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분홍빛 방 안, 진태웅은 손수진에게 은침을 꽂아주며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치료 중이니까 함부로 소리 지르지 마. 사람들이 들으면 안 좋아.”
조금 전, 손수진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더니 통증으로 기절해 버렸다. 마침 의술에 능한 진태웅이 그녀를 방으로 안고 들어가 치료를 시작한 참이었다.
“수진아,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자궁 냉증에 걸렸어. 이대로 내버려 두면 나중에 불임이 될 수도 있어.”
진태웅이 말을 마치며 손에 든 은침을 손수진의 배꼽 아래 3치 떨어진 관원혈에 꽂았다.
“후우...”
손수진은 순간적으로 배 안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까의 고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마치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형부, 진짜 배 안 아파요. 너무 대단해요.”
손수진은 홀릴 듯한 눈빛으로 진태웅을 우러러보며 노출된 자신의 매혹적인 몸을 완전히 잊은 듯했다.
진태웅은 급히 몸을 돌려 그녀에게 등을 보이며 말했다.
“수진아, 일단 옷부터 입어.”
손수진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형부, 언니랑 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부끄러워하다니... 설마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건드린 건 아니죠?”
진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옷을 다 입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수진아, 나는 이미 네 언니 손윤서와 이혼했어...”
“네?”
손수진은 벌떡 일어나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형부, 장난하는 거죠?”
“장난이 아니야.”
진태웅은 고개를 저으며 몸에 지닌 서류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나와 네 언니의 이혼합의서인데 보면 알 거야.”
손수진은 이혼합의서를 겨우 다 읽고 난 후, 예쁜 얼굴에 경악이 가득했다가 곧 분노로 변했다.
‘형부는 언니를 정말 사랑하는데 절대 언니와 이혼할 리가 없어. 그렇다면 이건 분명 언니가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한 것이야.’
지난 3년 동안 형부가 언니에게 해준 일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형부가 집에 들어온 이후로 빨래, 요리, 집안일을 모두 원망 없이 묵묵히 도맡아 했다.
언니가 퇴근할 때 폭우가 내리면 형부는 우산을 들고 언니의 회사 앞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
언니가 열날 때는 형부가 약을 달여 주고 밤새도록 언니의 침대 맡에서 지켰다.
언니가 찐빵을 좋아한다고 해서 형부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달려가서 사 왔다.
말 그대로 형부는 언니를 공주님처럼 아낌없이 사랑했고 조금도 미안한 짓을 한 적이 없었다.
바로 형부가 원망 없이 묵묵히 헌신했기 때문에 언니가 모든 정력을 사업에 쏟을 수 있었고, 불과 5년 만에 상장을 앞둔 회사 대표가 될 수 있었다.
가끔 손수진은 자기 언니가 어떻게 저렇게 좋은 남편을 만났는지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예상치 못한 것은 언니가 겨우 성과를 내자마자 배은망덕하게도 형부와 이혼을 해버린 것이었다。
“형부, 제가 당장 언니한테 물어볼게요...”
손수진은 화가 나서 바로 전화를 걸려 했다.
“됐어.”
진태웅은 그녀를 말리며 자신을 비웃듯 말했다.
“네 언니는 내가 3년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무능력자라며,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쓰레기라고 했어. 인정하자. 좋게 끝내야지.”
전처 손윤서는 야망이 강한 여성으로, 꿈이 상장 기업을 창업하는 것이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던 진태웅은 결혼 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묵묵히 집안을 지키는 홈스테이 남편이 되기로 하고 손윤서가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뒤에서 든든히 버텨주었다.
그런데도 3년 동안 손윤서의 회사가 수많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진태웅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해줬다.
하지만 이제 회사가 막 상장을 앞두고 있는데 정작 손윤서는 그와 이혼을 선언했다. 이유는 진태웅은 야망이 없고 게으르기만 한 무능력자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를 아무 쓸모 없는 쓰레기라고 매도했다.
이혼 서류에 서명한 후 진태웅은 자신의 물건을 챙겨 나가려고 했는데, 마침 손수진이 자궁 냉증으로 고통받는 걸 발견하고 방금 그 치료를 해준 것이었다.
손수진은 더는 참을 수 없었고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였다.
“형부는 쓰레기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내 눈엔 형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자예요. 언니는 정말 눈이 먼 거예요... 형부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다니.”
“수진아, 이젠 갈게. 앞으로는 네 언니 말 잘 듣고 나 같은 외부인 때문에 자매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게 해.”
전처 손윤서와 똑같은 손수진의 그 얼굴을 바라보며 진태웅은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져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를 떠나려 했다.
“형부... 떠나지 말아요.”
갑자기 손수진이 달려들더니 진태웅의 목을 꽉 끌어안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말했다.
“형부, 나... 형부를 좋아해요. 이 말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뒀었어요. 이제 두 사람이 이혼했으니 나도 더는 마음의 부담 없어요. 형부, 날 가져줘요. 어차피 나랑 언니는 쌍둥이니까 똑같잖아요. 내가 언니 대신 형부를 잘 보상해줄게요...”
말을 마치며 그녀는 마치 유혹적인 체리처럼 붉은 입술을 감빨더니 진태웅에게 다가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진태웅은 그녀에게 꽉 잡힌 채 두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수진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처음부터 끝까지 너를 여동생으로만 봤어. 빨리 놓아줘. 누가 보면 안 좋아.”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태웅 씨... 지금 무슨 짓이에요?”
연한 블랙 톤의 세련된 정장을 입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한 여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가을 호수처럼 맑으면서도 새겨진 듯한 이목구비는 빙산처럼 차갑고 고급스러워 마주보기조차 어려운 기품을 풍겼다.
진태웅의 전처 손윤서였다.
그리고 손윤서 뒤에는 정장을 차려입고 귀족적인 품격이 느껴지는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윤서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니야. 설명할게...”
“닥쳐요!”
손윤서의 얼굴은 마치 얼음처럼 식어버린 상태였는데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진태웅 씨, 당신이 이런 인간일 줄은 몰랐어요. 내 동생이 아직 어린데... 그 애까지 건드리다니. 당신은 인간도 아니네요.”
그녀 뒤에 서 있던 정장 청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윤서야, 사람은 겉만 보고 속을 알 수 없다더니. 이제야 완전히 마음을 접겠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진태웅을 바라보는 손윤서의 눈빛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이혼할 때만 해도 내심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완전히 쓰레기 같은 놈이었어요. 진짜 개자식이네요.”
손수진은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진태웅 앞을 가로막았다.
“됐어, 언니. 형부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형부 탓이 아니라 내가 먼저 유혹한 거야. 형부랑은 상관없어. 게다가 언니는 이미 이혼했잖아. 그럼 형부가 나랑 사귀면 어때? 어느 법을 어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