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9장

그 말을 들은 온유나가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와 손등을 뜨겁게 적시고 피부까지 타고 들어갈 것 같았다. 성우진은 가장 스윗한 말투로 가장 잔혹한 말을 내뱉고 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젠 든든하게 지켜줄 아빠가 없어서 제멋대로 나올 자격도 없어.” 말인즉슨 성우진 같은 사람에게 두 번 다시 걸려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한 번의 상처로도 아마 평생 치유해야 할 테니까. 한참 침묵한 후 온유나가 활짝 웃었다. “우진아, 지금 이런 요구를 하는 게 너한테 어이없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어.” 그녀가 코를 훌쩍거렸다. “나 한 번만 안아줄 수 있어? 딱 한 번만...” 말을 마친 그녀가 피식 웃었다. 이 요구가 얼마나 무리한지 아니까. 원만하게 마지막 식사를 마친 것도 그녀에겐 일종의 사치였으니 말이다. 이제 막 농담이라고 말하려던 찰나, 성우진이 불쑥 그녀를 잡아당겨 오더니 튼실한 품에 확 끌어안았다. 온유나의 코끝에 오직 성우진만의 청량한 냄새가 전해졌고 귓가에는 쿵쾅대는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차마 손을 올려서 성우진을 안아주진 못했다. 그건 너무 부적절하다는 걸 아니까. 한참 후 온유나가 그를 가볍게 밀쳤지만 이 남자가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이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마워. 너한테 별 의미 없는 말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고마워. 걱정 마. 아까 맹세한 대로 두 번 다시 네 눈앞에 나타날 일은 없어. 물론 너도 내 인생에 나타난 적 없는 것처럼 말끔하게 지울게.” 성우진이 미간을 확 찌푸리고 머릿속에 울리는 메아리가 점점 더 켜졌다. 그는 결국 가녀린 온유나의 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어느 한순간만큼 성우진은 꼭 안은 그녀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성우진은 그녀를 풀어주고 휴대폰을 꺼냈는데... 상대는 바로 하은별이었다. 온유나는 그 순간 심장이 꽉 조여오듯 아팠다. 성우진은 누구 전화든 다 받는다. 오직 온유나만 제외하고... 그녀는 웃으며 돌아서서 캐비닛 위에 놓인 장식품들을 하나둘씩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성우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끝내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하은별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큰일 났어요!” 성우진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양엄마가 납치당했어요!” 성우진의 눈동자가 한없이 싸늘해졌다. “어떻게 된 거야. 똑바로 말해.” 하은별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실은 오늘 양엄마 스케줄이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개인 온천 프로젝트에 가서 체험하는 건데 오전에 몇몇 사모님들이 함께 카드놀이나 하자고 해서 온천을 마치고 거기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거든요.” “그 사모님들이 양엄마랑 함께 가기로 했는데 마침 엄마 목걸이가 도착해서 사모님들한테 금방 따라갈 테니 먼저 가 있으라고 했대요. 근데 아까 사모님 한 분이 전화 왔는데 양엄마가 아직도 안 왔대요. 기사님께도 전화해봤는데 도통 안 받아요. 그래서...” 성우진이 전화를 끊고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일이 생겨서 먼저 갈게.” 온유나는 이해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가 가족들을 얼마나 챙기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온유나는 이미 원하는 바를 이뤘기에 여한이 없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떠나도 돼.” 말을 마친 성우진이 신발을 갈아신고 문밖을 나섰다. 온유나는 창가 쪽으로 다가가 부리나케 떠나가는 성우진을 바라보다가 계속 짐을 정리했다. 정리를 마치고 보니 그녀의 물건이 딱히 얼마 되지도 않았다. 포장을 마치고 짐을 겨우 문 앞까지 끌어간 후 집안 조명을 싹 다 끄고 문을 닫았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작별하는 중이다. 온유나는 아파트 관리실에 가서 내일 이 물건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당부했다. 아파트 관리원도 선뜻 동의했다. 그녀는 콜택시를 부르고 아파트 단지에서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때 경비원이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유나 씨, 이 늦은 밤에 어디 가세요?” “여긴 원래 내 집이 아니니까요.” “옷 많이 챙겨입으세요. 경운시 한파가 매서워요.” 온유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 콜택시가 도착해 경비원에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 차에 타자마자 임성준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야 지금?” 임성준의 목소리가 살짝 초조했고 바람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온태원이 강성에 그녀의 집을 장만한 건 맞지만 어떤 일들을 아직 다 처리하진 못했다. 임성준은 부하 직원들이 시름이 안 놓여 직접 날아가서 일을 다 해결한 후 온유나를 데려가려 했다. “퇴원했어요. 지금은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고요.” “내일 오전 9시 비행기야. 이미 다 준비해놨으니까 내일 공항에서 만나.” 온유나가 알겠다며 대답했다. 임성준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는 온유나가 뭘 하고 있는지 다 안다. “유나야, 인제 그만 다 내려놔. 안 그러면 나중에 상처받을 사람은 너밖에 없어. 경운시를 떠나기로 했으면 모든 걸 단념하고 미련도 다 버려.” 임성준의 말뜻을 당연히 다 이해하는 그녀였다. 떠날 거면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그게 사람이든 일이든 어떠한 미련도 남겨서는 안 된다. 미련이 남으면 떠날 수가 없으니까. 임성준은 지금 그녀더러 성우진을 그만 단념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알았어요, 오빠. 고마워요.” 그녀와 성우진은 내일이 지나면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남남이 되어 각자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서로에 대한 미련은 흔적 없이 말끔히 지워버릴 것이다. “일찍 쉬고 내일 봐.” 임성준이 인사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온유나는 사실 방금 통화 내용을 다 엿들었다. 하정은이 비록 온유나의 아이를 해치고, 하은별을 온유나로 사칭해 어릴 때 성우진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밀어붙였지만 온유나는 여전히 그녀가 무사하길 바랐다. 왜냐하면 그건 성우진이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이니까. 그녀는 성우진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외롭게 혼자 지내길 바라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성우진을 사랑한다. 십여 년을 사랑해왔는데 잊는다고 한순간 다 잊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하정은이 아무 일 없길 바랄 뿐이다. 또한 그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이기도 했다. 택시 기사가 온유나의 기분이 가라앉은 걸 눈치채더니 티슈를 건네며 먼저 말을 걸었다. “손님, 이제 곧 새해네요. 새해에는 지난 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출발해요 우리.” 온유나가 티슈를 건네받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게요. 곧 새해에요.” 그녀도 이젠 드디어 성우진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할 수가 있게 됐다. “앞만 보고 달려요. 뒤돌아보면 지는 거예요.”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며 달리라고... 이 말은 온태원이 살아있을 때 그녀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아빠를 떠올리자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또다시 시야를 흐렸다. “고마워요, 기사님.” 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앞만 보며 달리면 돼요. 사소한 일로 본인 생각을 바꾸진 말아요. 자신을 아끼고 본인답게 살아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죠.” 온유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일리 있는 말이었다. 우선 나다워져야 하고 자신을 아껴야 한다. 지난 인생은 온 신경이 성우진에게 쏠려 있었고 자신의 모든 사랑을 그에게 퍼주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결말을 안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부턴 오직 본인만을 위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