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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네 혼수는 아무도 뺏어갈 수 없어

통화를 마친 후 박서진은 임수빈더러 다시 가서 유정숙을 뵙고 오라고 했다. 한편 본인은 차를 몰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임수빈이 요양원으로 들어갈 때 하동국의 차가 마침 안으로 들어왔다. 이들 세 식구는 행여나 남들이 한 가족이라는 걸 못 알아볼까 봐 대놓고 패밀리룩 차림이었다. 하윤아는 김은경의 팔짱을 끼고 걸어오며 쉴새 없이 구시렁댔다. 유정숙이 수지를 더 편애한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싶었다. “엄마, 이따가 할머니 만나면 수지한테 주는 지분을 무조건 나한테 되돌려주라고 말씀하셔야 해요!” “걱정 마. 수지는 가짜야. 너야말로 우리 딸이잖니. 너희 할머니도 예전에는 몰라서 그 짝퉁을 예뻐해 주신 거야. 이젠 네가 돌아왔으니 전에 수지에게 속한 것들은 당연히 돌려받아야지.” 김은경은 하윤아의 손을 두드리더니 잊지 않고 하동국에게 푸념했다. “당신 엄마도 참! 뭣 하러 짝퉁인 수지한테 그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친손녀를 마다하고 짝퉁만 이뻐하더니 무슨 주식까지 그렇게 많이 물려주는 거냐고요?” “지난번에 이 일로 찾아왔을 때도 버럭 화내면서 험한 말까지 내뱉으셨죠? 윤아는 인정 못 한다면서, 손녀는 오직 수지라고요? 아니 대체, 세상에 어떤 할머니가 친손녀에게 이런 식으로 말해요?” “안 그래도 우리 윤아 그동안 밖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왔는데 집에 돌아와서까지 차별 대우나 받고, 참! 제대로 보살펴주고 보상해주지도 못할망정 이게 대체 무슨 경우에요?” 옆에서 듣고 있던 하윤아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노인네가 죽지도 않고 꼴불견이야 정말. 수지 구하느라 지능 장애까지 왔으면서! 또 매년 치료비로 우리 엄마, 아빠 돈도 엄청 많이 쓸 거잖아.’ ‘요양원에 바치는 돈 차라리 다 나만 주면 얼마나 좋아.’ 하동국은 그런 두 모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수지는 엄마가 줄곧 키워왔어. 그 아이를 아주 어릴 때부터 키워왔으니 당연히 정들었을 거잖아.” “윤아는 이제 막 집에 돌아와서 어머님과 돈독하게 지낼 시기를 다 놓쳤어요. 그래도 뭐, 지금이라도 안 늦었죠. 수지가 이미 떠나갔으니 앞으론 윤아 네가 자주 요양원에 찾아와서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려. 네가 효심이 많은 걸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널 예뻐하고 잘해주실 거야.” “우리야말로 몸에 같은 피가 흐르는 한 가족이잖니. 수지는 남이야. 할머니가 아무리 아껴줘봤자 이젠 우리 집안을 떠났는데 뭘 어쩌겠어?” “그러니까 우리 윤아가 바로 최후의 승자인 거지!” 순간 하윤아는 기분이 잡쳤다. 요양원까지 자주 찾아와서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라니?! 이제 막 하씨 가문에 돌아와 부잣집 딸 행세도 다 못했는데 허구한 날 요양원으로 찾아올 마음이 있을까? 다만 김은경이 계속 잡아당기니 그녀는 끝내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 사람은 나란히 유정숙의 병동으로 향했다. 한편 병동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바로 앞에서 수지가 한창 유정숙과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유정숙은 수지의 손을 꼭 잡고 뭐라고 얘기하고 있었고 이 모습을 본 하동국 부부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돈도 안 챙기고 쿨하게 가버리더라니. 우리 집에서 주는 물건은 일절도 안 갖는다고 으름장을 놓고선 돌아서서 바로 요양원 찾아온 거야? 제일 큰 걸 노렸네. 크게 한 몫 낚아채려던 거야!!” 김은경이 분노 조로 씩씩거렸다. “전에 어머님 뵈러 왔을 때 왜 한사코 윤아한테 지분 안 물려주나 했는데 수지 저년이 선수 친 거였네요.” 하동국도 안색이 일그러졌다. 여태껏 수지에게 나름대로 잘해줬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친딸이 아닌 걸 알았음에도 줄곧 길러줬고 집에서 내보내기 전에는 4천만 원을 쥐여주며 SNS에 부모님 찾는 정보까지 올려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하씨 저택에서 강현우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윤아를 엄청 난처하게 굴었어도 하동국은 아무런 반박이 없었다. 