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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장

내가 병실을 나서려하자 누워있던 주다혜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승호 씨, 요즘 느낀 건데... 승호 씨 충분히 매력 있는 남자예요. 적어도 김현호 그 사람보다는 더요. 그저 대표님 타입이 아니었던 것뿐이에요.” 주다혜의 말에 난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지? 나이도 어린데 의외로 아저씨 같은 타입이 취향인가? 세상 한 번 잘 돌아가네.’ “빈말이라도 고맙네요. 매니저한테 얼른 연락해요. 이만 가볼게요.” 내가 병실을 나서려던 그때, 주다혜가 내 뒤를 쫓았다. “승호 씨, 오늘 진짜 이상한 거 알아요? 무슨 일 있어요?” 주다혜의 진심 어린 걱정에 무겁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이렇게 진심으로 내 기분과 상태를 살피는 건 꽤 오랜만에 받는 대접이었다. 이제 안 지 며칠밖에 되지 않는 주다혜마저 내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마당에 10년간 한 부부로 지낸 임다은은 전혀 모르고 있다니. ‘아예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겠지.’ “일은요. 얼른 들어가요.” 병원을 나선 난 송민주와 약속을 잡았다. 난 미리 챙긴 통장을 그녀에게 건넸다. 송민주는 나의 주치의다. 목숨도 그녀에게 맡긴 이상 이깟 돈 따위 못 맡길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다은이한테 정말 수술 얘기는 안 할 생각이에요?” 난 고개를 저었다. “네. 어차피 말해 봤자 안 믿을 거예요. 뭐 믿는다고 해도... 지금 사이도 안 좋고 홀몸도 아닌데 굳이 말해서 뭐 해요.” 내가 시한부라는 사실을 안다 해도 임다은은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슬퍼한다 해도 그건 그저 알량한 동정에 불과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난 그녀 앞에서 항상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순간마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다은이는 숨 막히는 결혼 생활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황에 떠밀리듯 결혼한 게 마음에 걸리는 것뿐이지 승호 씨한테까지 악감정을 가진 건 아닐 거예요. 지금 떠나면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데 제대로 작별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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