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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이미 식당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었다. 임다은은 나를 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두 절친끼리 있는 자리에 끼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다. “저 사람이 배승호였구나. 내 인상이랑은 아주 다르네.” 굳게 닫히지 않은 식당 문틈으로 송민주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래?” 임다은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기복이 없었고 어떤 기분으로 답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항상 담담함 속에 미움이 숨겨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유리의 반사광을 통해 나는 내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두 눈에는 빛이 없었고 볼은 움푹 패어있었고 입술은 창백하고 얼굴은 초췌했는데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배씨 가문 도련님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송민주의 감탄 어린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현호 님, 다녀오셨습니까.” 집사의 목소리가 위층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몸을 돌리자 김현호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행사에 참석한 직후 바로 돌아온 거라 무대 화장을 지우지 못하고 온 듯했다. 스모키 메이크업에 눈을 더 밝게 하여 위에서 떨어지는 조명은 얼굴에 요염함을 더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내가 그에게 주먹을 날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김현호, 내 진료기록은 어쨌어?” 김현호는 내가 갑자기 손찌검할 줄은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아직 그럴 힘이 남았다는 걸 몰랐는지 그저 맞고 있었다. 그는 입가의 핏자국을 닦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씩 웃으며 피로 물든 이를 드러냈다. “승호 형, 무슨 소리야? 진료 기록이라니?” 소리가 들리자 임다은도 밖으로 나와 따졌다. “배승호, 이게 또 무슨 미친 짓이야?” “누나, 전 괜찮아요.” 김현호가 얼굴을 가리고 눈을 축 늘어뜨리며 임다은을 위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승호 형이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시는가 봐요. 진료기록에 대해 말씀하시던데 중요한 물건 같더라고요. 조급해하는 것도 당연한 것 같아요.” 그가 얌전하고 철든 모습을 보일수록 내가 더 포악하고 극단적인 사람 같았다. 임다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나를 보는 시선에서 혐오감이 더 짙어졌다. “내 진료기록 어디에 숨겼니?”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김현호의 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더 때리지 않도록 자제력을 발휘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현호를 보는 순간, 나의 이성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나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은 송민주가 다음 진료에 응할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진료기록을 보여주고 내가 확실히 암에 걸렸다고 믿어야만 그녀의 진료를 받을 희망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저 진료기록을 되찾고 싶었다. “승호 형, 나는 진료기록을 본 적이 없어요. 놔두신 곳을 잘못 기억하신 거 아니에요?” “배승호, 그만해!” 임다은이 엄하게 호통치며 내 앞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꾀병인데 진료기록이 어디 있어!” 그녀는 한마디도 더 묻지 않고 김현호의 말만 믿고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감정을 억누르며 전과 같은 목소리를 이어갔다. “오늘 오후에 내 방에서 물건을 가져갔는지 CCTV 한번 확인해 보자.” 임다은은 내 말에 신경 쓰지도 않고 김현호를 이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임다은.” “2층 CCTV는 내가 뜯었어.” 임다은의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사생활이 노출되는 게 싫어서 뜯었어.” 그녀의 목소리가 더 차가워졌다. “남을 감시하는 취미는 없어.”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2층의 CCTV는 내가 설치한 것이었다. 임다은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는 내가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하는 줄로만 아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집에 도둑이 들었었다. 임다은이 밤에 늘 밖에서 발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나는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어 특별히 2층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순찰을 강화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의 배려에 감동할 줄 알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나를 통제광이라고 칭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나 정신 나가지는 않았어. 내 몸 가지고 장난치지 않아. 임다은, 한 번만 믿어줄 수는 없어?” 아니었다. 나는 아팠다. 정신적으로나 생리적으로나 모두 아팠다. 임다은에게 믿어달라고 애원하지 말아야 했다. 이건 어불성설이었다. “몸 갖고 장난치지 않는다고.” 임다은은 말을 반복하며 코웃음을 쳤다. “배승호, 이러면 재미없어.” 분위기가 얼어붙자 송민주가 나서서 중재했다. “다음에는 진료기록을 미리 준비해서 오세요. 한동안 국내에 있을 거니까 그때 다시 자세히 얘기해요.” “민주야, 너는 너무 착해서 이렇게 이용당하는 거야.” 임다은이 말을 이었다. “너는 쟤를 환자로 생각하겠지만 쟤는 널 뭐로 생각할지 아무도 몰라.” “그런 적 없어.” 나는 자신을 위해 변명하고 싶었지만 임다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송민주의 팔짱을 끼고 식탁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사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안해. 이런 웃긴 상황을 보게 해서.” “괜찮아.” 송민주가 손사래를 치며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표시했다. “승호 형, 자꾸 누나 화나게 하지 마요. 오후 내내 주무시는 것 같던데 배고프시죠? 빨리 와서 식사하세요.” 김현호가 나를 잡으려고 했지만 내가 밀어내자 그는 애처롭게 임다은을 바라보았다. “신경 쓰지 마. 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해.” 임다은은 눈빛 하나 주지 않고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송민주의 시선이 나와 김현호에게서 맴돌았다. 그녀도 아마 내가 다른 남자와 임다은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에 동의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선은 동정일까, 연민일까, 비웃음일까, 혐오일까?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꼭 쥔 나는 간신히 소리를 내어 답했다. “배 안 고파. 너희들끼리 먹어.” 몸을 돌려 식당을 나선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거실로 돌아와 송민주가 식사 마치기를 기다렸다. 비록 송민주가 다시 진료를 받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변수가 생길까 봐서 걱정이었다. 하여 나는 그녀의 연락처를 추가하고 싶었다. 김현호는 분위기를 잘 띄웠는데 몇 마디로 임다은과 송민주 사이에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식당 안은 온통 웃음바다였다. 소파에 앉아 시곗바늘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의식이 몽롱하고 웃음소리가 귓가에 가물가물 들리며 나는 마치 꿈속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한순간에는 나와 임다은이 결혼할 때 모두가 축복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다음에는 임다은, 김현호와 송민주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승호 님.” 눈을 뜨니 집사의 확대된 얼굴이 보였다. “송 선생님은요?” 몸을 펴고 좌우를 둘러보니 1층 전체가 조용했다. “송 선생님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집사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얼마나 됐어요?” “방금 나가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돌볼 겨를 없이 바로 뛰쳐나갔다. 다행히 송민주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 차를 출발시키려고 한 순간 내가 갑자기 나타나자 그녀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배승호 씨, 뭐 하시는 거예요?” 송민주가 차에서 내리며 눈가의 짜증을 감추며 오른손 검지로 가볍게 안경을 바로 고쳤다. “송 선생님. 언제 시간 되세요? 진료 기록 한번 봐주세요.” 나도 당돌하고 무례한 나의 행동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연신 허리를 굽혔다. 송민주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는데 렌즈 뒤에 감춰진 그녀의 눈으로 인해 나는 그녀의 속마음을 간파할 수 없었다. 고요한 밤, 머리 위에는 가로등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밝은 빛이 그녀의 몸에 떨어지며 그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찍으세요.” 한 마디였지만 마치 천상에서 들려온 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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