그러니까 수지는 그쯤에서 멈췄어야 했다. 회사 지분까지 노리는 건 엄연히 선을 넘는 일이다. “가자 얼른.” “그래요.” 하동국과 김은경은 하윤아를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두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 그 시각 유정숙은 한창 수지를 다그치고 있었다. “수지야, 할머니가 주는 지분 꼭 잘 챙기고 있어야 해. 아무한테도 넘겨주면 안 돼.” “약속 안 지키면 이 할미는 확 죽어버릴 거야.” 유정숙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며 주름 잡힌 얼굴에 단호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꼭 약속해. 할머니가 주는 지분 반드시 잘 챙겨야 해.” “할머니...” “약속해, 얼른.” 유정숙은 아이처럼 떼를 쓰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약속 안 하면 확 죽어버릴 거야.” 이에 수지는 마지못해 알겠다고 대답하며 할머니를 부축했다. “알았어요, 할머니 말씀대로 할게요. 제게 주시는 지분 아무도 못 뺏어가요. 제가 끝까지 챙기고 있을게요.”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할머니는 그제야 활짝 웃으면서 수지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수지야, 지분은 꼭 너만 챙기고 있어. 다른 사람은 절대 안 돼. 동국이든, 은경이든, 그 무슨 윤아랬나? 다들 안돼. 할머니는 오직 우리 수지만 줄 거야.” “내가 너한테 물려주는 거니까 아무도 못 뺏어가. 그 누가 됐든 절대 못 뺏어가!” 그녀의 착한 손녀 수지가 선뜻 지분을 내놓지 않는 한 유정숙은 죽는 한이 있어도 다른 인간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수지는 매정하게 하씨 가문에서 쫓겨나 수년간 엄마, 아빠라고 불러왔던 분들이 순식간에 남남이 되었고 게다가 친부모는 어디에 계시는지도 모른다. 만약 지분까지 빼앗겨버린다면 나중에 혼수마저 못 챙기게 될 것이다. “그 지분은 할미가 우리 수지를 위해 마련한 혼수이니 절대 아무한테도 양도해선 안 돼.” 유정숙은 그녀가 지금 잠시 어르고 달래느라 대충 대답한 줄 알고 다시 한번 진지하게 말했다. “이 할미가 우리 수지 혼수를 마련해주는 거야. 남은 생을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내야지.” 순간 수지는 가슴이 찡했다. 어르신은 고작 6살 아이의 지능 수준인데 수지가 평생 돈 걱정 없이 살라고 신경 써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에게 지분을 양도했다기보단 온 마음을 다해 사랑과 안정감을 베풀어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싶었다.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수지는 문득 이 세상에 나 홀로 남는다고 해도 전혀 외롭거나 고독하진 않을 것 같았다. “수지 네 이년! 방금 우리 집에서 어떻게 얘기했는데,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이때 갑자기 김은경의 분노 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지는 할머니를 부축해서 일으킨 후 시선을 올리고 그녀의 음침한 얼굴을 마주했다. 김은경은 한창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수지를 째려보고 있었다. 또한 그녀 뒤엔 하동국과 하윤아가 나란히 서 있었다. 깔 맞춤한 패밀리룩, 대놓고 한 가족임을 드러내는 세 인간이었다. “수지야, 넌 이미 우리 집안을 떠났잖니. 그러니까 이제 우리 집안의 그 어떠한 일도 너랑 아무 연관이 없어. 할머니는 왜 또 찾아와? 버팀목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려고?!” “아까 우리 집에서 나갈 때 뭐라고 했어? 이 집안의 물건은 일절 안 가지겠다고 그리 당당하게 말하더니 이제 와서 요양원으로 방향을 튼 거야? 그 지분을 챙기려는 수작이니?” 하동국이 끊임없이 다그치며 싸늘한 눈길로 수지를 노려봤다. 옆에 있던 하윤아도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 “가짜는 어디까지나 가짜야. 우리 집안을 떠나면 호의호식을 할 수 없을까 봐 쪼르르 할머니 찾아온 거야? 할머니가 지금 지능이 낮다고 한번 속여볼 속셈이겠지! 수지 너 진짜 비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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