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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애초에 당신을 놓아줄 생각 없었어

하동국 일행은 정처 없이 쏘아붙이며 수지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안 주고 모든 죄를 덮어씌웠다. 다만 수지도 딱히 해명할 마음이 없었다. 하씨 가문에서 지낸 수년간 그녀가 신경 쓰는 사람은 오직 유정숙 한 분이니까. 하동국과 김은경이 어떤 사람인지 수지는 누구보다 잘 안다. 또한 20년 만에 되찾은 하윤아는 먼저 건드리지 않는 한 수지도 딱히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지만 하윤아가 기어코 심기를 건드린다면 수지도 절대 참고 있을 성격이 아니다. 그녀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유정숙이 불쑥 두 손을 벌리고 손녀를 지켜주겠다는 식으로 그녀 앞에 나섰다. “다들 썩 물러가지 못할까. 꼴도 보기 싫어. 어딜 감히 무리 지어 우리 수지를 괴롭히려고 들어? 싹 다 꺼지란 말이야!” “괜찮아, 수지야. 할머니가 지켜줄게!” 유정숙은 연세가 꽤 있으신 편이다. 최근 2, 3년 동안 줄곧 요양원에서 지냈지만 수지가 자주 보러 오고 또한 이곳에서 할머니를 보살펴줄 사람을 직접 골라드렸으니 정신 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싸울 땐 목소리도 유난히 우렁차다. 유정숙이 대놓고 수지를 지켜주자 하윤아는 억장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씨 가문에 돌아온 후 김은경과 하동국은 무릇 그녀의 요구라면 전부 들어주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새끼로 애지중지 키워왔는데 오직 할머니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질 따름이다. 명의상 친할머니라곤 하지만 하윤아가 맨 처음 하동국 부부를 따라 요양원에 찾아왔을 때부터 유정숙은 언짢은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그녀야말로 친손녀인데 대체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걸까? “할머니, 저야말로 할머니 친손녀라고요. 우린 서로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이에요! 대체 왜 이런 짝퉁을 지켜주고 있어요? 얘만 아니었어도 제가 그동안 밖에서 모진 수모를 겪을 필요가 없잖아요. 제 말 틀렸어요?” “얘만 아니었으면 저랑 할머니, 그리고 엄마, 아빠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요.” 하윤아는 대뜸 유정숙을 향해 소리치며 속상한 듯 울음을 터트렸다. “다 함께 할머니 뵈러 왔는데 이런 식이면 어떡해요? 수지만 애지중지하는 보물이고 저는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런 거냐고요?” “당연하지.” 이에 유정숙이 더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넌 누구니? 보물은 무슨?!” “수지 넌 진짜 재수 털린 년이야. 너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불화를 겪잖아.” 김은경은 그 누구도 하윤아를 괴롭히는 걸 용납할 수 없다. 그 상대가 유정숙일지라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유정숙이 요양원에서 지내는 동안 김은경은 하동국을 꼬드겨서 요양원 비용도 지급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어르신을 뵈러 오는 것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그동안 요양원 비용을 수지가 줄곧 부담하고 있다는 걸 하동국 부부는 다 알고 있다. 김은경은 오히려 쉴 새 없이 하동국에게 푸념하고 있다. 대체 유정숙이 수지에게 돈을 얼마나 줬기에 이 몇 년간 요양원의 각종 비용을 부담하고 있냐면서 투덜대는 인간이다. 그때마다 하동국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쨌거나 유정숙은 그의 친엄마였으니 수지가 부담하지 않으면 본인이 책임져야 하니까. 하씨 가문은 현재 오성 갑부 집안이라 이까짓 돈 따위 문제 될 것 없지만 김은경이 끝까지 허용하지 않는다. 수지가 부담하는 돈은 전에 유정숙에게 받은 몫이라면서 고집을 피우고 있다. 김은경은 하윤아를 앞으로 내밀면서 유정숙에게 삿대질해댔다. “어머님, 똑똑히 보세요. 윤아야말로 어머님 친손녀예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거예요 아니면 눈이 먼 거예요?!” “지능 장애가 오더니 사람 말귀도 못 알아듣나 봐요. 수지한테 물려주는 지분 얼른 윤아한테 넘기세요. 알겠어요?” 김은경은 감정이 격해져서 유정숙을 잡아당기려고 했다. 