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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그녀를 탐색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진지하게 설명하던 수지는 얼마 후 시선을 들어 박서진을 바라보았다. “이해하셨어요?” 수지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박서진은 급히 시선을 거두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만약 제니 선생님이 저라면 할아버지의 치료방법으로 어떤 걸 선택할 건가요?” 박서진의 말에 수지는 어리둥절했다. 이런 질문을 수지는 예전에도 여러 번 받아본 적이 있지만 박서진도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묻는 질문이에요.” 박서진은 간절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 가족으로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실은 전부터 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할아버지 수술을 집도하려는 의사는 한 명도 없었어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수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의외인 것은 성수 박씨 가문에서 의사를 수소문할 때 환자의 신분과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지는 처음에 성수 박씨 가문과 박선재를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환자가 박선재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수지는 오성시에 있을 때 신분을 바꿔 그에게 한약을 먹이고 침을 맞게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굳이 박선재가 보경시까지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제 개인적인 의견을 드리자면 보존적 치료를 선택하는 걸 추천드려요. 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할 자신이 있어요.” 수지는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하며 박서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박서진의 눈빛은 언뜻 보면 공손해 보이지만 사실은 수지를 탐색하는 시선이었다. 백발에 마스크와 돋보기안경을 착용한 수지는 할머니의 모습과 흡사했지만 박서진은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수지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심지어 그는 질문을 하고 열심히 듣는 척했지만 시선으로는 줄곧 수지를 조용히 훑어보았다. 수지는 돋보기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때 잠시 고민에 잠겼던 박서진이 예의 바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3개월은 너무 길지 않을까요?” “치료 비용 때문에 걱정돼서 그러세요?” “그건 아니에요.” 박서진은 반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있어 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예전닥터 제니가 진료를 담당했던 환자들의 치료 과정은 전부 일주일을 넘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박서진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닥터 제니가 진료한 환자들은 기껏해야 두 날 만에 모든 검사를 마치고 치료 방법을 결정했으며 치료가 끝난 뒤에는 환자를 병원 쪽에 맡았다. 또한 닥터 제니가 진료한 환자들은 청주 사립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이후의 후속 치료도 청주 사립병원에서 진행했다. 닥터 제니는 처음에 환자의 진료와 수술만 담당할 뿐 그 후의 일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닥터 제니는 박선재의 치료 과정을 3개월로 제안했다. 박서진은 치료 비용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지만 닥터 제니가 왜 유독 박선재를 특별 취급해 주는 것인지 의아했다. 박서진은 성수 박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위치에 놓여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가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기를 바라며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만약 박선재가 박서진의 손에서 죽게 된다면 그는 지울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것과 다름없고 그들도 이걸 이유로 삼아 박서진을 후계자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이전에 닥터 제니는 박선재의 진료를 계속 거부해왔는데 갑자기 진료를 받아준 것은 물론 너무 호의적이라 박서진은 오히려 의심이 생겼다. 특히, 닥터 제니가 진짜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 박서진은 눈앞의 사람이 정말 닥터 제니 본인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박서진 씨, 무슨 의심을 하고 있는 건지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수지는 박선재의 병력을 정리하며 돋보기안경 통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박서진을 바라보았다. 돋보기안경은 위장을 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것이라 수지의 시력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박서진은 수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수지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 박서진은 그녀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돋보기안경이 냉담한 수지의 눈빛을 가려주었지만 박서진은 그녀가 기분 나빠한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알아차렸다. 박서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니 선생님은 일정이 바쁘시잖아요. 만약 3개월 동안 다른 환자가 찾아온다면 선생님이 저희 할아버지 치료를 뒤로 미뤄두고 다른 환자의 진료를 보실까 봐 걱정이 돼서요.” “박서진 씨가 절 찾아왔으니 제가 정한 규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겠죠. 전 담당한 환자의 치료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다음 환자를 받지 않아요.” 수지는 냉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박서진 씨는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은데 왜 굳이 저한테 질문을 하는 거죠? 어르신의 심장은 관리만 잘하면 앞으로 10년은 문제없을 거예요. 그리고 종양은 다른 부위에 전이만 안된다면 별문제 없을 거고요.” “그렇지만 종양이 다른 부위에 전이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죠. 안 그래요?” 박서진은 박선재를 데리고 많은 병원을 찾아갔지만 종양이 다른 부위에 전이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의사는 단 한 명도 없었고 박선재에게 수술을 해주려는 의사도 없었다. 박선재의 심장 부근에 있는 작은 종양은 돌발 상황을 일으킬 가능성이 아주 컸다. 어쩌면 멀쩡하던 박선재가 1초 뒤에 갑자기 쓰러져 영영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 박서진은 오랫동안 고심했고 이렇게 매일 살얼음판을 거니는 것처럼 불안하게 사느니 차라리 박선재의 병을 완전히 치료할 방법을 찾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박서진은 많은 시간을 들이고 여러 방법을 동원한 끝에 겨우 닥터 제니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가 박서진에게는 아주 소중했다. “할아버지는 저한테 아주 소중한 분이세요.” 박서진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제니 선생님께서 꼭 저희 할아버지의 병을 치료해 주셨으면 해요. 부탁드립니다.” 수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이다은에게 박서진을 배웅하라고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이다은은 박서진을 향해 말하며 문을 열었다. “사부님은 병원장님과 수술 방법을 연구해야 해요.” 이다은의 말은 박서진이 이곳에 계속 남아 있으면 방해만 된다는 뜻이었다. 이에 박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제니 선생님, 수고하세요.” 수지는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며 시선을 내려 박선재의 심장 아래에 위치한 종양을 바라보았다. 종양이 있는 위치는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큰 출혈과 심정지를 유발할 수 있었기에 반드시 철저히 연구를 한 뒤에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 한편 이다은의 배웅을 받으며 박서진이 방에서 나오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임수빈은 참지 못하고 안을 힐끗거렸다. “대표님, 방금 전의 여자는 전에 수지 씨와 함께 있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상해서요.” 임수빈은 코를 문질렀다. “전 수지 씨가 병원에서 나오는 걸 못 봤어요! 그런데 방금 병원을 한 바퀴 다 돌았는데도 수지 씨를 찾지 못했어요.” “내 경고에 자존심이 상해서 몰래 떠났겠지!” 박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는 수지가 따라왔다고 말하지 마.” “네.” 같은 시각, 병원장실에서 수지는 두 가지 치료 방법을 확정했고 박서진과 박선재의 선택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까 안으로 들어와 자신을 쳐다보던 박서진의 눈빛이 변태스러워 수지는 온몸이 불편했다. 박선재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며 잘해주지 않았다면 박서진의 눈빛을 보는 순간, 수지는 이번 수술을 거절했을 것이다. “다은아, 이따가 선물을 사서 수지 이름으로 할아버지에게 보내. 임수빈이 날 봤어.” 임수빈은 수지에게 박서진을 만나러 오라고 했지만 박서진이 갑자기 도망을 간 탓에 두 사람은 정식으로 만남을 가지지 못했다. 수지는 박선재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을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할 것이 걱정되었다. 그녀는 박선재에게 자신이 이곳으로 왔고 그가 입원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부득이한 이유로 인해 한동안은 직접 병문안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수지는 누군가 자신에게 잘해주면 상대방에게 10배로 잘해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수지는 박선재가 자신에게 잘해준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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