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3화 넌 됐어
마지막 보고서까지 검토한 소은정은 회사 탈의실에서 베이지색 스웨터 롱드레스를 갈아입었다. 거기에 흰색 망토 코트까지 걸치니 심플하지만 통통 튀는 스타일의 코디가 완성되었다.
박우혁이 보내준 곳은 은밀한 별장처럼 보이는 바였다.
화려하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곳, 그녀와 같은 재벌 2세들이 딱 좋아할만한 분위기였다.
강희가 자주 온다던 곳이네...
소은정은 바를 둘러보았다. 앞쪽은 조용한 바, 뒤쪽은 휴식 구역, 즉 사람들의 눈에 띠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참, 좋은 곳 골랐네.
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귀청이 째질 것 같은 음악소리에 소은정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취했는지 박우혁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무대에서 춤까지 추고 있었고 무대 아래에 모인 사람들이 그를 위해 환호하고 있었다...
파티에서 자주 보는 재벌 2세들, 그리고 낯이 익은 연예인들까지, 박우혁과 친한 사람들은 전부 다 부른 모양이었다.
구석 자리에 앉은 소은정은 저 멀리 언뜻언뜻 보이는 사람 그림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하지만 화려한 조명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뭐, 안 보이면 말라지 뭐.
시선을 돌린 소은정이 컵에 주스를 따랐다.
잠시 후, 방금 전 그녀의 시선을 끌었던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눈앞이 살짝 어두워지자 고개를 든 소은정이 손목시계를 힐끗 훑어보았다.
한정판 시계, 아시아에 유일하게 하나 들어온 제품, 바로 박수혁의 시계였다.
다시 고개를 더 올려보니 역시나, 박수혁이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박수혁은 꽤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그래서인가?
왠지 더 우울하고 차가워 보였다.
고개를 숙여 소은정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말로 형언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으로 얼기설기 얽혀있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소용돌이를 담은 듯한 눈동자를 보고 있다면 그녀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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