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친부모에게 쫓아낸 강가을이 강성 그룹 저택에 있을 거라곤 상상치도 못한 백수영은 순간 입까지 떡 벌렸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곁에 서 있는 아주머니를 발견하곤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여자가 친모인 모양이네. 여기서 아줌마로 일하는 건가? 하긴 시골 출신이 무슨 수로 좋은 직장을 찾겠어. 이런 부잣집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이렇게 생각하는 건 한여름도 마찬가지였다.
“언니.”
속으론 쌤통이다 싶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여름이 말했다.
“가족이 이 저택에서 일하는구나. 여기 사는 사람들 강성 그룹 오너가인 건 알지? 괜히 아무 물건이나 만지지 마. 큰일 나니까.”
그들을 안내하던 집사가 바로 해명하려 했지만 강가을이 먼저 선수를 쳤다.
“남의 일에 상관말고 갈 길 가시지?”
그리고 그녀의 맑은 눈은 한여름의 등 뒤를 향했다. 몸에 찰싹 붙은 회색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내가 너라면 얌전히 집에 있었을 텐데. 이렇게 싸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집에는 그전에 그녀가 써둔 부적이 있으니 잡귀는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집을 떠난 이상 한여름은 잡귀들의 뷔페나 마찬가지였다.
‘저게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려!’
화가 잔뜩 난 백수영이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이곳은 강씨 가문 저택이고 집사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곤 겨우 화를 억눌렀다.
“여름아, 너도 사람이 너무 착하면 안 돼. 저런 애들 상종해 봤자 화만 난다니까.”
그리고 집사를 향해 설명을 이어갔다.
“우스운 꼴을 보였네요. 저 아이는 저희 집에서 입양했던 아이인데 힘들게 키워놨더니 지기 친부모를 찾았다고 바로 집을 나가지 뭐예요. 저희 집에서도 사고뭉치였는데 저희는 사랑으로 감싸안았지만 이 집에서 지내는 게 정말 맞을지 모르겠네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는 백수영은 어떻게든 강씨 가문 저택에서 강가을을 쫓아낼 생각뿐이었다.
한편, 그녀의 말에 집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분이 우리 아가씨라는 걸 모르는 건가? 내 앞에서 이렇게 아가씨를 모욕할 정도라면... 그 동안 어떻게 살아오셨을지 안 봐도 뻔하군.’
이에 두 사람을 귀빈으로 모시던 집사의 태도가 급격하게 차가워졌지만 백수영은 집사가 자신의 말을 이해한 것으로 착각하곤 코웃음을 쳤다.
‘한가을, 넌 결국 여기서도 쫓겨나게 될 거야. 그러고도 그렇게 잘난척할 수 있을지 두고 보겠어. 그리고 홍보대사는... 강성 그룹 인맥을 잡았으니 인사만 제대로 하면 바로 빼앗을 수 있어.’
같은 시각, 아주머니는 백수영과 한여름이 등장한 뒤로 숨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너가의 손님에게 함부로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분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하신 것 같던데. 이분은 강성 그룹 장남의 딸이라고.’
집사 역시 참다 못해 입을 열었다.
“사모님, 아가씨, 두 분...”
바로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통화를 마친 강현우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강현우를 발견한 순간 한여름은 두 눈을 반짝였고 백수영 역시 만족스러운 눈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커프스 단추와 시계만 해도 십 억이 넘어. 이 집안 도련님일 테지.’
진지한 얼굴의 집사는 설명하려던 순간, 강가을 대신 대답을 하는 건 예의를 아닌 것 같이 입을 다물었다.
한편, 강가을은 방금 전 거실에서 그녀의 편을 들어준 강현우에게 경계가 완전히 풀린 건지 그대로 방금 전 상황을 고자질했다.
“아, 이 두 사람이 날 괴롭혔어요.”
깔끔한 한 마디에 분위기가 기이할 정도로 가라앉았다.
“얘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정신을 차린 백수영은 강가을의 따귀를 날리기 위해 손을 높게 들었다.
방금 전까지 동생의 말에 흥미로움을 느끼던 강현우가 깜짝 놀라 앞으로 나서려던 순간, 강가을이 먼저 백수영의 손목을 잡았다.
이에 가장 놀란 건 아마 백수영일 것이다.
‘이게 날 막아?’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저 가는 팔목에서 무슨 힘이 그렇게 나오는지 아무리 애를 써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백수영의 손목을 움켜쥔 강가을이 말했다.
“저 이제 당신 딸 아니에요. 욕 먹고 있을 이유도 맞을 이유도 없어요.”
그리고 그녀는 바로 손에 힘을 풀어버렸고 갑자기 중심을 잃은 백수영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엄마!”
깜짝 놀란 한여름은 겨우 그녀를 부축하곤 어이 없다는 얼굴로 강가을을 노려보았다.
“언니!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언니를 키운 건 엄마야! 어떻게 엄마를 때릴 수가 있어! 해도해도 너무하네!”
놀라긴 했지만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는 한여름이었다.
자기 양부모에게 손을 댈 인품이라면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신뢰가 담길 리가 없으니까.
한편, 한여름의 지긋지긋한 연기에 이미 진절머리가 난 강가을은 바로 맞받아쳤다.
“내가 언제 때렸어? 너야말로 함부로 말하지 마.”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현우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실렸다.
‘과묵하고 얌전한 성격인 줄만 알았더니 보통이 아니잖아? 역시 내 동생다워.’
같은 시각, 백수영은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거지? 그리고 날 막아?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감히...’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 백수영은 이곳이 강씨 가문 저택이라는 것도 잊은 채 강가을에게 달려들었다.
“너 오늘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강가을이 무표정한 얼굴로 일그러진 백수영의 표정을 구경하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탄탄한 등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졌다.
방금 전까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강현우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여긴 강씨 가문 저택입니다. 아무나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