순간 수지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김은경의 손이 유정숙에게 닿기 전에 덥석 손목을 잡아서 뒤로 밀쳐냈다. 아무런 준비도 없던 김은경은 그대로 뒷걸음질을 쳤다. 곧이어 수지는 유정숙을 부축하며 간호사에게 당부했다. “간호사님, 일단 저희 할머니 모시고 방으로 돌아가 계세요.” 간호사 진미영이 얼른 다가와 유정숙을 부축하며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나 안 가.” 하지만 유정숙은 돌아갈 기미가 안 보였다. 일단 방에 돌아가면 하동국 일행이 수지를 어떻게 괴롭힐지 모르니까. “괜찮아, 할미가 지켜줄게.” “할머니, 저 괜찮아요. 저 사람들 함부로 나오지 못해요. 할머니는 얼른 간호사님과 함께 방에 돌아가 계세요. 제가 금방 따라갈게요.” 수지는 유정숙에게 말할 때 표정이 순식간에 온화해지고 말투도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할머니는 그녀가 자상하게 어르고 달래니 금세 어린아이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릴게요, 간호사님.” 수지는 진미영에게 곁눈질을 보냈다. 이에 진미영은 유정숙을 달래면서 겨우 자리를 떠났다. 어르신이 떠난 후 수지는 또다시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차가운 눈길로 하동국 일행을 째려보다가 김은경에게 시선이 멈췄다. 방금 김은경은 유정숙을 욕했을 뿐만 아니라 폭력까지 휘두르려고 했다. 수지의 차가운 눈빛에 주변 공기마저 얼어붙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가슴이 움찔거렸다. 김은경은 이토록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는 수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결국 식겁한 그녀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다만 수지는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기세가 아니었다. 김은경에게 바짝 다가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내뱉는 그녀였다. “김은경, 방금 한 말 다시 한번 해줄래?” 순간 김은경은 못 믿겠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리 친딸이 아니어도 20년 동안 키워줬고 지금 비록 하윤아를 되찾아서 그녀를 이 집에서 내쫓는다고는 하지만 한때 엄마였던 김은경에게 반말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나 네 엄마야!!” 화가 난 김은경이 버럭 소리쳤다. “널 20년이나 키워왔다고.” “어떻게 감히 나한테 반말을 해?” “당신들이 친딸을 찾았다고 날 내쫓았던 순간부터 엄마는 아니지.” 수지는 싸늘한 눈길로 김은경을 째려보다가 하동국에게 시선을 옮겼다. “하동국 씨, 참 대단하시네요. 와이프 하나 단속하지 못하고 본인 엄마를 멋대로 괴롭히게 내버려 두나요?” “내가 마침 이런 교양 없는 집안에서 커왔으니 참 불행하네요. 당신들도 부모님을 공경할 줄 모르는데 하물며 나한테 왜 친부모도 아닌 것들이 대접받으려고 들어요? 이건 말이 안 되죠.” “김은경 씨, 가서 할머니께 무릎 꿇고 사과해요!” “그리고 당신도 잘 들어요. 본인 엄마를 부양할 수 없다면 하루빨리 나한테 부양권 넘겨요. 당신들이 외면하는 할머니, 내가 대신 모실 테니까!” “불효막심한 놈, 우리 집안에 훼방 놓는 것도 모자라 감히 버르장머리 없이 이런 말까지 내뱉는 거야?” 하동국은 너무 창피해서 수지의 뺨을 내리치려고 손을 들었으나 수지가 곧장 그의 손목을 잡아서 뒤로 밀쳤다. 결국 하동국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경고하는데 앞으로 두 번 다시 할머니 찾아와서 귀찮게 굴지 마!” “그리고 하씨 가문 지분은 꿈도 꾸지 마. 할머니가 나한테 양도한 거니까 내가 살아있는 한 다들 뺏어갈 생각 따위 집어치워.” 수지는 차갑게 쏘아붙이며 주먹만 한 얼굴에 싸늘한 한기를 내뿜었다. 그녀는 한없이 매정한 눈빛으로 하동국네 가족을 째려보았다. 그녀는 애초에 하씨 가문의 지분을 놓고 경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유정숙은 목숨을 내걸고 그녀에게 반드시 지분을 차지해야 한다고 다그쳤는데 그 이유는 다 나중에 수지가 기댈 곳 하나 없을까 봐 걱정돼서였다. 수지는 하씨 가문의 재산이나 지분 따위 관심이 없지만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만은 소중히 여겨야 했다. 하씨 가문과 불화를 일으킨다고?! 그건 아예 수지랑 상관없는 일이다. 무릇 할머니를 괴롭히는 자는 절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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