 것이다.
“뭐라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잘했어,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그럼 당장 돌아와서 가문의 안배를 따라.”
“아버지, 전 당분간 돌아갈 생각 없어요.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요.”
진태웅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알겠다. 3개월만 더 기다려주마. 3개월 뒤면 네 할아버지 팔순 잔치이니 반드시 와서 축수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말인데, 네 할아버지의 옛 전우가 강주에 살고 계신대. 지금 중병에 걸려 곧 별세하실 것 같은데 할아버님께서는 네가 가서 뵙기를 바라셔.”
“그런데 그 할아버지에게는 예쁜 손녀가 한 명 있더구나. 너와 어렸을 때 약혼까지 했던 사이던데 이혼도 했으니 한번 만나보는 건 어때?”
진태웅은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
“할아버지 전우님의 병은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사람을 보내 저 데리러 오도록 해요. 됐어요. 이만 끊을게요.”
...
진태웅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장모 오향은과 처남 손민준이 눈앞에 서 있었다.
오향은은 진태웅이 크고 작은 짐을 든 모습을 보자마자 허리에 손을 얹으며 길을 막았다.
“진태웅, 우리 딸과 이혼했으면서 우리 집 물건까지 챙겨가려는 거야?”
“어머님, 제가 윤서와 이혼한 걸 다 알고 계셨군요?”
진태웅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머님이라고 부르지 마! 듣기 싫어.”
오향은은 진태웅을 혐오스럽게 바라보며 거들먹거렸다.
“솔직히 말해줄게. 내가 우리 딸에게 너랑 이혼하라고 종용한 거야. 네 놈이 어떤 쓰레기인지 좀 봐야지. 너 같은 쓰레기가 우리 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우리 딸은 지금 상장 예정인 회사의 CEO로 억대 자산가야!”
이 말을 듣고 진태웅은 할 말을 잃었다. 손씨 가족의 냉담함에 그의 마음은 완전히 식어버렸다.
처남 손민준이 비웃듯 말했다.
“진태웅, 우리 누나가 준 이혼 위자료 내놔요. 안 그럼 오늘 여기서 못 나갈 줄 알아요!”
“난 네 누나의 위자료는 받지 않았어. 단 한 푼도.”
진태웅이 냉랭하게 대답했다.
“개소리 집어치워! 우리를 세 살 난 애들로 알아? 그런 거짓말이 통할 것 같아? 어서 돈 내놔. 그 돈은 우리 손씨 가문의 것이지 너랑은 상관없어.”
오향은은 사납게 소리치며 진태웅의 가방을 낚아챘다.
“네가 안 주겠다면 우리가 직접 찾아볼 거야!”
모자는 거칠게 진태웅의 가방을 열어 뒤졌지만 안타깝게도 단 한 푼도 찾지 못했다.
진태웅은 분노를 꾹 참으며 그들이 뒤지도록 내버려 두며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렸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개처럼 고생하며 그들을 모셨는데... 개도 이렇게는 안 다룰 것이다.
그는 손윤서에게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지만 설령 받았다 해도 당연한 일이었다.
“찾았다! 엄마, 이거 봐요!”
갑자기 손민준이 진태웅의 상자에 넣어둔 그 옥패를 꺼내 들었다.
오향은은 옥패를 흘겨보며 비웃듯 말했다.
“이거 그 쓰레기가 윤서에게 줬던 옥패 아니야? 도로 가져왔네?”
“맞아요! 진태웅 씨, 이거 누나에게 줬으면 이제 우리 손 집안 물건인데 왜 도로 가져가요?”
진태웅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그건 우리 가문의 대물림 유품이니 당장 내놔.”
“쓰레기에게 줄 게 뭐 있어요?”
손민준이 욕설을 퍼부으며 옥패를 진태웅에게 던졌다.
“이 망할 자식이!”
진태웅은 옥패를 잡은 후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앞으로 나가 손민준의 뺨을 후려쳤다.
강력한 한 대에 손민준은 그 자리에서 나자빠졌다.
이 상황을 지켜본 오향은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살인이야! 어서 사람들 좀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