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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17번이 깨어났을 때 강이서는 옆에 앉아서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 “깨어났네. 또 아픈 곳은 없어?” 강이서의 목소리는 깃털로 귓가를 간지럽히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강이서가 등지고 있는 어항에는 붉은 눈을 한 군소 인간이 수조에 매달려서 응시하고 있었다. 군소 인간은 강이서의 관심을 받으려고 했다. 하얀 팔을 수면 위로 내밀었고 강이서를 향해 뻗었지만 강이서의 시선은 17번을 향해있었고 뒤에 있는 군소 인간을 신경 쓰지 않았다. 17번은 유리 수조에 기대어 있었다. 그러고는 상처 입은 촉수를 강이서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차가운 연고가 손끝에서 번지면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문어 인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가느다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문어 인간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게 다치면 강이서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고 독차지할 수 있었다. 문어 인간은 상체를 일으켜서 잘생긴 얼굴을 강이서의 손에 갖다 댔다. 새로 자란 촉수로 조심스럽게 옷깃을 잡아당겼다. 강이서를 감싸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꿈꾸는 것 같았다. 이것은 냉혈 동물의 애정 표현 방식 중 하나였다. 강이서는 문어 인간의 이마에 붙은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인간을 초월한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고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 입 벌려.” 17번은 순순히 입을 벌렸다. 강이서는 사탕 한 알을 먹였다. “얼른 먹어 봐.” 강이서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어때?” 문어 인간은 웃을 줄 몰랐고 행복하다고 표현할 줄 몰랐다. 그저 강이서의 손에 얼굴을 비비면서 기댈 줄밖에 몰랐다. 문어 인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달아.” 문어 인간은 강이서의 손길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속에 이상한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강이서는 17번에게 사탕을 주면서 위로했다. 문어 인간은 맛을 느낄 수 없지만 차가운 핏속으로 스며드는 달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군소 인간은 팔을 있는 힘껏 뻗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질투가 묻어났고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문어 인간을 노려보고 있었다. 만약 강이서가 이때 뒤를 돌아본다면 평소에 귀여웠던 군소 인간의 낯선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냉혈 동물은 위장할 수 있었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은 보호 본능을 가지고 있었고 위장을 통해 상대를 속이는 것에 아주 능숙했다. 카멜레온이나 나비, 심지어 문어도 위장에 능했기에 위협을 느끼면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되었다. 겉모습으로 먹잇감을 현혹하는 것은 수억 년의 잔혹한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에 각인된 사냥 본능이었다. 강이서가 순종적인 것을 좋아한다면 냉혈 동물들은 순종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문어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분열 실험에서 입은 심각한 상처를 강이서에게 보여주었다. 사실 대부분의 상처는 이미 아물었지만 문어 인간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 다시 찢어놓았다. 강이서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왜 아직도 피가 나는 거지?” 강이서는 손가락으로 찢어진 부분을 어루만졌다. 문어 인간은 당황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고 강이서의 손길을 만끽하고 있었다. 실험이 주는 고통보다 수만 배 더 큰 자극이었다. 군소 인간은 더욱 미쳐 날뛰었고 붉은 눈으로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서... 나도 아파.” 군소 인간은 몸에 상처를 내려고 애썼다. 그러자 강이서는 고개를 돌리고 꾸짖었다. “말썽부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군소 인간은 차가운 눈빛으로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어 인간도 잔뜩 긴장한 채 같은 곳을 쳐다보았다. 강이서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문밖에서 멍하니 서 있는 송나연을 발견했다. “여기는 왜 왔어?” “내가 못 올 곳에 온 건 아니잖아.” 송나연은 강이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오만하게 말하면서 팔짱을 꼈다. “네 실험체가 분열 실험에 통과했다고 들었어. 그래서 축하해주러 왔을 뿐이야.” 송나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강이서는 잔뜩 긴장한 17번을 토닥이면서 놓아달라고 눈짓했다. 문어 인간은 아쉬운 듯 촉수를 천천히 풀었다. 그리고 불청객을 바라보는 눈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여긴 내 구역이야. 네가 올 곳이 아니란 뜻이야.” 강이서가 앞을 막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송나연은 눈앞의 1급 사육사를 하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A 구역 생물 연구원 송나연이 담당하는 실험체는 강이서의 실험체들과 완전히 달랐다. 매우 사나웠고 포악해서 사람들을 두렵게 했다. 해양 생물은 결코 인간에게 길들여진 적이 없었다. 인간과 가장 친밀한 돌고래와 범고래조차도 인간의 명령에 완전히 따르지 못했다. 하물며 사납고 야생적인 해양 생물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강이서의 실험체는 실험 기지의 전설 같은 존재가 되었다. 모두가 강이서를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송나연은 오래전부터 강이서의 실험체들을 노리고 있었다. 수조 뒤의 아름다운 생물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래. 같이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어차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강이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송나연의 말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송나연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더니 수조 안의 생물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났다. 베라는 예정된 장소에서 강이서를 기다렸고 술을 마시러 갔다. 실험 기지의 월급은 생명 수당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화려한 불빛으로 빛나는 밤, 사람들은 겉보기에 평화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강이서는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베라는 헤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술을 계속 마셨다. 두 사람은 만취 상태였지만 자동차가 자율 주행할 수 있었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실험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건 다 거짓말이야. 아직도 그걸 믿어?” “하지만 얼마 전에 정말로 봤어. 반은 사람의 얼굴이고 나머지 반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어.” “술 먹고 이상한 말만 하네.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강이서와 베라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베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D 구역의 인간 실험체가 도망쳤어. 얼마 못 가서 잡혔고 이미 처형당했어.” 강이서는 조용히 술잔을 내려놓았다. 베라는 잠시 침묵하다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실험체는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고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실험 기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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