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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송민주의 카카오톡을 추가했다. 고개를 들어 송민주를 바라보니 시선이 마침 딱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가 솔직히 말했다. “배승호 씨가 이럴수록 다은이는 싫어할 거예요.” 그녀의 뜻은 내가 아프다고 하는 게 임다은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송 선생님, 제 진료기록 먼저 보세요.” 나는 그녀의 말을 끊이며 말을 이었다. “전문의는 진료기록을 보고 남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민주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카톡 친구 추가를 확인했다. “시간 있을 때 미리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예리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음에는 김현호 씨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진료기록을 잘 보관하셔야 합니다.” 다시 차에 올라탄 송민주가 경적을 누르고 라이트를 켜자 눈부신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가렸다. 그녀는 또 경적을 한 번 눌러서 나에게 비켜달라고 재촉했다. 시야가 조금 확보되자 나는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차는 천천히 떠났다. 조용히 바라본 나의 마음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송민주와 임다은이 서로 친한 사이였기에 아무리 표면적으로 온화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내면에서는 나를 미워하고 있을 것이었다. 몸을 돌리자 나는 마당 입구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빛이 두 사람의 정수리에 떨어져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임다은의 얼굴의 반은 어둠에 가려져 표정을 분간할 수 없었는데 두 눈만 반짝이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김현호가 그녀 옆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다. “승호 형, 아까 민주 누나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 “너랑 무슨 상관이야?” 나는 핸드폰을 거두어들이고 차가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내 진료기록을 숨길 수 있다고 해도 다음에는? 아예 병원에 가서 내 진료 기록을 삭제하는 게 어때?” 이 말을 하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임다은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진실을 알 마음이 있었다면 편파적으로 한 사람 편만 드는 게 아니라 병원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당황함이 김현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엉겁결에 임다은을 바라보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승호 형, 나는 정말 형이 말하는 진료기록을 모르겠어요. 왜 계속 저를 겨냥하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저 형이 민주 누나랑 재밌게 대화하고 계시길래 몇 마디 더 한 것뿐이에요.” 나는 냉소적으로 웃을 뿐 대답하지 않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후퇴를 전진으로 삼는 것이 김현호의 상투적인 수단이었다. 임다은은 나서서 두둔했다. “언제까지 연기할 거야?” “연기하지 않았어. 연락처 추가해서 다음 약속을 정한 거야. 다음에 같이 갈래?” 어쩌면 집착에 가까운 반문이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또 어릿광대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계속 그녀에게 내가 정말 뇌종양에 걸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도 임다은이 진실을 알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서일 것이다. 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 곁을 지나갔다. 등 뒤로 김현호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승호 형이 민주 누나 연락처 추가한 거예요? 그럴 줄 알았으면 저도 할 걸 그랬어요. 그냥 누나 친구라니까 먼저 연락처를 달라고 하면 오해받을 수 있어서 언급 안 했어요.” 나의 걸음이 멈췄다. 김현호의 말은 무슨 뜻일까? 자신이 다른 여자와의 거리를 잘 유지한다는 뜻일지, 아니면 내가 유지하지 못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숨겨져 있는 걸까? 임다은도 김현호의 말뜻을 알아듣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내 손목을 잡고 힘껏 잡아당기며 눈을 마주치도록 강요했다. 하얀 손바닥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김현호가 말하는 대로 전부 믿는 모습을 보니 정말 바보 같은 여자처럼 느껴졌다. “핸드폰 줘.” “왜?” “민주 연락처 삭제해. 네가 직접 할래? 아니면 내가 할까?” 임다은이 강하게 밀어붙였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그녀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뺏으려고 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어나 그녀의 손을 피해 핸드폰을 뒤로 숨겼다. “내가 송 선생님을 추가한 건 병 때문이야.”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관계상 내가 다른 여자를 추가하든 말든 너는 더는 관여할 자격이 없어.” 임다은이 멈칫하더니 비웃음을 지었다. “질투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누굴 찾든 내 지인은 찾지 말라고 하고 싶은 거야.” 그녀는 내 가슴을 쿡쿡 찌르며 얘기하고 있었고 날카로운 네일아트가 옷을 사이에 두고 피부를 찔렀다. 내가 뒤로 물러날수록 그녀도 더 다가왔는데 등이 벽에 붙자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우리 쪽 사람들은 전부 너와 나랑 결혼한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앞으로 네가 민주 옆에 나타나면 나와 민주만 웃음거리가 될 거야.” “내가 그런 것도 생각 못 했을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임다은과 이런 고민을 이어갈 생각이 없었다. 내가 한 말들에 대해 그녀는 들어주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기에 더 말한다고 해도 그저 입만 아플 뿐이었다. “지워!” 임다은이 강조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시선이 마주친 우리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김현호가 나서서 중재했다. “승호 형, 더 이상 누나 기분 상하게 하지 마. 지우면 되잖아. 다른 사람한테 마음 없다는 증거잖아.”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내가 물었다. “임다은, 네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을 지우라 마라 하는 거야?” “우리는 합법적인 부부잖아.” 이 말이 툭 튀어나온 순간 우리가 있던 공간은 정적에 휩싸였다. 임다은이 턱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을 이었다. “너는 부부의 의무를 다하는 거야.” “부부의 의무?”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김현호를 바라보았다. “책임과 의무는 동등한 거야. 내가 다른 사람을 삭제한다면 네가 제3자를 쫓아내야하는 거 아니야?” “지금 나랑 거래하는 거야?” 임다은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물러설 기색이 전혀 없는 나를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괜찮아. 네가 삭제하지 않아도 나한테 방법은 많아.” 그녀는 김현호의 손을 잡고 실내로 걸어갔고 두 걸음도 지나지 않아 나를 돌아봤다. “배승호, 너는 진작부터 나랑 조건을 얘기할 자격이 없었어.” 대문이 닫히자 빛이 차단되며 어둠만이 남게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는데, 벽에 기대어 있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손을 들어 뺨의 차가운 기운을 쓸어낸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성 그룹이 망한 후로부터 나와 임다은은 일찍이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와 그녀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의 사랑에서 그녀가 우위를 점했지만, 지금은 그녀가 실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반격할 힘이 없었다. 열린 문틈으로 내가 그늘에 서 있는 것을 본 집사가 내가 놀랄까 봐 조심스레 말했다. “승호 님, 밤공기가 차가우니 빨리 들어오세요.” 따스한 노란 빛이 몸에 내려앉자 온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따스함을 느꼈다. 문을 넘어서며 나는 희망을 잡은 것처럼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2층 원래 방을 지날 때 간간이 들려오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누나, 승호 형 말도 맞아요. 내가 제3자이니 지금 짐 싸서 떠날게요.” “걔가 소란 피운다고 너도 같이 피우는 거야?” 임다은의 말투에 체념과 인내가 담겨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들을 마음이 없어 임시로 마련된 방에 가서 누워 송민주에게 연락했다. “송 선생님. 내일 오전에 병원으로 갈까요? 만약 선생님께서 진료기록을 못 믿으신다면 현장에서 검사할 수도 있습니다.” 메시지는 전송되지 않았다. 차단당한 것이었다. 핸드폰을 잡은 손으로 눈을 가린 나는 실소하고 있었다. ‘임다은, 이게 네가 말한 방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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