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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어떡하지...” 김희영이 유채린과 유하연을 번갈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엄마 친딸은 나예요. 나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유채린이 김희영의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트리자 김희영은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아 얼른 유채린을 안고 부드럽게 다독였다.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진 유하연은 원래도 몸이 좋지 않았기에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하인들도 조롱이 섞인 냉정한 눈빛으로 구경할 뿐 부축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건 인간의 본성이었다. 유해연은 유씨 가문에서 하인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유하연이 테이블을 집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무니없는 소리.” 유하연은 이렇게 꾹 참다가 경진시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역학박사? 이리저리 돈이나 뜯어내는 사기꾼 아니고? 그런 사람이 한 말 때문에 나더러 경진시를 떠나라는 건 너무 황당한 소리 아니야?” “그래서? 그 말을 하는 저의가 뭔데?” 유하연이 반박하자 유채린이 발끈하며 김희영의 품에서 고개를 들더니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유하연을 쏘아봤다. “네가 내 운을 빨아먹은 게 아니라면 내 자녀 복이 왜 갑자기 없어져?” “내가 누려야 할 것들을 네가 점한 거니까 내가 이렇게 힘든 거 아니야.” “그런 거 다 미신이야.” 유하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내가 너의 신분을 잠깐 점한 건 맞지만 그건 병원의 실수로...” “억울한 척하지 마.” 유채린은 말로 유하연을 이길 수 없자 바로 달려들어 귀싸대기를 힘껏 내리쳤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고개가 돌아간 유하연은 입가에 피가 새어 나왔다. “다 네 탓이야. 역학박사 말이 틀릴 리가 있어?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나는 정말...” “엄마...” 유채린이 아랫배를 부여잡고 숨이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울먹였다. “아이에게 무슨 일 생기면 나도 확 같이 죽어버릴 거예요.” 김희영은 유채린이 심윤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자기보다 아이를 더 챙기는 유채린을 보며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연아.” 김희영이 어두운 표정으로 실망한 티를 냈다. “채린이 박사님 말을 듣고 슬퍼하는 건 알면서 좀 양보하면 안 되니? 왜 애를 자꾸만 자극하는 거야?” “점점 더 막 나가는구나.” 김희영의 질책에 유하연은 코끝이 찡했고 솟구쳐 올라오는 서러움을 겨우 참아냈다. 유채린과의 말다툼에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김희영의 이유 없는 편애는 당해낼 힘이 없었다. 마음이 기울면 눈도 따라서 기울기 마련이었기에 유채린이 이유 없이 괴롭혀도 김희영의 눈엔 유하연의 잘못이 되었다. 유하연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고개를 숙인 채 고집스럽게 말했다. “엄마, 난 그런 적 없어요.” “그런 적 없긴.” 유하연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자 화가 난 김희영이 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서 잘 반성하고 잘못한 게 뭔지 알거든 그때 다시 들어와.” 유하연은 김희영의 품에 안겨 그녀를 도발하는 유채린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아무 말 없이 현관으로 향했다. 밤이라 바람이 쌀쌀했는데 옷까지 얇아 바람을 맞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지만 그러든 말든 등 뒤로 현관문이 굳게 닫혔다. 까마득한 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유하연은 너무 보잘것없어 당장이라도 어둠의 장막에 집어삼켜질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전조등이 앞을 환하게 비춰서야 유하연은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손발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차가웠고 전조등이 너무 밝아 자기도 모르게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까만 그리든이 유하연 앞에 천천히 멈춰서더니 까만 슈트를 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유하연은 이렇게 늦은 시간에 본가로 돌아온 유도경이 약간 의외였다. 정식으로 유안 그룹을 맡아 관리하는 유도경은 일이 바빠 회사에서 먹고 자는 게 일상이었고 특히 최근 3년은 공휴일을 빼고는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야에 까만 구두가 들어와도 유하연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핑크빛 입술을 꼭 다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아마 지금 유도경의 눈에 유하연은 못 생기고 더러워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처참해 보일 것이다. 굳게 닫혔던 현관문이 열리자 김희영은 유도경이 돌아온 걸 알고 특별히 현관까지 마중 나왔다가 추위에 굳어버린 유하연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하연아, 아직도 잘못한 게 뭔지 모르겠어?” 유하연은 이런 상황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고집이 올라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얘가 정말.” 김희영은 화가 나면서도 유하연이 불쌍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착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철이 없어.” ‘착하다고?’ 유하연은 마음이 씁쓸해졌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는 늘 착해야만 했다. “무슨 일이에요?” 유도경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밤도 유도경의 눈빛보다는 따듯할 것 같았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는 마치 낯선 사람 같았다. 유도경이 언짢은 눈빛으로 유하연을 쏘아봤지만 유하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김희영은 유채린과 유하연이 어쩌다 싸우게 됐는지 유도경에게 들려줬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요?” 유도경이 뭔가 생각났는지 눈빛이 흔들리더니 느긋하게 물었다. 유도경의 시선을 느낀 유하연은 마치 맹수의 레이더에 걸린 것처럼 등골이 오싹했고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이렇게 불안해 본 건 오랜만이었다. “나는 채린이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뜸을 들이던 김희영은 결국 친딸인 유채린 편을 들기로 마음먹었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채린이랑 하연이의 사주가 확실히 상극인 것 같아. 두 사람이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어.” “박사님이 한 말이 걱정되기도 하고.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채린이가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연이는...” 유하연은 누군가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속이 답답했다. 유채린을 위해서라면 결국 김희영에게 버려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실제로 들으니 심장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너무 아팠다. “외국으로 연수 보내요.” 유도경이 김희영의 말을 이으며 말했다. “엄마는 아무 걱정하지 마요.” 이 말에 김희영이 드디어 웃음을 보였다. “그것도 좋지. 안 그래도 하연이를 외국으로 연수보내려고 했었는데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서 미뤄진 거잖아.” 유하연이 경진시를 떠나서 성장할 수 있다면 유하연에게도 좋은 일이었기에 김희영이 매우 흡족했지만 유하연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놀란 표정으로 유도경을 바라봤다. 유도경의 위험한 눈빛과 마주친 유하연은 당장이라도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까만 눈동자속에 담긴 위험한 물결은 유하연에게만 보였는데 자칫 잘못하면 그녀를 완전히 삼켜버릴 것 같았다. “안 돼.” 유하연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만약 유도경에 의해 외국으로 보내진다면 유하연은 영원히 유도경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 미친 남자의 노리개가 될 것이기에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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